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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Aug 18. 2023

나의 4번째 퇴사기 : 한. 통. 속.

나의 4번째 퇴사기 : 한. 통. 속.


진지하게 내 얘길 듣던 총괄팀장은 얘기해 주어 고맙다며, 이 이야기는 아직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그리고 나보고 직접 A 선임과 이 상황에 대해 다시 이야기를 나눠보라고 하였다.

이 상황에서 팀장도 아닌 내가 당사자와 다시 대면해서 이야기하라니….

이해할 수 없었지만, 당시에는 아무 의심 없이 동의하고 방을 나섰다.


그 후에 만난 A 선임은 내가 오해했다며, 그런 일은 없었다 잡아떼다가,

내가 증거가 있다는 말에 화를 내다가, '그 정도 체벌은 가정에서도 한다.' 합리화를 거쳐 갱년기 핑계까지 온갖 말들을 늘어놓으며 변명했다.

더 들을 가치도 없었으나 이후 총괄팀장은 어떤 액션도 취하지 않았다.

C 선생님 때에 있었던 경고 조치조차 없었다.

B 선임과 나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전문기관에 신고할 생각으로 그간 모은 미심쩍은 증거(아이들 몸에 남은 붉은 흔적들, 방문 넘어 들려오는 혼내는 소리와 우는 소리, 자기 전 아이들의 증언, 마찰음 등)들을 함께 돌아보았지만, 당시기준으로 신고가 처벌로 이루어지려면 확실한 증거(학대 장면 촬영 등)가 필요하다는 말에 어떠한 행동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인사이동이 이루어졌다.

우리 방에서 A 선임을 제외한 B 선임, C 선생님, 그리고 나 모두가 이동되었다.

분명 분리되어야 할 사람은 A 선임이었으나 아이들 옆엔 A 선임만 남았다.

게다가 B 선임과 나는 각각 다른 방, 다른 시간대로 분리되었다.

옮긴 방에서는 경력, 입사 순서 모든 조건상 내가 선임으로 올라가야 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수습 교육을 시켜준 7개월 차 신입이 선임(관련 경력 전무)이 되었다.

이유는 나보다 나이가 많아서라고 설명하였다.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갑작스러운 인사이동에 현타가 밀려왔다.

얼마 뒤 새로 옮긴 방에 있던 또래 선임으로부터 이 인사이동의 전말을 알 수 있었다.

총괄팀장과 A 선임은 10여 년간 이 시설에서 같이 근무하였으며, 원래도 절친한 친구였다고 한다.

시설에서 팀장급 이상은 대부분 굉장히 오랜 시간 함께한 사람들이기에 고발을 받아줄 리 없으며, 이번 인사이동은 보복성이 확실하단 이야기였다.


보복성 인사이동은 끝이 아니었다.

8명의 남자 아가 방에 새로 배치된 선생님들은 그 후로도 바뀌지 않았던 A 선임의 거친 훈육방식에 대한 의문과 갑작스러운 인사이동의 열쇠가 나임을 어렵지 않게 알게 되었고, 나에게 찾아왔다.

선생님들과 밖에서 만나 상황을 공유하였고, 내가 가지고 있는 증거들도 공유받기를 원하여 전달해 주었다. 

이후 대부분의 아가방 선생님들이 상황에 대해 알게 될 무렵,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A 선임이 직접 뽑아 넣은 팀원들은 A 선임의 거친 훈육 방식에 단체로 문제를 제기하였고,


보복성 인사이동은 곧바로 한 번 더 진행됐다.


나는 아가방에서 아예 분리되어 다른 층 초등 방을 맡게 되었다.

A 선임은 여전히 8명의 아이들과 함께였으며, 2인 1조였던 해당 방의 근무 방식은 1인 방식으로 바뀌었다.

해당 방을 거쳤던 모든 선생님은 분노했고 이의가 제기되었으나 묵살되었다.

아이들을 보고 버티던 나도 계속되는 보복성 인사발령에 지쳤다.

게다가 10년 이상 근속한 선임들 사이에서 나는 엄마뻘 선임에게 대든 싸가지없는 MZ세대가 되어있었다.

핵심인 체벌 문제는 쏙  빠진 채 나의 경멸하는 눈빛과 말투만이 문제가 되었다.

 

여러 선생님이 증거를 모았었으나 결정적인 증거는 잡기 힘들었고 아동학대 신고를 위한 상담까지 진행하였으나 지지부진하였다.

더구나 이젠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도 없었다.

양육자가 자주 바뀌는 상황 속 아이들의 곁에는 A 선임만이 남아있었기에 아이들은 더 이상 다른 이모들에게 맴매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정말 관행이고 괜찮은 게 맞았을까? 
내가 힘이 없어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한 건 아닐까?


심신이 지쳐가던 나는 공부를 위해 원을 나왔다.

계속 이곳에 있는다면 나 역시 이렇게 흘러가지 않을까?

공부하고 힘을 키워야 내 말에도 힘이 실리지 않을까?     

만신창이가 된 것만 같은, 죄책감에 차마 발을 떼기 어려웠던 나의 4번째 퇴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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