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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북부 도시, 산탄데르(1)

대서양을 품은 센트로 보틴 미술관

by 명진 이성숙

스페인 북부 도시: 산탄데르, 코미야스, 알타미라, 빌바오

산탄데르 호텔에 사흘을 묵으면서 코미야스와 알타미라를 당일치기로 다녀왔고, 산탄데르에서 빌바오로 이동해서 이틀 더 묵었다.



-산탄데르행 18번 플랫폼

마드리드 차마르틴 역에서 렌페 기차를 타고 칸타브리아 산맥 너머에 있는 산탄데르까지 이동한다. 마드리드-산탄데르는 렌페 고속기차로 4시간이 걸린다. 스페인 여행은 세비야-마드리드-산탄데르로 북상하는 일정이다. 세 시간쯤 지나자 긴 터널이다. 기차가 칸타브리아 산맥을 넘어가는 중이다. 산맥을 넘자 기온이 떨어진다. 비까지 내려 체감온도는 섭씨 0도. 내복까지 챙겨 입었는데도 오싹 소름이 돋는다. 선반에 올려두었던 외투를 꺼내 입는다. 터널을 벗어나니 멀리 왼쪽으로 설산이 지나간다. 스페인 북부는 칸타브리아 산맥과 피레네 산맥이 연이어 뻗어 대서양을 마주 보고 있다. 한 나라로 믿기지 않는 다양한 풍경의 스펙트럼이다. 험준한 산맥으로 남부 도시들과 교류가 쉽지 않았던 이곳 북부 도시들은 덕분에 그들만의 독자적 문화를 갖고 있기도 하다.

차마르틴 역에서 우버를 불렀는데 길이 서툰 기사를 만났다. 길에서 헤매느라 나는 5분이나 늦게 기차역에 도착한다. 기차가 떠났을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나는 가방을 끌고 안으로 뛴다. 머릿속으로는 기차를 놓친 거라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이 분주하다. 다음 열차가 없으면 어쩌나, 이 표는 환불해 줄까 등등. 그러다 머리 위에서 반짝이는 전광판을 보게 된다. '산탄데르행 18번 플랫폼'이 붉은색으로 점멸하고 있다. 아직 기차가 떠나지 않았다! 나는 전속력으로 18번 홈을 찾아 뛴다. 역사는 얼마나 복잡한지, 계단은 왜 이리 많은지! 예정 시간보다 10분이나 늦었는데 플랫폼에 기차가 서 있다. 자리에 앉자 등에서 식은땀이 난다. 이걸 우연이라 해야 하나 행운이라 해야 하나. 하필 기차는 10분 넘도록 연착을 해 주고 나는 또 평소답지 않게 끝까지 뛰었다. 기차를 놓쳤다면 나는 마드리드에 숙소를 알아봐야 하고 산탄데르 호텔에 취소를 부탁해야 하는 등 이후 일정을 바로잡느라 속이 탔을 것이다. 희망은 서둘러 꺾는 게 아니라는 장황한 교훈을 마주한 순간이었다.

스페인 북부 아름다운 항구도시 산탄데르에 와 있다. 소나기가 내린다. 유로스타스 레알 호텔 3층 방에서 보이는 전망이 환상이다. 여행을 적잖이 했으므로 오션 뷰 객실을 처음 경험하는 것도 아닌데, 이런 뷰는 처음이다. 새 날개처럼 펼쳐지는 해안선, 고성 같은 대 저택, 멀리 보이는 등대, 마을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의 일렁임, 바다 위로 떨어지는 빗물까지. 산탄데르에 다시 온다면 나는 이곳에서 며칠이고 지낼 것이다. 창밖 경치에 취하느라 정오가 되어서야 호텔을 나선다.


-센트로 보틴 미술관, 산탄데르

손 닿는 곳에 바다를, 시선 끝에 설산을 가진 산탄데르다. 보틴 미술관 앞에서 택시를 놓아준다. 센트로 보틴 미술관은 산탄데르 중심가에 있으면서 바다에 면해 있다. 호텔에서 웰컴 이벤트로 선물한 입장권을 들고 보틴 미술관에 간다. 빗물로 반들거리는 대리석 바닥을 지나며 나는 미술관 외관에 반하고 바다를 조망하는 그 위치에 감탄한다.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독특한 디자인의 미술관과 대서양의 절묘한 조화를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까. 3층짜리 건물은 1층에 기념품점과 가벼운 식사가 가능한 카페를 두고 2,3층에 전시관을 두었다. 옥상에 오르면 해안선 너머 만년설을 머리에 인 대자연의 실루엣이 다가오고 발아래로는 대서양을 품은 도시가 눈에 들어온다.


도시가 이 지경으로 아름다울 수 있을까. 센트로 보틴은 전시가 없는 날에도 그 풍광에 이끌린 사람들이 쉬지 않고 모여드는 곳이다. 공중에 띄움 구조로 날짐승이 날개를 편 듯, 행글라이더의 양 날개인 듯 거침없이 시원한 외관에 반한 나는 우산을 팽개치고 추위에 떨면서 보틴의 이쪽저쪽을 몇 바퀴나 돌았다. 전시장을 통해 올라 간, 옥상에서 마주 보는 전경은 또 어떤가. 옥상이라 해봤자 고작 3층인데 한 면은 바다요, 한 면은 고층건물 없는 도시라 ‘옥상 전망대’ 값을 톡톡히 한다. 먹구름 낮게 내려앉은 하늘, 그 아래 놓인 바다, 바다 끝자락을 밟고 선 미술관. 나로선 이 풍경을 설명할 길이 없다. 번개조차 하늘을 가르는 데도 무심히 해안을 걷는 사람이 있다. 보틴의 무궁한 찬란함에 빠진 사람일 테다.

비비드 톤의 그라피티가 안개 잦은 도시에 마침표인 듯 선명하다.


*현대미술에서 벽화는 더 이상 한가로운 거리 예술이 아니다. 당당히 하나의 사조로 자리 잡은 도시의 벽화, 성공적인 도시에는 인상 깊은 벽화가 있다.

센트로 보틴 미술관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렌조 피아노가 설계했다. 렌조 피아노는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센터 건립에 참여한 두 건축가 중 한 사람이며 런던의 더 샤드를 건축한 사람. 빛의 건축가 렌조 피아노의 안목으로 설계된 미술관을 둘러보는 동안 나는 문명의 한 복판에 서 있다는 자부심을 느낀다(잽싸게 변해가는 문명을 선호하지 않는 편인데도). 뒤로는 바다를, 전면 유리로 도시를 조망하는 보틴은 낯선 감동이다. (앞과 뒤는 전적인 나의 설정이다. 거장 렌조 피아노에게 묻는다면 앞이 바다요, 뒤가 도시일지 모른다.) 홀린 듯 전시장으로 들어간다. 22년 11월 19일- 23년 4월 16일까지, 프로젝트 명 '이티너레이리오스 17'이 전시 중이다. 처음 보는 전시 퍼포먼스에 나는 또 한 번 놀란다.


스페인 국영 열차 렌페. 여치 머리 같기도 하고, 도마뱀 같기도 한, 날렵한 렌페 얼굴이다. 내부는 2층 구조.


유로스타스 레알 호텔 3층에서 바라다 보이는 전경. 아기자기한 해안선이 비현실인 듯 눈앞을 장식하고 있다. 낮과 밤이 또 다른 분위기.

센트로 보틴 미술관 외관이다. 잠자리 날개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우주선 같기도 하다. 미술관 뒤로 대서양이 시작된다. 빛의 건축가 렌조 피아노 설계.


센트로 보틴 미술관 옥상에서 보이는 산탄데르 도시 풍경. 흐린 날씨 속에 선명하게 도드라진 그라피티.


센트로 보틴의 전시물. 작가 Polvo Estelar(2016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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