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에 묻어있는 감정들
엔터테인먼트 주식을 산 것은 몇년 전의 일이에요. 좋아하는 블랙핑크의 신곡이 예정되어 있었죠. 투자를 결정하는 데에는 십 분이 채 걸리지 않았어요. '삘'이 강하게 왔거든요.
나는 결정을 잘 내리는 사람일까요?
사실 주식이라는 건 그야말로 숫자로 이루어진 세상인데, 저는 숫자에 약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저를 움직인 건 객관적인 데이터가 아니라 왠지 잘될 것 같은 기대감. 아니 그 이상의 뭔가… 마치 특별한 안목을 가진 사람이 된 것 같은 들뜬 기분, 고양감이었습니다.
우리는 가끔 무언가를 선택할 때 그 선택이 정말 타당한지를 넘어서, 그 선택이 우리를 어떻게 느끼게 하는지에 기대어 결정을 내리기도 합니다. 고양감은 스스로를 멋진 사람으로 느끼게 해주는 기분, 그리고 '이 선택이 분명 좋을 거야'라는 확신을 안겨주는 감정적 에너지였죠.
초반의 상승세는 짧았습니다. 하락장이 시작됐어요. 팔아야 하나, 버텨야 하나. 고양감은 사라지고 긴장감만 가득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주식에 대한 이해나 철학 없이 그저 감정적으로 결정한 대가를 치르고 있었던 겁니다.
아마 다들 가벼운 결정은 쉽고 무거운 결정은 어렵다고 생각하겠지만요. 사실, 결정의 난이도가 꼭 그 중요성에 비례하지는 않더라구요. 때로는 점심 메뉴를 고르는 것이 이직을 결정하는 것보다 더 어려울 때도 있을 겁니다. 적어도 저는 그랬어요. 가끔은 답이 분명해도 쉽지 않은 결정도 있었습니다. 잘못했다는 걸 알면서도 사과하기 어려울 때처럼요
이런 결정의 순간들을 돌이켜 보니, 우리 마음 속에는 마치 두 동물이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경계심 많은 뱀과 호기심 가득한 원숭이.
뱀이 고개를 들면 우리는 긴장됩니다. 가슴이 살짝 조여오고 손바닥에 땀이 나고 밤에 이불 속에서 뒤척이게 되죠. 마치 우리 몸이 "잠깐, 이거 한 번 더 생각해보자"라고 속삭이는 것처럼요. 이런 긴장감이 높아지면 우리는 제자리에 얼어붙습니다.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해요.
반면 원숭이가 활개를 치면 결정이 쉬워집니다. 인스타그램에서 화장품 광고를 보다가 구매 버튼을 누를 때도, '유튜브 채널 떡상법'을 듣다가 고액의 수강료를 결제하게 된 것도 모두 원숭이의 흥분된 목소리 때문이었어요. (어머, 이건 사야해!) 벌써 뭔가를 이룬 것 같은 기분. 그 고양감은 놀라울 정도로 강력합니다. 스스로에게 무언가를 설득할 필요가 없거든요. 왜냐하면 이미 마음이 그 결정으로 기울어져 있으니까요.
얼마 전, 지인이 이런 말을 했어요.
"이직하고 싶은데 막상 이력서를 써볼까 하면 어딘지 답답해지고, 그러다가도 '퇴사 후 일상' 브이로그를 보면 또 설레고..."
점심 메뉴를 고를 때도, 새로운 취미를 시작할 때도, 이직을 결심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우리 마음 속 두 동물은 각자의 방식으로 신호를 보냅니다. "이 부분을 더 살펴봐야 해"라는 뱀의 목소리와 "이쪽에 네가 원하는 것이 있어"라는 원숭이의 목소리.
그동안 저는 이 신호들을 다루지 못했어요. 때로는 무시했고(“괜찮아, 별거 아냐”), 때로는 휘둘렸죠.(“이번엔 확실해!”) 어쨌거나 둘 다 해피엔딩은 아니었어요.
그러다 깨달았습니다. 이 두 감정은 '적'이 아닌 '안내자'라는 걸요.
마치 처음 가보는 산길을 오르는 것과 비슷해요. 낯선 등산로에 섰을 때, 우리는 ‘잠깐 나 어디서 왔지?’ 하며 출발지를 되돌아 봅니다.(인식). 그리고 지도 앱을 열어 정상으로 가는 여러 등산로들을 살펴보며 각각의 장단점을 따져봅니다(분석). 갑자기 구름이 몰려와도 당황하지 않고 현재 상황을 받아들이면서(수용), 안전하게 정상에 오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가죠(도움).
결정의 여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아요. 다만 우리에겐 좋은 질문이 필요합니다.
긴장감이 올라올 때: “내가 너무 겁먹고 있는 건 아닐까?”
고양감이 밀려올 때: “내가 너무 쉽게 확신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렇게 스스로에게 던지는 작은 질문들이 균형을 잡아줄 수 있어요
오늘도 우리는 크고 작은 결정을 마주합니다. 저마다 고민의 크기와 내용은 다르겠지만, 모두 마음 속 뱀과 원숭이가 보내는 신호를 알아차렸으면 해요. 그리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분명 나의 답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이것이 가장 좋은 결정으로 나아가는 선명한 방법이라 믿고 있어서요.
다음 회차 예고: "결정할 때마다 흔들리는 이유"
오늘 우리가 살펴본 긴장감과 고양감은 결정을 방해하는 여러 감정의 시작점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이 감정들이 어떻게 구체적인 방해 요인으로 발전하는지, 다섯 가지 모습으로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 최근 여러분의 뱀과 원숭이는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나요?
- 그들에게 어떤 질문을 던져보고 싶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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