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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중국의 대표산맥과 지명

(강토에 서서 산하를 바라보다 2화)

by 오해영

산과 산맥 그리고 지명


산맥은 여러 산들이 줄지어 있는 지형으로 산의 집합체라 할 수 있다. 산맥의 형성은 지질 구조나 지반 운동의 결과이며 개개의 산보다 규모가 매우 크므로 지리적 효과가 산과 다르게 나타난다.


국어사전에서 산은 평지보다 훨씬 높이 솟은 땅덩이이며 산맥은 큰 산들이 한 방향으로 길게 이어진 줄기를 뜻한다고 설명되어 있다. 중국의 풀이는 조금 다르다. 평지로 둘러싸인 고도가 높은 지형을 산이라 부르며 지각 운동·화산 활동·침식으로 형성되었고 산이 이어져 산맥이 되고 수많은 산봉우리가 있다고 설명한다.


엣 사람들은 산에 의지하여 삶을 엮어왔다. 집터를 잡고 먹을 것을 구하고 땔감을 마련함이 산과 깊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래서 산과 산맥은 인간의 삶과 정신에 다양한 영향을 미쳤다.


한국과 중국은 산이 국토의 2/3을 차지하여 삶이 산과 긴밀한 영향을 주고받았다. 그리하여 자연스럽게 산에는 이름이 붙었고 그 이름이 주변 지명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지명에 영향을 미치거나 반영되는 정도는 다르다.


태백산맥과 진령산맥은 한중의 대표 산맥


중국의 대표적인 산맥은 진령산맥秦嶺山脈이다. 진령산맥은 동서로 길게 뻗어 있으며 넓게는 중국 화하 문명의 핵심 지대를 포함하며 좁게는 관중평원과 한중분지 사이의 산악지대를 가리킨다. 또한 여맥이 동쪽으로는 복우산·동백산·대별산까지 서쪽으로는 감숙성과 멀리는 신장지역까지 이어진다.


이런 지리적 특징으로 중국을 아열대와 온대 밀과 쌀 재배의 경계를 이룬다. 또한 중국 역사의 핵심지역이었으며 지방 행정 구획에 큰 영향을 주었고 그 결괴 산들의 이름이 지명에 직접 반영되다. 이들 지명은 주로 진령산맥의 북측 지역에 분포한다. 또한 산맥의 여맥 영향이 동서 쪽으로는 멀리까지 미쳤다.


진련산맥과 산들의 영향이 반영된 지명을 보면 다음과 같다.


관중평원 서부 위수 남측 진령산맥 북쪽 자락에 분포한 지명

태백산→ 섬서성 태백현 무공산 → 함양 시 무공현 진창산 → 섬서성 진창구


진령산맥 서쪽 여맥 산이 영향을 미친 지명

용산→ 육반산 남단 기산 동쪽 주나라 발상지 공동산→평양시 공동구 도교 명산 하란산→ 감숙성 하란현


강족·흉노족 언어와 관련이 있는 산과 지명

민산→ 감숙성 정서 시 민현 탕창산→ 용남시 탕창현 휘현(제갈량 강유 종회의 군사 거점)

고란산→ 란주 지역 대산 뜻 기련산→ 하서주랑 기련현(유목민 하늘 숭배 의미)

산단산→ 장액시 산단현(산의 단주색 관련)


유목민의 신앙 중심지 천산→ 신장 우루무치시 천산구


지명 지도2-1.png




한국의 대표 산맥은 태백산맥이다.

원산만 남쪽 황룡산에서 시작해 강원도와 경상도를 따라 남하하는 우리나라 최대 산맥으로 여러 산맥과 산들이 여기서 뻗어 나간다. 태백산맥은 진령산맥처럼 기후대에 영향을 미치거나 농작물 재배 역할은 없다.


그러나 산맥이 길고 높아 산맥의 방향에 따라 남북 방향의 교류가 동서방향의 교류보다 훨씬 많았었다. 동서의 교류는 산맥의 고개를 이용한 좁은 교통로를 이용하여 제한적으로 문물과 사람의 내왕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태백산맥과 산들의 이름이 지역의 지명에 영향을 미친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경향은 고려 중기까지 이어졌다. 그러나가 근대 이후에 태백산맥이나 다른 산맥의 이름이 행정 지명에 반영된 사례가 나타났다.

그림2-1.png


. 산 이름에서 영향을 받은 지명을 도면에 표기하면 다음과 같다.


그림2-1.png



왜 차이가 생긴 걸까?


고려중기까지만 해도 광역행정구역인 도의 설치는 태백산맥의 방향에 따라 동쪽과 서쪽의 행정구역이 달리하여 산맥을 넘는 경우는 없었다. 그러다가 고려 말기에 들어서 태백산맥을 동서로 넘나든 지방 행정구역을 설치하는 시도가 있었고 조선시대 8도 체체에 들어서 산맥을 횡단하는 행정구역이 이뤄졌다. 그리하다 보니 지역의 시군 행정구역의 지명에 영향이 생기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렇게 행정구역을 설치한 이유는 생활권과 행정 효과를 고려한 결과로 짐작된다. 산맥과 그 산맥을 구성하는 산은 대체로 넓고 험해 하나의 생활권으로 묶기 어렵다. 행정 구역은 인구 분포와 생활권을 기준으로 설정되므로 지나치게 넓은 지역을 한 구역으로 하면 관리 효과를 얻기 어렵다. 특히 공간 이동 기술이 낮은 왕조 시대의 경우 지방행정 구획은 더욱더 그러하였다.


그러다 보니 전통시대 행정지명의 관행을 보면 읍치(행정 중심지)나 교통 요지 관아 장터 하천 주변 등 접근성이 좋은 곳을 기준으로 정했다. 산은 사람이 살기 어렵고 접근이 불편하다 보니 지명에 직접 반영되는 일이 드물었다.


그래서 산의 이름이 나타나거나 영향을 준 부분은 주로 사찰·신앙·제천 의식 등이었다. 예를 들어 마니산은 단군 신화와 연결되지만 마니시라는 행정 지명은 없다.


근대 이후 변화


20세기 후반부터는 소규모 지역의 정체성을 강조하려는 흐름 속에 산 이름을 딴 행정구역이 일부 등장했다. 그러나 이는 행정구역 개편이나 관광 개발 목적으로 전통 지명 명명방식과는 성격이 다르다.


중국은 산맥과 산의 이름이 오래전부터 지명 형성에 직접 영향을 미친 반면 한국은 생활권과 행정 관행으로 인해 산 이름이 지명에 반영되는 경우가 드물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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