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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북부 도시, 빌바오(4)

네르비온 강가, 아름다운 수변도시

by 명진 이성숙


네르비온 강가의 구겐하임 미술관



산탄데르에서 빌바오까지는 버스로 이동.

중세 느낌을 간직한 빌바오 구도심 작은 호텔에 숙소를 마련한다. 코미야스에서 그랬듯 빌바오는 낡고 축 늘어진 내 심장을 충동질한다. 네르비온 강가의 아름다운 수변도시라는 명성에 걸맞게 아름다운 풍치를 선물한다.


호텔에서 나와 네르비온 강을 따라 걷는다. 우산을 손에 든 채 비를 맞으며 20여 분 걸어 구겐하임 미술관에 도착한다.


빗속에 빈손으로 나서자니 마음이 불편하다. 방에서는 나왔는데 호텔 입구에서 밖으로 나서지 못하고 하늘만 보고 있다. 빗발이 제법 굵다. 데스크에서 일을 보던 호텔 직원이 내 맘을 알아차리고 우산을 권한다. 호텔에서 마련해 둔 공용 우산이다. 우산 들고 다닐 생각을 하니 번거롭다. 호텔 직원은 아직도 나를 보고 있다. 우산을 가져가라고, 다녀와서 제자리에 놓으면 된다고 목소리마저 키워 말을 날린다. 그의 목소리에 힘입은 시선 몇 개가 나를 향한다. 멀쩡한 여자가 비 오는 날 도로 위를 맨몸으로 나서는 건 내가 생각해도 걱정스러운 일이다. 멋이라고는 없는 검정 우산을 집어 들고 호텔을 나선다. 남동생 같은 직원이 손을 들어 하이파이브 시늉을 한다.


우산을 쓰고 걸으니 바람과 싸우게 된다. 비보다 세력이 강한 바람이다. 한 손으로는 우산을 지탱하지 못한다. 에라, 우산 쓰기 포기다. 포르투에서부터 맞아온 비다. 이 정도 굵기 비는 아무것도 아니다. 패딩 외투를 기꺼이 적시기로 한다. 흠뻑 젖은 우산을 접어 흔들며 물이 불어난 강가를 건들건들 걷는다. 재미가 난다. 우산을 소품처럼, 접어들고 걷는 이는 나 하나다. 비와 바람과 나와 우산, 우리는 지금 빌바오에 있다.


스페인 북부 도시들을 묶어 소도시라 명명한 자 누군가. 찾아보니 빌바오는 인구 60만의 스페인 10대 도시다. 산탄데르나 빌바오는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같은 대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칸타브리아와 피레네 두 산맥 너머에 있어 도시 기능이 부실할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나 보다. 산탄데르, 빌바오, 산 세바스티안(이번에 방문하지 못했지만)은 그런 지리적 특성을 이점으로 발전한 독자적 향기를 지닌 도시들이다.


산 세바스티안은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도 꼽힌다. 나는 다음번 스페인 북부 여행을 위해 산 세바스티안을 남겨 두고 떠난다. 빌바오 일정도 나흘은 잡았어야 했다는 생각이다. 내 일정은 이틀. 서두르는 수밖에 없다.


구겐하임까지 가는 길에는 고풍스러운 시 청사와 기차역, 아파트로 보이는 건물들이 강을 바라보고 있다. 흰색 페드루 아르페 다리도 지난다. 크로마 하프를 연주하는 여인 동상 분수대를 지나 조금 더 걷자 금속으로 마감한 구겐하임 측면이 눈에 들어온다. 벽을 따라 돌자 참이 넓은 화강암 계단이 부챗살처럼 펼쳐져 있다. 비 때문인지 사람이 많지 않다. 매표창구엔 서너 사람이 줄 서 있을 뿐이다. 가방과 우산, 외투를 맡기고 안으로 들어간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활력을 잃어가던 빌바오에 비타민이 된다. 미국 건축가 게리가 설계했다 하니 이웃을 만난 듯 나는 더 반갑다. 게리는 로스앤젤레스의 게티 센터를 설계한 사람으로 미주 한인들 사이에서는 잘 알려진 건축가이기 때문이다.(나는 남가주에서 10년 넘게 살았다) 기하학적 디자인의 게티 센터와 구겐하임 외양이 어쩐지 닮은 데가 있다. 엘에이 다운타운의 디즈니 아트홀 역시 프랭크 게리 설계다. 구겐하임과 디즈니 아트홀은 형과 아우처럼 같은 디자인을 하고 있다. 구겐하임 개관으로 도시는 크게 팽창한다. 미술관 외양은 삼엄 웅장, 수려하다.


나의 평가가 보잘것없지만, 보틴 미술관 이미지가 말쑥한 청년 신사나 도시 귀족이라면, 구겐하임 외관은 군더더기 없이 잘 생긴 수도자의 면모다. 전시물 규모도 미술관 외관만큼이나 크고 장엄하다. 보틴 미술관을 본 감회가 아직 가시지 않았는데 구겐하임까지 보다니 우물 안개구리 세상 구경 나온 게다. 나는 연일 놀라는 중이다.


빌바오는 도시를 관통하는 네르비온 강뿐 아니라 북쪽에 비스케 만을, 남쪽으로 산맥을 끼고 있어 대단한 풍광을 과시한다. 게다가 자동차로 30분 거리에 피카소 그림 <게르니카>의 소재가 된 게르니카 주가 있다.

스페인 최대 은행인 BBVA 본산이 또한 빌바오다. 빌바오의 경제규모가 짐작될 줄 안다. 대도시의 위용과 관광도시로서의 매력을 모두 갖춘 도시 빌바오다.


거대한 규모 전시물들에 압도되었다가 다리를 쉴 겸, 미술관 통유리창 밖으로 내리는 비도 감상할 겸 1층 카페에 앉는다. 카페도 미술관 연장인 듯 꾸며져 있다. 이 의자엔 앉아도 되나...? 전시 작품이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들게 하는 구겐하임 카페다. 카페에 지친 몸을 내려놨다 일어선다. 시간이 많이 갔다. 다시 강을 타고 걸을까, 트렘을 타볼까. 올 때와 달리 궂은 날씨에 몸까지 젖어 있으니 걸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5층이나 되는 미술관을 돌아다니느라 기력도 탕진했다. 호텔로 돌아가기 위해 트렘을 탄다. 호텔에 도착하자 저녁 먹기 좋은 시간이다. 고 서가를 뒤지듯 유서 깊은 골목을 탐색하며 맛집을 찾는다. 6,70년대 선술집 같은 분위기를 하고 주류와 가벼운 요기가 가능한 생맥주 집이다. 걷느라 고생하고 비까지 흠뻑 맞은 몸이 맥주를 부른다. 콸콸 생맥주를 쏟아부은 후 스페인 앤초비와 올리브에 말아먹도록 나온 또 다른 앤초비, 낙지 마늘 볶음을 닥치는 대로 주문한다. 이렇게 맛있으면 어떡하나. 내일 떠나야 하는데!


다음 날, 빌바오를 더 누리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느라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그 많은 골목을 빠짐없이 들락거렸다. 상점마다 개성 있게 꾸민 쇼윈도들. 지구상에서 사라져 가는 낡고 정겨운 서점. 아침 일찍 문을 연 하몽가게에 들어가 신선한 하몽도 구입. 눈에 마음에 훑어 담은 빌바오다. 안녕 빌바오.


빌바오 구시가. 네르비온 강 위의 교각


구겐하임 가는 길. 비가 와서 황색으로 변한 네르비온 강


구겐하임의 마스코트 초록 강아지


구겐하임 미술관, 이 계단을 오르면 입구가 나온다.


기하학적 디자인의 구겐하임 미술관이다.


양철판을 잘라 말아 놓은 듯한 구겐하임 외관


상설관의 대형 전시 작품


빌바오 골목길 상점들이다. 목욕용품 파는 가게.


빌바오의 골목길

정겨운 불빛이 밝혀진 서점. 아직 문을 안 열었다.

꽤 오래되어 보이는 생맥주 집과 나의 안주. 앤초비에 반해서 여러 종류의 앤초비를 주문했다.


빌바오의 하몽 가게. 하몽을 자르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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