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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길 이름이 지명에 남긴 자취

(강토에 서서 산하를 바라보다 제13화)

by 오해영

물이 모여 흐르는 길을 강이라 부르며 옛 우리말로는 가람이고 한자로 강江이라 표기할 수 있다. 강토를 바라보면 여기저기 많은 물길을 볼 수 있는데 옛사람들은 이 많은 물길을 어떻게 구분하고 이름 지었을까?


우리나라의 경우 특별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으나 중국은 물길마다 고유의 한자를 부여하고 불렀다 한다. 그러다가 사람들의 생활영역이 넓어지고 여기저기 많은 지역에서 거주하다 보니 구분해야 할 물길이 많아지자 새로운 이름 짓는 방식이 필요하였다.


중국의 물길 이름과 지명


황하와 장강은 중국 북방과 남방을 대표하는 물길이다. 처음 사용된 한자를 보면 황하의 경우 하河로 표기하고 장강의 경우 강江 글자를 사용하였다. 이는 오로지 물길을 구분하기 위한 표기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물길마다 위에서와 같이 고유의 한자를 사용하다 보니 사용된 한자가 많아졌다. 이제 하와 강은 황하와 장강을 지칭하는 고유명사에서 보통명사가 바뀌고 물길을 통칭하는 단어가 되었다. 특히 진한秦汉이후 글자의 뜻도 넓어졌다.


그래도 황하와 장강의 지역 대표성이나 문화 상징성으로 인해 북방은 하를 사용한 물길 이름이 남방은 강을 사용한 물길 이름이 많게 되었다. 여기에 당송唐宋 시기 시인들이 노래할 때 장강 이남 물길에는 크기와 관계없이 강을 사용하고 북쪽 지역의 물길에는 하를 썼다.


한자를 보면 강은 좌 삼수변 氵에 공工으로 구성되어 있어 크고 넓다는 느낌이 강하다. 남방 지역은 강우량이 많고 물살이 거세며 물길 넓고 곧다. 하河의 경우 삼수변 氵에 가可 로 구불구불하다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물길 이름의 특징을 북하남강北河南江이라고 말할 수 있다. 중국 지도를 펴 놓고 보면 기주 즉 전통적인 중원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 하북성 중남부, 산동성 서부, 하남성 북부의 대부분 물줄기는 하로 표기되어 있고 광동성 주강 유역의 물길은 모두 강이라 부른다. 이런 경향이 물길 주변의 지명에 영향을 미쳤다.

광동성 주해시는 주강입구 남해에서 유래하며 운남성의 임창시는 난창강에서 나왔다. 또한 남강 염강 강문 양강도 모두 강 글자에서 이름을 얻었다. 복건성 천주시 관할 진강晉江시의 진은 중원인들이 난을 피해 남쪽 이주 후 고향 생각을 하면서 강 글자를 붙인 경우이다.


그러나 강과 하가 유일한 물길 명칭의 대표는 아니다. 독瀆 글자도 큰 물길에 사용되었는데 독립된 발원지가 있고 물길이 바다로 유입된 경우 쓰였다. 고대시기 중요한 4독은 장강 황하 회하 제수를 가리켰다.


장강과 황하는 중국 땅의 상징과 같고 회하는 중요한 분계선 역할을 하였다. 회하 남쪽의 귤을 회하 이북에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나왔으며 남송과 금나라의 국경선이기도 했다.


안휘성의 회북시 회남시는 회하 기준으로 명명하였는데 한 왕조의 영포 회남왕도 이곳을 말한다. 안휘성 성도 합비는 비수에서 유래하지만 회하와 연관 있다. 즉 진秦 시대 합비현이라 했는데 비수와 시수가 합비에서 합류함에 기인한다.


그러나 남경의 진회하의 회는 회하와 무관하다. 원래 이름은 용창포로 두목의 시에서 박진회로 노래하여 이렇게 이름이 불렸다.


제수도 무척 크고 중요한 물길이었으나 황하 흐름 변경으로 소실되었다. 그러나 제수 물길은 지명으로 남아있다. 산동 제남은 제수 남쪽 의미이며 하남성 제원시는 제수 발원지를 제령시는 제수의 안녕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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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 지역에는 강과 하가 혼용된다. 요령성 서쪽의 경우 하를 사용하여 요하라 한다. 하지만 요녕성 북쪽과 동쪽의 경우 눈강 흑룡강 우수리강처람 강 글자의 물길이 많다.


왜 그랬을까? 아마 서쪽의 경우 중원과 가까워 중원문화의 확장과 영향을 받았으며 동북 지역의 물길은 물이 맑고 유량이 많아 남방의 경우와 비슷했고 또 거란족과 여진족의 한족 문화의 받아들임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흑룡강성의 흑하시 나강시 용강시 남하시 탑하현도 강 물길에서 유래한다. 길림성 송원시는 송화강에서 목단은 송화강 지류인 목단강에서 나왔는데 목단은 꽃이 아니라 만주어 만곡의 음역이다. 목등시는 우수리강 지류인 목릉하에서 유래한다. 길림성 요원시는 동요하의 발원지기 있어 그리 이름 지어졌다.

지명 지도.png


한반도에서 물길 이름과 지명

우리나라의 경우 강과 하의 구분은 없고 일반적으로 규모가 큰 물길을 강이라고 부르고 이보다 작은 물길을 천川이 하며 하는 쓰이지 않는다. 천의 한자 본래의 뜻은 산간이나 고원의 평탄하고 낮은 지세에 흐르는 물길을 말한다.


그럼 강 글자의 쓰임이 왜 대세가 되었을까? 혹시 우리의 물길은 완만하고 기후는 습윤하여 중국의 남방과 비슷하다고 여겼을까? 아니면 중국 남부와 문화교류가 많았음에 영향을 받은 것일까?


하의 경우 조선시대 중국에 보낸 외교문서에서 하 글자를 사용하는 경우가 보이나 이는 중국식 표현에 맞추기 위한 형식적 표현(한강→漢河)이었다. 실제 생활에서는 강을 사용하였다.


우리나라도 독 글자를 오래전부터 사용하였다. 신라시대 독의 사용을 보면 국방이나 정치면에서 중요한 물길에 사용하였다. 그래서 동서남북에 4독을 두었는데 남독 황산하는 가야세력을 서독 웅천하는 백제 세력을 북독 한산하는 고구려 세력을 진압하기 위해 그리하였다.


천川이 들어간 지명은 상당히 많은데 주로 물길 중심지역이서 주로 보인다. 이는 실제 생활에서 강보다는 천이 더 관련이 깊은 물길이었다는 생활 문화를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양양 남대천의 경우 한자로 한수로 표기되나 대大는 순수 우리말인 한이고 천川은 물길이라 우리 지명 문화에 특징에 포함된다.


사람마다 가슴에 고향의 물을 가지고 있다. 큰 강의 물줄기가 울렁거려 파도가 일어나면 벼꽃의 향기가 강 건너까지 퍼져가고 우리의 마음에 고향의 물길이 떠오른다. 그리되면 물길과 지명은 우리를 고향으로 태워다 주는 배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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