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토에 서서 산하를 바라보다 제14화)
현대 국가에서 핵무기는 국가 안전보장에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여 많은 나라들이 핵을 개발하려고 한다. 그럼 고대국가 특히 철기시대 이전에 핵무기 역할을 하는 그 무엇이 있었을까? 바로 청동기와 청동을 만드는 비법이 고대의 핵무기이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나? 그 당시 나라의 지배자는 적대국가로부터 안전 확보와 지배체제 유지가 가장 중요한 관심사였으며 이를 위해 청동제 무기와 제사 의례용 청동제 용구를 준비하였다.
청동은 구리를 주성분으로 주석과 납을 첨가한 제품이다. 주석은 구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고 녹는점을 낮춰 가공을 쉽게 하며 납은 기능을 더 오래간 유지 시켜 준다. 이렇게 하려면 원료 배합이 적정해야 했다. 구리 광산은 좀 흔한 편이지만 주석은 매장지가 별로 없어 이의 확보에도 큰 노력을 해야 했다.
그래서 청동제품은 매우 귀해서 특권층이 사용하는 무기와 의례용 기구에 쓰였으며 특권층의 일상용품과 백성들의 생활용품은 대부분 목기와 토기였다.
신화시대 통치자인 황제는 수산首山에서 동을 채굴하였으며 요임금은 금 은 주석을 주조했다 한다. 그만큼 아주 오래전부터 청동기는 통치자에게 매우 중요했다. 역사 시대인 하상주夏商周 시기 청동은 무기와 제사용기를 만드는데 핵심으로 여겨져 황금이나 마찬가지이었다.
또한 전쟁이 빈번해지자 누가 청동기 원료와 생산 장소를 통제하냐가 중국 패권 장악의 열쇠가 되었다. 그리고 제련 기술이 높지 않아 강도와 유연성을 가진 제품을 생산하는 기술이 중요했다. 여기에 나라의 도성에서 먼 거리에 광물의 생산지가 있어 원료의 안전한 운반도 주의해야 했다. 이것이 청동기 시대의 본질이다.
원형에 구멍 뚫린 동전은 주周나라 때부터 사용되었는데 주재료는 역시 동이었다. 동보다 상대적으로 수요량이 적지만 주석 납도 동전발행에 필요한바 경제면에서도 청동은 고대 정권의 주재자였다.
역사의 눈으로 보면 하상주 시기 원료 공급지는 산서 하남 섬서의 경계지역과 호북 안휘 강서 경계 지역 두 곳이었다. 산서상 강현 신강현 곡옥현에 위치한 강산(현 자금산, 산의 색깔 강자색)에서 풍부한 동광 금광이 있었고 강산 북부의 여량산과 태항산의 석탄은 청동기 제련에 필요한 열을 내는 원료이었다.
그래서 춘추시대 진국晉國은 도읍의 별칭을 강이라 했으며 전국시대 위국魏國의 패업을 가능케 한 것도 이 강산의 광산 덕분이었다. 지금도 이곳의 청동기 제련 유적은 당시 화려한 영광을 보여준다.
동 주석 납의 채광지는 붉은색이 난다 하여 자금紫金으로 불렸다. 강소성 남경 최초 이름은 금릉인데 초위왕 시기 금광을 채굴한 자금산에서 유래한다.
안휘 호북 강서에 위치한 동백산과 대별산의 동릉시 동관구 대야시 황석시 서창시는 하상주夏商周 시대 동채광의 집중지로 채굴된 광물을 여수 경수 회수를 거쳐 중원으로 운반되었다.
안휘성 등릉시는 주상商周시기 채굴장소였으며 한당漢唐시기 매우 융성했다. 오대십국의 왕조인 남당南唐은 이곳에 채광관리를 두면서 이름을 동능현이라 개명하였다.
호북 대야시에 있는 동록산은 금 철이 매우 풍부하여 고대 패업의 전형을 보여줬다. 이 지명도 남당시기 개명된 지명이다.
순임금 우임금 주소왕 주목왕의 남쪽 순시 또는 남쪽 정벌 이야기와 주나라가 설치한 한양제후는 이 지역의 주석 납 광산의 통제권을 확보하기 위한 이야기이었다.
광동성 자금현은 관내 동 금이 있어 1914년이 이르러 자금 명칭을 얻었는데 영안현을 자금현으로 개명한 것이다. 복건성 용암시 상항현의 금산에 있는 금동광은 중국에서 유수의 광물지역이나 개발이 늦었고 지명도 자금으로 바뀌지 못했다.
납광은 운남 내몽고 감숙 광동 호남 광서에 주로 많으나 납으로 이름 지은 현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강서성 동부에 연산현이 있는데 설치는 남당시기이다. 우이산과 감강지류를 이용하여 값싸게 운반하였다.
섬서성 동권시는 진한시기 대우현이었지만 5호 16국 시기 관내 동銅관 이름의 군대 기지가 있었고 북위 때 광산 감독기구를 설치하여 동관현이라 하다가 동同관으로 바뀌었다. 이처럼 청동기와 원료 운반 이야기는 아주 오래전부터 생겨나 자연스럽게 지명에 스며들었다.
한반도의 청동기 시대는 기원전 15세기부터 기원전 4세기의 시기로 한반도 전역에서 청동기 유물이 출토되나 청동기 유물은 중국 영향권이 아니다. 청동기를 기반으로 성립된 최초 국가는 고조선이며 주로 무기 의례용 도구 장신구 등으로 사용되었다. 이는 지배자(군장)의 권력과 신성함을 상징했고 비파형 동검 거울 청동 방울 등이 대표적인 유물이다.
한반도 청동기 시대의 광산 사례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주로 만주 지역에서 정제된 청동 덩어리를 교역하여 들여온 후 거푸집을 이용해 청동 제품을 제작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한반도의 고대국가들은 중국의 경우처럼 패권을 강하게 추구하지 않아 청동기에 관하 이야기가 많지 않으며 지명에도 영형을 주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