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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심로, 프리다 칼로

마드리드

by 명진 이성숙

슬픔의 심로 프리다 칼로

스페인에서 벌써 닷새를 넘겼다. 그동안 길에서 가장 많이 만난 건 프리다 칼로다.

길모퉁이 곳곳, 노점 화상 앞에서 나는 비슷한 장면을 연달아 본다. 화가들이 프리다 칼로 초상을 펼쳐놓고 모작에 열중하고 있는 것. 여러 번 마주치니 생각이 프리다 칼로를 향해 간다.

돈키호테만큼이나 스페인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화가가 있다면 프리다 칼로가 아닐까. 스페인 거리를 걸으면서 자주 프리다 칼로와 마주친다. 멕시코 출신 화가로만 기억하고 있던 내게 프리다 칼로가 새로이 각인된다. 프리다 칼로 초상이 담벼락 여기저기 붙어 있고 거리 화가들이 앞다투어 프리다 칼로를 그린다. 공원 모퉁이에서 프리다 칼로 초상을 모작하는 화가를 보고 나서야, 이곳이 프리다 칼로의 생애가 바쳐진 곳이구나, 깨닫는다.

소아마비를 앓고 어릴 때 교통사고를 당해 소생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다쳤으며, 서른 번의 수술과 세 번의 유산, 나이 차이가 스물한 살이나 나는 당대 최고의 화가이자 사회주의 호색한 디에고 리베라와의 결혼. 그러나 계속되는 남편의 외도. 심지어 프리다의 언니와도 불륜을 저지른 디에고 리베라.

교통사고로 걸을 수 없게 되었다가 이젤을 선물 받고 그림에 빠져들게 된 프리다 칼로는 그 후 극적으로 걷게 되고 자신이 흠모했던 당대 최고의 벽화가이자 스승이었던 디에고 리베라의 세 번째 부인이 된다. 주변 만류가 있었지만 자신의 의지로 사랑을 선택한 프리다, 그러나 그 사랑으로 프리다의 생애는 만신창이가 된다. 프리다의 형극의 고통은 그의 작품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짙은 갈매기 눈썹에 두툼한 입술, 짙고 풍성한 검정색 머리칼. 정열의 나라 멕시코 출신인 그는 독특한 외모만큼이나 화려하고도 개성 넘치는 고향 멕시코 스타일의 복장과 장식을 좋아한 것으로 유명하다.

비극의 주인공 프리다 칼로의 생애는 영화 <프리다>로도 만들어졌다. 훗날 프리다는 말한다. "내 생애 큰 사고가 두 번 있었는데, 하나는 여섯 살 때 만난 전차 사고이고, 또 하나는 디에고 당신을 만난 것이다."

걸을 수 없던 프리다 칼로는 침대에 누워 초상화를 주로 그린다. 그의 초상화에는 그의 처참한 속살이 그대로 드러난다. 예술의 완성도는 작가의 고통의 깊이에 비례한다고 했던가. 멕시코의 뜨거운 태양 아래 태어나 스페인을 닮은 남자 디에고를 만난 프리다. 그의 생애는 그의 작품의 온도를 짐작케 하는 것이다. 주어진 어떤 것이라기보다 내가 개척할 수 있는 무엇으로 운명을 받아들이는 나로서는 프리다의 자화상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이마에 디에고를 그려 넣은 <디에고와 나>를 비롯해 <두 명의 프리다>, <가시 목걸이를 한 자화상> 등등. 프리다의 자화상을 들여다보면 눈물이 난다. 묵묵히 자신의 운명 속으로 뜨겁게 걸어 들어간 정열의 멕시코 여인이랄밖에 달리 그를 수식할 말이 없다.

풀밭에 앉은 프리다. 피크닉을 즐기는 프리다… 그런 자화상을 그렸다면 그의 운명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영화 <프리다 칼로>가 네플릭스에 있다.

프리다 칼로 초상을 걸어두고 모작에 열중인 화가들을 스페인 거리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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