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집 밖에서 지냈고,
나는 집 안에서 지냈다.
처음으로 공간이 분리되고 나서
나는 겨우 숨을 쉬었다.
그가 없는 낯선 고요함 속에서
‘이제는 안전할 수 있다’는 마음이
조금씩 나를 덮기 시작했을 때였다.
일주일 뒤,
그에게 전화가 왔다.
벨소리가 울리는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손이 떨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받을지 말지 내가 결정할 수 있다는 사실이
조금 나를 단단하게 해 줬다.
전화를 받았다.
그는 평소처럼,
변한 척하며 말했다.
“잘 지냈어?”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말했다.
“불편하니까 전화하지 말아 줘.
이러면, 경찰에게 말할 거야.”
그 말이 내 입에서 나온 순간
나는 내 안에서 아주 작은 불꽃 하나가
**“이제 정말 나를 지키겠다”**고 속삭이는 걸 느꼈다.
그는 당황했다.
당황한 채 얼버무렸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그날의 나는,
더 이상 참지 않았고,
더 이상 이해하지 않았고,
더 이상, 미안해하지 않았다.
나는 나를 지키는 사람이 되기로 했으니까.
“얼굴만 한 번 보자.”
“30분만. 진짜 마지막이야.”
“얘기 좀 하자,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될지…”
그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망설였고,
결국 카페에서 마주 앉았다.
그날, 그는 내내 다정했다.
낯설게 다정했고,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내가 얼마나 너를 아끼는지 이제 알겠어.”
“진짜야. 널 사랑해. 이제 너에게 다 맞출게.”
“내가 너무 많이 잘못했어. 미안해. 정말 미안해.”
그는 연신 사과했고,
내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흔들렸다.
아이들도 있고,
나도 누군가를 기다렸던 마음이 있었는지
그 말에, 그 눈물에
잠시 ‘혹시 정말…’ 하고 기대하는 나를 보았다.
그게 너무 싫었다.
기다린 듯한 내 마음.
누군가 나를 데리러 와주기를 바란 듯한
그 마음에 스스로 환멸이 몰려왔다.
그래도,
나는 다시 받아줬다.
단, 조건을 걸었다.
다시는 폭력을 휘두르지 않을 것
나의 엄마에게 가서, 진심으로 사죄할 것
같이 심리상담받을 것.
조건 속에
나의 엄마에게 가서 사죄하라는 이유는
그동안의 폭언과 폭력을
그와 같이 사는 10년간 단 한 번도 나의 엄마에게 고하지 않았으니까…
엄마는 그 10년을 예쁜 사위라 생각하고 속고 살았으니까.
내가 걸 수 있는 최소한의 경계.
그 선마저 없으면
나는 무너질 것 같았으니까.
**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기회가 아니라 시험이었다.
내가 나를 다시 지킬 수 있는지,
그의 진심이 시간 안에서도 남아 있을 수 있는지.
하지만 그날의 나는
너무 지쳐 있었고,
누군가가 나를 미안하다고 끌어안는 게
너무도 오랜만이었다.
그 말들이 거짓이라서 슬픈 게 아니었다.
그 말에 내가 기대었다는 게 더 슬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