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어 마지막 날 - 폭우 속의 라이딩 (D + 8)
드디어 투어 마지막날인 아홉 번째 날이 밝았다. 쟈오시를 출발하여 처음 출발장소인 타이베이 송산역까지 약 87Km의 비교적 짧은 라이딩이 예정되어 있다. 마지막날도 야속하게 호텔 조식은 중국식이다. 대충 배고프지 않을 만큼만 먹고 마지막 라이딩 준비를 한다. 밤부터 시작된 부슬비가 아침이 되니 제법 굵어졌다. 우비를 입고 헬멧에는 샤워캡을 씌우고 레인부츠까지 착용하면서 비를 피하기 위한 모든 대책을 강구했다. 안전을 위해 우중에는 속도를 내기 힘들다. 바짝 긴장해서 라이딩을 이어간다. 오른쪽으로 멋진 해안 풍경이 펼쳐졌지만 비가 쏟아져서 풍경을 감상하기 어려웠다. 그저 어떻게 하면 비를 조금이라도 덜 맞을까 고민하면서 조심조심 라이딩을 했다. 멋진 바닷가가 보이는 곳에서 첫 번째 휴식을 맞이했다. 재빨리 바나나로 허기를 달랬다.
그 사이에 빗방울은 제법 굵어져서 시야를 가릴 정도였다. 그동안 날씨가 좋았던 것을 기뻐해야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내심 하루만 더 버텨줬으면 얼마나 좋았을지 아쉬웠다. 365일 중에 360일 비가 온다는 타이베이 날씨를 실감한다. 타이베이 근교에 왔나 보다. 야속하리만큼 비가 계속되었다. 비를 피해 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그룹라이딩이라는 게 나 혼자 빠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빗속을 15km 정도 더 달리니 자전거 전용 터널이 나왔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옛 철로를 개조해서 자전거 전용 터널을 만들어놨다. 이색적인 경험이어서 설레었지만 그보다 터널 안에서는 비를 맞지 않는 것에 감사했다. 스산한 기운이 느껴지는 터널 안은 조명이 잘되어 있어 라이딩을 즐기는데 제격이었다. 터널은 꽤 길었다. 20분 남짓 터널이 이어졌다. 적어도 20분은 비를 피할 수 있었다.
터널이 끝나자 다시 폭우가 시작되었다. 속절없이 비를 쫄딱 맞으며 라이딩을 계속했다. 아침에 비를 막아보려고 준비한 것이 다 무용지물이 되었다. 비가 어느 정도 온다면 우비와 레인부츠가 제 역할을 했겠지만, 몇 시간 동안 폭우가 계속되면 그 어떤 보호 대책도 소용이 없다. 신발은 물론 양말까지 비에 흠뻑 젖었다. 그나마 우비의 성능이 좋아서 상의 안쪽은 보호됐다. 상의까지 젖으면 체온유지도 힘들기 때문에 어떻게는 상의는 보호해야 한다.
폭우와 한 시간 남짓 사투를 벌이며 라이딩을 계속해 점심식사 장소인 '스펀'에 도착했다. 타이베이 근교에 위치한 스펀은 깃차길에서 풍등을 날리는 것으로 유명해진 마을이다. 재빨리 식당 안에 있는 화장실에 들어가 양말을 벗어 물을 짜내고 아쉬운 대로 옷에서 물기를 털어본다. 몇 시간 동안 비를 맞았기 때문에 식당 안의 온기가 좋았다. 점심은 대만식 샤부샤부가 준비되었다. 아들은 괜찮다며 곧잘 먹었지만 나는 이마저 대만 특유의 향이 나서 먹기가 힘들었다.
식사 후에는 완주 인증서를 수여하는 시간을 가졌다. 원래 계획으로는 마지막 도착장소인 송산역에서 인증서를 나누어주는 것이지만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미리 실내에서 인증서를 준다고 했다. 한 팀 씩 앞으로 호명을 해서 매달과 인증서를 나누어주고 간단한 소감도 들었다. 중국어로 진행되어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없었지만 분위기 만으로도 사람들의 소감을 알 수 있었다. 다들 이번 라이딩을 많이 기대했고 라이딩 중간에 어려움도 많이 겪은 것 같았다. 나와 아들은 홍콩에서 온 몇 분과 함께 해외 원정팀으로 호명되어 앞에 나갔다.
"아들과의 라이딩이 너무나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이고, 라이딩은 다 좋았으나 음식이 좀 힘들었다."
간단한 소감에 다들 박수를 쳐주었다. 인증서 한쪽에는 셋째 날 야외에서 찍은 사진이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대만 한 바퀴 라이딩 경로가 지도에 그려져 있었다.
삼십 분 남짓 진행된 인증서 수여식을 마치고 커다란 풍등에 서로의 소원을 써서 같이 하늘로 날렸다. 그사이 비가 그쳤다. 옷이 흠뻑 졌어서 찝찝하기는 했지만 그나마 비가 그쳤다는 것이 감사했다.
다시 준비하고 종착지인 타이베이를 향해 라이딩을 시작했다. 스펀이 위치한 곳은 산악지형이었다. 타이베이로 가려면 산을 넘어야 했다. 구불구불 가파른 비탈길을 한참 올랐다. 정상에 올랐다는 즐거움도 잠시 이번에는 가파른 내리막이 이어졌다. 중간에 자동차와 같이 달리는 제법 긴 터널도 통과해 내리막을 달렸다. 비가 그치니 온도가 오르기 시작했다. 우비를 벗고 마지막 라이딩을 즐겨본다. 타이베이가 가까워오자 신호 때문에 속도를 내기 어려웠다. 몸은 지칠 때로 지쳤으나 이제는 끝이 보인다고 생각하니 어디에 남아있었는지 기운이 올라왔다. 어느덧 마지막 휴식장소에 도착했다. 스태프들이 마지막 남은 바나나와 사과를 나눠주며 격려하였다. 9일 동안 그렇게 먹었는데도 바나나는 질리지가 않았다. 중국음식을 못 먹는 상황에서 바나나가 없었다면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나마 영어로 소통이 가능했던 홍콩분들하고 마지막 인사도 나누고 힘들지만 열심히 영어로 일정을 설명해 주었던 가이드 샤론과도 작별의 아쉬움을 나누었다.
이제는 목적지가 보인다. 힘을 내어 마지막 라이딩을 즐겨본다. 시내로 들어오니 자동차와 같이 달려야 해서 정신을 다잡는다. 마지막까지 안전이 제일 중요하다. 어느덧 종착지인 송산역이 보이기 시작한다. 스태프들은 목적지 바로 앞에서 잠깐 쉬면서 뒤쳐진 일행을 기다렸다. 이어진 짧은 라이딩을 마치고 드디어 종착지인 송산역에 도착하였다. 9일 900Km의 라이딩. 라이딩을 마치는 순간 그동안의 어려움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갔고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감격이 올라왔다.
드디어 끝이다. 몇 달 전 설레며 라이딩을 계획했을 때가 떠올랐다. 그토록 원했던 대만 라이딩이 끝이 났다. 그제야 송산역 한쪽에 설치되어 있는 '0 Km'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첫날 출발할 때는 눈여겨보지 않았던 표지판이 라이딩을 끝낸 이 순간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다 같이 마지막 단체 사진을 찍고 서포트카에서 짐을 내려 해산했다. 완주의 기쁨도 잠시 이제는 먹을 만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허기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아들과 송산역 지상의 쇼핑센터에 위치한 회전초밥집으로 직행했다. 이후 한 시간, 초밥을 정신없이 흡입했다. 눈앞에 레일을 타고 지나가는 초밥들을 닥치는 대로 집어 들고 먹어치웠다. 초밥 접시가 양쪽에 수북하게 쌓일 때쯤 정신을 차리고 식사를 마쳤다.
이렇게 대망의 대만 자전거 일주를 마쳤다. 꿈꾸는 것은 삶을 의미 있게 한다. 나이와 상관없이 하고 싶은 것을 꿈꾸면서 사는 삶을 소망한다. 모든 것을 다 이뤘다고 생각하는 순간 자전거 일주라는 꿈이 생겼다. 이번 대만 라이딩을 시작으로 일본, 네덜란드 등 자전거로 유명한 나라들을 일주해 보는 꿈을 꿔본다. 9일 동안 군소리 없이 동행해 준 큰 아들, 매일 영상통화로 응원해 준 와이프, 속으로 응원해 준 둘째 아들에게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