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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Aug 18. 2023

야근 수당 : 제발 한 만큼이라도 줍시다!

야근 수당 : 제발 한 만큼이라도 줍시다!


한 달여가 지날 때쯤, 나는 새로운 직장에 자리를 잡고 생존하고 있었다.

당시 우리 팀은 대리 1명, 주임 1명 2인 체제였기에 운영 관련 업무는 나에게 몰빵 되어 있었다.

게다가 나는 운영이 이루어지는 공간인 1층에, 대리급은 2층에 사무실이 있었기에 하루 중 대리님을 볼 수 있는 시간은 거의 없었다.

나는 혼자서 업무를 파악해야 했고, 필요한 서류들을 만들었으며, 지시 없이도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해야 할 업무를 해나갔다.

여기저기서 갈고닦은 생존 능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개소가 얼마 되지 않아 체계를 잡아가고 있던 우리 팀은 계속 바뀌던 내 자리가 채워진 이후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루에 1개씩 시범적으로 운영되던 프로그램들은 하루 2~3개로 급격하게 늘어나게 되었다.

체계를 완전히 갖추지 못한 채로 업무가 늘어났다.


가장 큰 문제는 내가 한 명이라는 사실이었다.


출근하면 오전에 서류, 운영 상 온갖 준비를 홀로 마치고 그 외의 업무(재단과 지자체에서는 뭘 그리 많이 요청하는지….)를 봐야 했고, 다음 달 프로그램의 기획을 위해 자료를 찾고 홍보물을 만들었다.

환경 정리와 기자재 관리도 필수였다.

그 와중에 전화기는 쉴 새 없이 울려댔다.

1층 프로그램 실에 혼자 있으니, 전화를 받을 사람 역시 나뿐이었다.

오후가 되면 지하 2층에서 2층까지 프로그램 실들을 돌아다니며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운영하고, 피드백을 받았다.

이 프로그램이 시작되면 저 프로그램이 끝났고, 저 프로그램이 시작되면 이 프로그램이 끝났다.


전화기에도 불이 났다.

2층에서 준비물이 부족하고, 1층에선 아이가 다쳐 밴드가 필요하고, 지하 2층에선 아이들이 올 시간을 넘어서도 안 온다고 연락이 왔다.

동시에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나 오롯이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이었다.

건강을 위해 켜두었던 만보기는 매일 1만 5천 보에서 2만 보를 찍었다.

귀가하면 매일 다리가 퉁퉁 부었다.

당연히 퇴근은 18시를 넘겼다.


활동이 18시에 끝나는데 칼퇴가 가능할 리가 없었다.

게다가 퇴근해버리면 활동의 흔적들은 누가 언제 치운단 말인가?

코로나가 끝나지 않았을 때라 업무는 더욱 가중됐다.

한 번이라도 아이들 손에 닿은 물건은 모두 소독해야 했고 그 양은 어마어마했다.

미술활동이라도 한날이면 아이들이 사용한 색연필, 사인펜, 크레파스 등을 하나하나 꺼내 다 소독해야 했다. 

코로나 시국이라 모든 준비물을 개별로 주었기에 아이들의 인원만큼 갯수도 늘어났다.

24색 색연필과 사인펜을 각 30개씩 소독하고 있다보면 시계는 금새 9시를 넘어 10시를 향하고 있었다.

프로그램 실들을 돌아보며 점검하고 나면 매일 깜깜해진 뒤에야 집으로 향했다.


야근 수당을 쓸 수 있는 시간은 하루 최대 4시간, 휴게시간 30분을 빼면 3시간 반이었다.

내가 몇 시까지 일해도 최대로 쓸 수 있는 시간은 9시 반까지였다.

대부분의 날은 그저 빨리가고 싶은 마음에 휴게시간도, 식사시간도 갖지 않고 야근했던 것 같다.

하루는 10시가 넘어 혼자 야근하고 있는 나에게 센터장님이 찾아왔다.

센터장님은 매일 6시 칼퇴를 하셨는데 근처에서 모임에 참석하고 돌아가는 길에 불이 켜져있어 들렀다고 하셨다.

걱정되어 들렀겠구나 생각했던 나에게 센터장님은 "00주임님, 앞으로는 9시부터는 불끄고 야근하도록 하세요. 재단이나 시 관계자가 지나가다가 볼 수 있으니까. 그럼 수고하고 내일봐요!"라는 명언을 남기고 가셨다.

세상 허무한 야근이었다.


야근수당은 월 15시간까지만 주지만 야근은 절대 15시간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입사 첫 해, 평균 퇴근 시간은 8~9시 사이였다.

하루 2시간씩만 야근한다 해도 월 야근 시간은 총 40시간이었다.

그래도 다른 직원들도 15시간 이상 야근하며 열심히 일하는 듯하니 이상하게 여겨지지는 않았었다.

언젠가부터는 건강이 염려되어 '이제부터 딱 15시간까지만 초과근무 하자'라고 결심도 해보았지만 부질없는 일이었다.

행사나 지도점검이 있을 때는 새벽까지 야근했다.

한 번은 새벽 4시까지 야근을 하고 다음 날 7시에 출근한 적도 있었다.


매일매일이 고단했다. 그래도 보람찬 하루의 마감이었다.

하루 종일 만났던 아이들이 즐겁게 놀다 간 것만으로도 하루치 보상은 충분하다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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