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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북부 도시, 알타미라(3)

문명의 흔적, 알타미라 동굴벽화

by 명진 이성숙

알타미라 동굴 벽화

-보이는 대로가 아니라 아는 대로 그리다


나는 오직 알타미라 동굴벽화를 보기 위해 산탄데르에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별히 학문적 예술적 목적이나 견해가 있는 건 아니지만 인류 최초 예술행위의 증거가 알타미라 동굴 벽화라 하여 나는 유럽 여행을 계획할 때부터 산탄데르를 염두에 두었었다. 호텔이 있는 산탄데르에서 알타미라까지는 30km. 1시간 남짓한 거리지만 문제는 폭우다. 비 그치기를 기다리자니 아예 근처도 못 가볼지 모른다는 불안이 든다. 산을 올라야 하는 장소라 대중교통도 마땅치 않다. 폭우 속 산으로 가자 하니 택시 기사가 제차 묻는다. 정말 그곳으로 갑니까? 당연하죠, 얼마나 멀리서 왔는데요! 겁먹은 택시 기사를 어르다시피 해 나는 결국 그곳에 갔다, 알타미라!


경사가 심하지는 않으나 흙길을 걸어 올라야 하는데 눈앞에 출입금지 경고가 붙어 있다. 택시 기사는 더 이상 못 가겠다며 버틴다. 돌아가자고? 예까지 와서? 안될 말이다. 겉모습이라도 봐야지. 먼발치에서라도 봐야지. 아니, 나는 진심으로, 이 여행이 끝난 후, 알타미라에 다녀왔다고 떠벌이고 싶은 심정이다. 사학자도 고고학자도 아닌 사람이 왜 그리도 그 동굴이 궁금했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나는 말이 안 통하는 택시기사에게 번역앱을 열어 진이 빠지도록 설명한다. 알타미라 동굴벽화가 보고 싶다고요. 인류 원시의 메시지를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고요.

마침내 2km 넘게 돌고 돌아서 목적지에 닿는다. 마침 비가 그친다. 택시 기사를 기다려 달라 하고 입장권을 산다. 비에 시달리긴 했어도 덕분에 사람이 많지 않다. 매표는 수월하다. 타임 슬랏(입장 시간이 일정 간격으로 정해져 있는 것. 유럽 박물관은 타임 슬랏을 적용하는 곳이 더러 있다.)이 있어 입장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대기 시간을 확인하며 박물관부터 둘러본다. 발견된 인류 생존의 흔적들이 설명과 함께 섬세히 전시되어 있다.

동굴 총길이 296미터, 그리 길지는 않다. 비스피에레스 산 밑 지형이 붕괴되면서 생긴 공간으로 추정된다 한다. 산의 붕괴로 입구가 차단된 덕에 알타미라는 발견 당시 보존상태가 매우 좋았다고 한다. 알타미라에서는 다수 동물 뼈가 발견되어 인류 이전에 야생동물이 서식했던 것으로 보이며 사람이 머물렀던 흔적은 동굴 입구의 작은 부분이라 쓰여 있다.

들어갈 시간이다. 구석기 생활 상 비디오를 본 후 관람로를 따라 내려간다. 물에 번들거리는 천정벽화가 한눈에도 선명히 드러난다. 교과서에서 보던 알타미라 동굴 벽화를 이렇게 보다니 나는 무엇이나 된 듯 감격스럽다. 말과 사슴, 수퇘지 등 여러 동물 형태가 그려져 있고 채색 흔적도 발견된다. 동물 몸에는 돌이나 화살 자국도 보인다. 나는 무슨 탐험가나 된 듯 동굴을 요리조리 새겨 본다. 보이는 대로가 아니라 아는 대로 그렸다는 구석기인들, 동물 형태에는 그들의 관념이 반영되어 있다. 그들은 동물의 두려워한 부분을 작게 그려 두려움을 없애기도 하고, 공격이 용이한 부분을 크게 그려 사냥을 쉽게 하려는 시도도했다 한다. 내게 관념으로만 존재하던 구석기인이 마침내 나와 같은 ‘종’으로 느껴지는 대목이다.

아쉬움은 이것이 복제동굴이라는 것. 벽화 손상을 막기 위한 조치라니 하는 수 없다. 그러나 규모나 내부 생태환경까지 실제와 똑같이 재현해 두었으므로 지레 감동을 희석시킬 필요는 없겠다. 동굴에서 나와 관람이 막힌 더 깊은 안쪽에서 발견된 벽화들과 동물이 서식했던 흔적들을 한 번 더 둘러보고 밖으로 나온다. 폭우는 새우비로 변했다. 우중에 못 간다며 버티던 택시 기사가 우산을 들고 반갑게 달려와 준다. 이쯤비야 맞아도 좋건만. ^^


아래 사진은 국사 교과서에서 보던 바로 그 벽화들이다.

알타미라 박물관. 박물관 안에, 동굴 환경을 재현해 두었다. 크기도 생태도 실물과 똑같다고 한다. 바로 옆에 진짜 동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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