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라이팅 :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새로운 직원이 뽑히고 나는 곧바로 가장 먼저 입사한 선배가 되었다. 입사 1달 10일 차였다.
신규직원들은 나에게 질문을 했지만….
'내가 뭘 알 턱이 있나….'
센터장은 내가 똘똘하게 잘해 나갈 거라며 독려했다.
센터장은 나보다 연차가 많은 옆 직원이 선임, 내가 중간 역할을 해주길 바랐다.
기존 직원들의 연이은 퇴사 소식에 도망가야할지 고민하던 마음은, 연달은 인수인계와 퇴사자 공백 메우기로 잊어버리게 되었다.
새로 온 선임과 호흡을 맞춰 처음부터 다시 체계를 갖춰나가다보니 센터운영도 천천히 다시 자리잡히기 시작했다.
이렇게 센터장 1명에, 직원 3명, 이렇게 작은 조직은 처음이었지만 나름의 장점은 있었다.
작은 조직이다 보니 중간 연차인 내가 능력을 발휘하기 좋은 구조였고, 결재구조도 간단하고, 작은 사무실에 자리도 다 붙어있으니 많은 일들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단합도 매우 잘 되었다.
당시 선임은 아무리 바빠도 함께 이야기 나눌 티타임을 마련해 주며 직원들의 사기를 진작시켜 주는 따뜻한 중간 리더였다.
우리는 인근 아파트에 장이 열리는 날이면 점심시간 찾아가 시장 음식을 먹으며 시간을 보내곤 했고, 함께 먹고 함께 빼는(?) 작은 운명 공동체였다.
센터장은 자리에 있는 날이 적었다.
5일 중 2~3일 센터에 있었고, 이외의 시간은 재단의 일을 겸직하며 시간을 보냈다.
(위탁 운영기관 기관장은 겸직금지이나 당시 재단은 안하무인이었고, 내가 퇴사하기 전 뉴스에도 등장할 정도로 방만한 경영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주 1회 진행되는 주간 회의에는 꼭 참석하여 센터 일을 같이 논의하고 이끌어가셨는데 이 회의의 분위기는 그때그때 센터장의 감정과 의도에 따라 달라졌다.
그리고 회의 때마다 늘 '타깃'이 존재했다.
타깃이 된 직원은 모든 부분에서 까였다.
모든 안건에 대한 질문은 타깃에게 가게 되었다.
자신의 담당업무가 아닌 분야에도 대답해야 했고, 대답의 성실도와 상관없이 모든 대답은 다시 까였다.
'생각이 없다.', '그 연차에 그 대답이 나오는 게 맞냐?', ' 너 정말 어쩌려고 그러냐?'
그리고 회의의 끝엔 항상 그날의 타깃에
'내가 너 키워주려고 하는 거야 알지? 나처럼 너 생각해 주는 사람이 어딨냐?'
라는 말을 던지고 사라졌다.
내가 타깃이 된 날은 총성 없는 전쟁터였다.
나름 자존감 킹으로 자부하던 나는 절대 억까를 당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센터장 : 00이 건은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
나 : 현재 ㅂㅂ재단을 통해 도움 받을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고, ㄴㄴㄴㄴ분과에도 케이스 공유하여 도움받을 수 있는 방안을 더 알아보고자 합니다.
센터장 : 누가 그런 거 물었어? 내가 뭘 말하는지 몰라? 네가 뭘 어떻게 할 거냐고!
나 : 00 이와 00이 부모님과의 연락은 매일하고 있으며, 가정방문은 공문을 통해 당분간 자제 요청이 왔기에 어려울 것 같습니다.
센터장 : 답답하네 진짜…! 내가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어?
나 : ???
센터장 : 됐고! ㄷㄷ사업 계획안은 언제 올릴 거야?!
나 : 지난주 목요일에 올려서 결재해 주셨습니다.
센터장 : 내가? 언제? 가져와 봐! (훑어보기) 누가 A 방안으로 진행하래? 전면 수정하고 다시 올려!
나 : 지난 회의 때 A, B 중에서 A 방안 진행 이야기 해주셔서 A 방안으로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센터장 : 내가 언제? B로 가! 넌 이래서 안 돼, 네가 생각할 땐 A가 될 것 같아? 생각을 안 하는 거야? (회의 끝) 다~ 네가 발전하길 원해서 그러는 거 알지? 너 챙겨주는 거 나밖에 없다?
나한테 고마울 걸?
(다음 주 회의)
센터장 : ㄷㄷ사업 계획안 재단에서 보더니 너~무 좋데! 봐봐 내가 A로 가자 그랬지? 이사장님이 아이디어가 참신하다며 얼마나 칭찬해 주시던지~.
나 : (A는 내 제안이었는데…?) 센터장님 B로 바꾸라고 하셔서 계획안 다시 써왔는데요.
센터장 : 응~? 내가 언제~ 빨리 진행시켜 다음 주 회의 때 다시 보고 해야 해~
ㅁㅁ샘 ㅁㅁ사업 계획안은 어떻게 됐어?! 아직도 이 수준이야? 넌 왜 애가….
센터장의 이러한 방식은 너무도 당연하게 직원들의 퇴사를 불러왔다.
입사 7개월 차 행정직원이 개인 사정으로 퇴사하겠다 말했을 때, 퇴사하는 마지막 근무 날까지 센터장은 해당 직원을 타깃으로 엄청나게 갈구기 시작했다.
해당 직원은 가정 상황으로 피치못하게 퇴사하게 된 것인데 이 때문에 야근하지 못하고 정시에 퇴근하자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꼭 퇴근 시간 직전에 업무를 주며 퇴근할 때까지 다 해놓고 가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행정직원의 마지막 근무 날은 더 심했다.
치킨을 시켜준 대놓고 5시가 넘어서야 치킨을 시키더니 치킨이 오기 직전까지 해당 직원을 갈궈댔다.
퇴사 전까지 이것저것을 다 해놓고 가라고 말하며 일할 시간 없이 계속 불러댔다.
결국 퇴근시간이 임박하여 치킨이 오자 센터장이 시킨 일을 마무리해야 해서 치킨을 못 먹는 상황이 연출됐다.
일을 마무리하고 빨리 가봐야 해서 치킨을 먹을 수 없다고 말하는 직원에게 센터장은 불같이 화를 내더니 복도가 떠나가라 쌍욕을 하며 나갔다.
해당 직원은 마지막 날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행정직원이 떠나가고 새로운 직원이 왔지만, 경력이 1개월도 없는 신입직원이 뽑혔다.
행정, 회계와 관련 없는 내가 행정 일을 가르쳐 가며 잘 이끌어가려 노력했고, 선임마저 재단 일로 차출되기 시작하자 센터 일은 내가 총괄하게 될 때가 많았다.
다시 말하지만, 전체 직원이 센터장 빼고 3명이었다.
선임마저 재단 일로 나가면 나와 신입 행정직원 둘만 남았다.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일했다.
가르쳐 가며, 이끌어가며 일했고 내가 맡은 바 사업을 일찍 마무리하고 재단 일까지 생겨 바빠진 선임의 일을 대신 처리해 주고, 사업 한 개를 통으로 가져와 주기도 했다. (의도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즈음 타깃은 어느덧 나에게 돌아와 있었다.
센터장은 신입 직원이 잘못해도 가르치지 못한 나를 탓했고, 선임이 일을 놓치면 커버 치지 않고 뭘 했냐며 나를 탓했다.
쉽게 꺾이지 않는 내가 타깃이 되자 다른 이들은 안전해졌다.
꽤 오래 나 홀로 타깃이 되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이런 소통방식에 노출되다 보니 자존감 킹이라고 자부하던 나의 정신건강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너는 일을 빠르게만 하고 꼼꼼하게 못하더라? 너 같은 애한테 무슨 일을 맡기니?!'라고 말하다가
'역시 이 일은 우리 센터 에이스가 해야겠지~? 00샘 없었으면 우리 어쩔 뻔 했어 진짜~ 내가 사람 하나는 진짜 잘 뽑았다니깐! 부탁해~'라고 말하는 센터장에 꼼짝없이 휘둘리기 시작했다.
야근일 수는 많아지고 어느덧 센터의 사업 중 절반 이상을 내가 담당하고 있었다.
'아니 그 연차에 주임 직급이라도 달아야지? 더 열심히 해야 하지 않겠어?'
그해에 나는 재단에서 평가하는 '우수직원상'을 받았다.
하지만 심신이 지쳐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