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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북부 도시, 코미야스(2)

가우디의 도시

by 명진 이성숙


별책 부록같은 코미야스


산탄데르 숙소에서 코미야스 까지 택시로 40분, 차비가 꽤 나올 성싶지만 이 비속에 버스 정류장까지 걷기는 무리다.

사실, 산탄데르에서 1시간가량 택시로 다녀온 코미야스는 이번 여행 최고의 발견이다. 당초에 알지도 못했던 곳이니 별책부록이라 해야 하나. 호텔 직원에게 산탄데르 지도를 얻어 갈 만한 곳을 물으니 코미야스를 놓치지 말라 한다. 코미야스에는 안토니오 가우디의 첫 작품 엘 카프리초가 있다고. 나는 주저 없이 산탄데르 여행 첫걸음을 코미야스로 잡는다.

비로 잿빛인 도로를 택시가 질주한다. 더하다 덜하다 그치지 않고 내리는 비 속, 산길을 구불구불 돌아 마을에 들어선다. 집들은 돌담에 에워싸여 있고 도시 전체는 초록으로 반짝인다. 초록 바깥 경계로는 바다가 펼쳐진다. 택시가 골목을 돌아설 때마다 나는 탄성을 내지른다. 잘 가꾸어진 농촌, 살갗에 느껴지는 가벼운 바람, 소나기조차 어느새 잔비로 변해 있다. 건물과 자연과 사람이 어느 것 하나 저 혼자 도드라지지 않는 코미야스다. 페인트가 떨어져 나간 벽들조차 누추하지 않다. 그지없이 편안함, 자연을 닮은 엘 카프리초가 여기 있다는 게 당위처럼 느껴지는 풍광이다.

살다 지쳐 세상과 나를 떼어놓고 싶을 때 나는 주저 없이 이곳을 찾게 되리라. 바닷가 마을인데도 진한 흙냄새를 지닌 코미야스는 하모니다. 택시 기사 설명으로 한 여름엔 이곳이 휴양객으로 북적인다고. 수채화 같은 정적과 찬란한 여름을 가진 코미야스라니! 나는 스페인 북부 일정을 짧게 잡은 것을 후회한다. 그러나, 빌바오 호텔이 예약되어 있고 그 이틀 후엔 바르셀로나에서 크루즈 승선이 예정되어 있다. 이들을 늦출수도 취소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떠나는 배를 놓치면 그 또한 낭패다. 머지않은 날에, 코미야스를 목적으로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리라...



코미야스 가우디 빌딩 Comillas Gaudi's, 엘 카프리초

100년 전 건축을 시작하여 현재까지 건축 중인 바르셀로나의 가우디 성당, 사그라다 파밀리아 La Sagrada Familia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가우디의 처녀작, 엘 카프리초 El Capricho가 아름다운 해안 마을 코미야스에 있다는 걸 아는 사람도 드물다. 카탈루냐 출신인 가우디, 그의 건축물은 바르셀로나를 비롯한 카탈루냐 지방에 모두 있기 때문이다. 단 세 개의 건축물이 카탈루냐를 벗어난 지역에 있는데 엘 카프리초가 그중 하나다. 그 외 카사 보티네스와 팔라시오 에피스코팔이 외지에 있다.

엘 카프리초는 해변에서 좀 떨어진 마을 안 작은 언덕에 앉았다. 입장료 3유로를 내고 앞마당으로 들어간다. 물안개에 감싸인 엘 카프리초가 한 걸음씩 가까이 다가갈 때마다 베일을 벗듯 조금씩 드러난다. 초록과 노란색 타일을 주조로 선명한 원색으로 치장된 외관은 한눈에도 가우디 작품임을 알겠다. 구엘 공원을 아는 사람이라면 동화 같은 구엘 공원, 그 느낌 그대로다. 곡선의 실루엣은 부드럽고 원색 타일은 숫기 없는 아이처럼 상큼한 듯 고요하다. 건물 오른쪽에는 다소 이질적 느낌의 둥근 탑이 건물 몸체 위로 우뚝 솟아 있는데 당시 스페인 건축에 유행하던 무데하르 양식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 한다. 무데하르란 서양 건축물에 이슬람적 요소가 가미된 것을 말한다. 타 문화권에 대한 호기심이었으리라.

건물 안으로 들어가 수직으로 세워진 나선형 계단을 오르면 2층임과 동시에, 숲인 듯 나무가 빼곡히 심긴 정원으로 통한다. 도시 깊숙한 곳에 고즈넉이 살아 있는 엘 카프리초다.

정원에서 건물을 등지고 서면 고딕풍 뾰족탑을 가진 성당을 볼 수 있다. 이는 가우디의 스승이자 당대 최고의 건축가인 도메네크 몬타네르의 작품이라 한다. 엘 카프리초를 나와 밖으로 돌아 성당을 보러 갔지만 나는 외관만 보는 것으로 마음을 접는다. 아스팔트를 휩쓸며 내려오는 빗물에 발이 묶일까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재밌는 사실은 가우디는 엘 카프리초 설계도를 카스칸테 콜롬에게 넘긴 후 건물이 완공될 때까지 한 번도 와 보지 않았던 것. 사소한 부분까지 세심하게 설계된 도면이라 가우디가 올 필요가 없었다는 후일담이 전해진다.

엘 카프리초 입구 길 건너편, 막 짠 우유와 수제 치즈를 파는 가게가 폭우 속에 문을 열어두었다. 주인이 농장을 운영한다고 한다. 큰 병 우유와 빵, 치즈를 사들고 택시에 오른다. 우유가 얼마나 고소했는지 1.5리터 들이 우유를 반 병이나 단숨에 마신다. 엘 카프리초를 둘러보고 나올 때까지 기다려 준 택시 기사가 이 지역 치즈 외교관인 듯 치즈 자랑을 늘어놓는다. 여름엔 이곳 해변이 또한 휴양객들로 황금빛이 된다고. 그의 코미야스 자부심이 대단하다. 고소한 우유와 폭신한 치즈맛, 코미야스와 함께 나의 뇌리에도 길게 남을 것이다.

저 창문으로 인형들이 고개 내밀 것 같은 엘 카프리초


이슬람 양식의 둥근기둥이 이질감을 드러내는 구성이다.

경사진 지형을 이용한 엘 카프리초 내부. 이 계단을 오르면 2층 정원으로 통한다. 2층에서 보면 건물은 완벽한 단층이다.

숲 속 오두막 같은 엘 카프리초다. 입구에서 걸어 들어가면 점점이 모습을 드러낸다.

가우디의 독특한 건축술인 타일 모자이크가 엘 카프리초에도 반영되었다.

가우디 스승이 설계한 성당. 폭우로 더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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