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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Aug 18. 2023

내로남불 : 관행이라고? 이 정도는 괜찮다고?

관행이라고? 이 정도는 괜찮다고?


* 본 글에는 아동학대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생활시설에서 훈육을 목적으로 한 체벌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으며, 체벌의 강도나 내용보다는 대상이 보호자가 없는 아동이라는 점에서 저자는 이를 심각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아가방(36개월 미만)은 2인 1조 2교대로 근무가 진행되었다.

선임 1명, 일반 1명이 짝을 이루어 근무하였고 파트너는 매달 바뀌었지만, 같은 급수끼리 근무하지 않았기에 나는 나와 같은 일반 직급의 선생님과 교대 때만 마주칠 수 있었다

그런데 배변 훈련이 한창이던 여름 평소 존경하던 A 선임으로부터 의미심장한 말을 듣게 되었다.


 '아이들이 혹시 C 선생님에 대해 이야기 안 해요?'


양육자가 4명이나 되던 아이들의 입에서 다른 양육자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흔한 일이나 A 선임의 표정과 말투에서 심상치 않음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A 선임이 느끼기에 C 선생님(일반)이 아이들을 거칠게 대하는 것 같으며 가끔 문을 닫고 훈육하는데 아이들이 C 이모가 때렸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는 것이다.

아가방 팀장인 A 선임은 상황을 정확히 파악해야 할 필요성을 느껴 나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아이들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환경에서 사실을 확인하고 B 선임에게도 혹시 문제 되는 상황이 있는지 살펴봐 달란 말을 몰래 전해달라셨다.

B 선임과의 근무 날, 상황을 공유하였고 아이들과 대화도 진행해 본 결과 어느 정도의 문제 상황들이 파악되었다.

A 선임은 이것을 상부에 보고하였다.


이 사건은 C 선생님에 대한 경고 조치 정도로 마무리되었고 A 선임은 이런 가벼운 처리는 아이들을 위한 게 아니라며 분을 내었다.

나 역시 그에 동의했었다.

C 선생님은 아이들 훈육에서 배제되었고 이후에는 전혀 그러한 문제가 없었다.

나는 A 선임의 행동력, 결단력을 존경하게 되었다.

아이들을 향한 깊은 애정과 관심을 더 본받아야 하겠다고 생각했었다.

좋은 어른, 따라가야 할 선배, 그렇게 생각했었다.


불과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 모든 아이들이 배변 훈련을 잘 마친 겨울 즈음,

막 36개월을 지난 남자아이들은 힘이 넘쳤고 인지능력은 힘만큼 자라나지 않았다.

여전히 말은 잘 안 통하는 아가들이었다.

8명이 함께 지내는 방에선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분명 지치는 시기였지만 지금껏 그래왔듯 시간이 아이들을 때에 맞게 성장시킬 것이었다.

    

하지만 A 선임은 그 시기에 대한 인내심을 잃었던 것 같다.


훈육하러 들어갈 때 아이들을 향한 거친 태도, 쾅 하고 닫히는 문과 들려오는 울음소리가 무언가 잘못되어 감을 느끼게 하였다.

의사 표현이 어느 정도 가능해진 아이들은 자기 전 나에게 '이모 A 이모가 맴매했어'라는 말을 하였다.

의심은 곧 확증으로 바뀌었다.

A 선임은 특히 몇 명의 아이들에 대해 인내심이 약했고, 훈육을 위해 아이들을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면 어김없이 수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들의 증언, 닫은 방에서 들리는 소리, 일단 모두 녹음했다.

그리고 B 선임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머리가 아파왔다.

불과 몇 개월 전 꽃으로도 때리면 안 된다던 사람이 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던 어느 날 사건이 터졌다.

보육원에는 다양한 사연을 가진 아이들이 모여든다. 
아이들의 아픔을 비교할 순 없지만 베이비박스에서 온 아이들이 이곳에선 그나마 가장 덜 아픈 아이들이다.
부모의 양육 능력 부족과 방임, 가정의 해체, 희소병, 말 그대로 버리고 간 아이까지 다양한 사연들이 있지만, 그 아이들 중 가장 아픈 아이들은 단연 부모로부터 학대받은 아이들이었다.

그리고 그날 8명의 아이들이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내가 식기를 설거지하고 있던 때,

두 명의 아이가 A 선임과 함께 방으로 들어갔고 A 선임의 흥분한 목소리와 아이들의 울음 그리고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설거지하던 내게 이 상황을 알린 것은 다름 아닌 4살 아이들이었다.

흥분한 A 이모와 방으로 들어간 친구들의 모습에 겁이 난 아이들 나에게 달려왔다.

한 아이는 무서운지 울음을 터뜨렸다.


녹음기를 켜고 들려오는 소리를 짧게 녹취한 뒤 다급하게 문을 두드리자, 소리가 잦아졌고 몇 분 후 모두 방에서 나왔다.

목욕 시간 나는 휴대전화를 들고 들어가 아이들 몸에 남은 증거를 살피고 남겼다.

아동 학대 사건의 핵심은 증거라 증거 없이 무작정 행동할 수는 없었다.

A 선임은 이 시설에서 10여 년을 일한 팀장이었다.

*요즘은 심증만 있어도 아동학대 신고가 가능하나 당시에는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조사조차 진행되지 않는 일이 허다했다. 이 경우 불이익을 받는 것은 당연히도 신고자였다.


아이들을 재우러 들어갔을 때 그 방에 들어갔던 아이 중 한 명이 발작적으로 울며 집에 가겠다 소리쳤다.

그 방에 들어갔던 2명의 아이 중 학대 경험이 있는 아이였다.

그 아이가 처음 입소했을 때  입버릇처럼 '이거 이렇게 하면 나 때려요?'라는 말을 하곤 했었다.

나는 이곳에선 아무도 아이를 때리지 않는다고 안심시켰었다.

아이는 내 말을 믿고 이곳에 적응해 왔었다.


마음이 무너지고 분노로 휩싸였다.


아이들은 친구의 아픔에 공감한 듯 하나둘씩 함께 울기 시작했고 성토대회처럼 체벌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아이들을 모두 끌어안고 나도 울었다.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이 몰려왔다.

5명의 아이들을 끌어안고 재워주었다.

한바탕 눈물 파티를 벌였던 아이들은 내 곁에서 누구도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방을 나서는 순간까지 이성의 끈을 놓지 않으려 했다.

이 건은 내가 A 선임하고 담판 지어서 해결될 건이 아니었다. 날이 밝으면 당장 이 문제를 알리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1시간여 뒤 태연하게 다른 아이들을(방 2개에 나누어서 재웠다) 재우고 나와 나에게 별일 없었냐 묻는 A 선임의 말에 내 이성은 와르르 무너졌다.

나는 아무 말없이 경멸의 눈초리로 선임을 바라봤고, 선임은 내 눈빛을 문제 삼으며 먼저 화를 내기 시작했다.

(A 선임은 엄마뻘이었다)

그 뒤로 어떤 말이 오갔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기억나는 건 '관행이야! 이 정도는 괜찮아!' 정도였다.


다음 날 아침 교대하러 온 B 선임에게 나는 전날의 일을 알리고 사진과 녹취파일을 공유했다.

그리고 교대 이후 총괄팀장에게 독대를 신청하여 상황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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