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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꼼지파파 Nov 23. 2023

무서운 김치찌개

잘 먹고 잘 살려는 사람 이야기



난 김치찌개를 잘 끓인다.

한 냄비 끓여 놓아도 금세 바닥이 난다.

시골 어머니께서 담가주신 묵은지는

따로 요리랄 것도 없이 돼지고기 좀 넣고

푹 삶으면 저절로 맛이 난다.  


이렇게 추운 날 주욱 주욱 찢어 넣은 몰캉한

김칫가닥과 걸쭉하게 벌건 국물은

그냥 밥도둑이다.


2년 묵은 김치가 다 떨어져 작년 김치로

김치찌개를 끓였다.

그런데 작년 김치가 그전 김치에 비해 좀 더 매운맛이 났다.


나와 아이들은 훌쩍거리면서 먹었는데

문제는 꼼지맘이었다.

식단 조절을 하느라 민감한 음식들은 피하는 사람이  

시골집에서 온 거라 좀 매워도 괜찮겠지 했나 보다.

식사가 끝난 후 꼼지맘은 속이 좀 맵다고 했다.

나도 그런 것 같았지만 그런대로 견딜만했다.


그렇게 잘 넘어가나 싶었는데 문제는 저녁에 일어났다.


낮에 자극적인 걸 먹어서

저녁에 좀 속 편한 걸 먹으려 했던 것 같다.


꼼지맘은 평소 좋아하던 호박죽을 떠올렸고,  

갑자기 호박죽을 끓이기는 쉽지 않아

죽집에서 배달을 시켰다.


죽을 반 그릇쯤 먹어갈 때였다.

꼼지맘이 갑자기 배를 잡고 화장실로 향했다.


“우욱 우웩”


화장실에서 연신 힘겨운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꼼지맘은 핏기 없는 얼굴을 하고 화장실에서 나왔다.

낮부터 좋지 않은 속에 호박죽이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위암 수술 환자들이 흔히 겪는 덤핑현상이다.


그동안 여러 번 겪는 일이었지만 이번엔 좀 심해 보였다.


“병원에 갈까? ”


꼼지맘은 고개를 저었다.

난 전동마사지기를 꺼내 등마사지를 해주었다.

수술 후 전동마사지기만 세 개째다.

드르륵 하는 등마사지가 속이 제일 편해진단다.

2시간쯤 지났을까 일그러진 꼼지맘의 얼굴이 조금 펴진다.


난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고 누룽지를 끓였다.

속 진정 시키는 데는 누룽기만 한 게 없다.


뜨거운 누룽지물에 정수기 물을 살짝 섞어 주었다.

꼼지맘은 일어나 한 모금 마시더니 다시 소파에 엎드렸다.

그리고 조금 후에 또 한 모금 마시고, 또 한 모금 마시고 하더니

점점 얼굴색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냄비에 남은 누룽지 밥알을 떠먹었다.




“고마워 당신 때문에 살아났어 “




꼼지맘이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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