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토에 서서 산하를 바라보다 1화)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
옛사람들은 삶터 주변의 어떤 산을 지표를 인식했다. 산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세월이 흘러도 그 자리를 그대로 지키면서 그 안에서 살아가는 생명에게 안식처를 제공하였다. 문명이 발달하자 사람들은 도회지를 이루고 도회지의 흥망성쇠와 왕조의 변화에 따라 지표로 인식되어 온 산의 이름이 지명과 관계 맺기를 하였다.
중국 강토에서 산과 구릉은 70% 정도이다. 여기에는 산과 구릉뿐만 아니라 평원 고원 등도 있다. 한국의 경우 국토의 2/3이 산지로 그 안에는 산 평야 등이 있으나 비교적 단순하며 산의 높이도 평균고도 482m로 중국에 비해 상당히 낮다.
우리는 지명을 통해 주위를 인지한다. 어떤 지명은 단순한 위치 표시를 넘어 사람들이 오랜 시간 품어온 숭배 기억 믿음을 담고 있다. 예로부터 신성한 장소로 여겨졌거나 하늘과 맞닿은 산은 신이 머무는 곳이라 여겼고 강토나 마을을 보호해 준다고 믿었다.
한국과 중국 모두 산을 숭배하고 믿고 기억해 왔지만 그 방식에는 차이가 있으며 이러한 차이가 명산의 이름이 지명에 스며들거나 마음에 기억되었다.
중국에서는 삼산三山 오악五嶽 오진五鎭이라 불리는 신성한 산들이 있었다. 이 산들에 대해 황제는 산에 올라 하늘에 제사 지내고 나라의 정통성을 선포하였다. 그래서 정치적 의미를 가진 산은 명산 숭배로 이어졌고 이름이 주변의 지명에 반영되었다.
삼산은 진·한 시대 이전은 곤륜산 불주산등이라 했다. 진한시대에 들어서서 진시황과 한무제의 신선이 되고자 하는 활동과 연관되어 이 산들은 해상에 있으며 이름은 봉래 방장 영주산이라 인식했다. 그곳에 신선이 산다고 믿고 이 믿음은 신화로 정착되고 도교로 연결되었다.
그러다가 위진남북조시대부터 도교의 신화체제로 편입되었다. 그래서 전설은 찾기 어렵다. 산동에 있었던 연나라와 제나라의 해변지역에 신선의 술법을 닦는 방사 무리가 생겨났으며 방사와 도교 신도는 바다 위의 신선이 사는 곳이 있다고 여겼고 산동 하북의 해변지역에 산의 위치를 정했다.
지명에 이들의 관념이 스며들었는데 산동성 연태시 봉래구는 바다 위 산인 봉래산의 영향을 받아 태어난 지명이다. 그러나 방장산과 영주산을 의미하는 지명은 없다.
오악은 고대 여러 나라들이 제사를 지내던 산이다. 숭산은 하나라 우임금이 부락 연맹의 대표로 제사한 산이며 진나라 이후 통일 왕조가 등장하면서 동·서·남·북·중의 다섯 방향을 상징하는 산으로 확장되었다. 동·서·중악은 한漢 선제가 결정한 후 변동 없이 현재에 이르고 북악과 남악은 이보다 훨씬 이후에 정립되었다.
북악은 명청시기 하북 곡양의 대무산(옛 항산)인데 한 문제 이름인 유항을 기피하여 상산이라 개명되었고 장소도 북으로 옮겨져서 산서성 항산으로 되었다. 당·송 시대 황제들의 빈번한 제사 활동도 지명에 영향을 끼쳤다.
동악 태산 → 태안시 대악구 태산구 신태시 서악 화산 → 화음시 화주구
중악 숭산 → 숭현 남악 형산 → 남악시 형산현 형양시
북악 항산 → 대무산에서 명·청 시대 산서성 항산으로 옮겨졌으나 지명에는 남지 않음
(동악 태산과 지명 위치)
이 외에 오진은 오악보다 한 단계 낮은 위상의 산으로 북송 시기부터 지명에 스며들었다. 이도 통일왕조의 산악숭배 사상에서 출발한다. 예를 들어 북진은 의무려산으로 현재 요령성 북진 시에 그 이름이 있다.
한국에도 산을 숭배하는 전통은 매우 오래되고 깊다. 삼신사상 진산 개념 도교의 신선사상 등과 어우러져 우리의 산악신앙 문화를 형성했다. 신라 고려 조선 시대에는 국가 차원에서 이 산들에 제사를 지냈다.
그러나 한국의 삼산과 오악 개념은 특정 행정구역과 연결되기보다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신성하게 여겨진 상징적인 의미로 승화됐다. 신성함은 우리 겨레의 공통적인 공유의식이었던 것이다. 이수광의 지봉유설에 따르면 봉래산은 금강산 방장산은 지리산 영주산은 한라산이 해당된다고 했다.
또한 오악은 다음과 같다고 여겼다.
동악 : 금강산 서악 : 묘항산 남악 : 지리산 북악 : 백두산 중앙 : 북한산
신라 시대에는 또 다른 체계를 갖고 있었는데 예를 들어 동악은 토함산 북악은 금강산 서악은 선도산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고을마다 진산이라 불리는 주산主山이 있었는데 진산은 고을을 지켜주는 산으로 여겨졌고 주민들은 그 산에 제사 지내며 마을의 평안을 빌었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한국에서는 이처럼 신성하게 여긴 산의 이름이 행정지명으로 사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진산이 있어도 그 산 이름이 곧 고을 이름이 되지는 않았다. 간혹 어떤 산이름이 다른 곳의 산에서 보이도 했으나 행정 지명에는 없다. 현대에 들어서 명산 이름을 딴 지명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왜일까?
한국에서는 산의 신성함이 특정 지역의 전유물이 아니고 공유의식이었다. 그래서 공통으로 경외하였기에는 특정 행정구역의 이름으로 독점되는 것이 어울리지 않았다. 예를 들어 백두산이나 금강산 같은 산을 한 도시의 이름으로 쓰기엔 그 상징성이 너무 컸던 것이다.
또한 중국은 황제가 직접 산에 올라 제사하며 산을 정치권력의 상징으로 삼은 반면 한국은 대다수 사람들의 정신적 종교적 상징으로 인식했다. 그래서 행정지명보다는 전설 설화 제사 등 기억에 더 많이 남게 된 것이다.
그래서 산악신앙은 현실의 지방행정 이름보다 마음과 정신세계에 들어선 개념이다. 신이 머무는 곳이라는 의미는 지리적이지 않고 정신적인 의미를 가졌다. 산은 어떤 지역을 다스리는 대상이라기보다는 우리의 삶을 지켜보고 위로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그래서 이름을 지명으로 씀에 조심스러웠던 것이다.
사진:스플래쉬 지도:바이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