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40살이 되면 국가검진에서 위내시경, 유방암검사가 포함된다. 그렇다. 꺾였다는 뜻이다. 며칠 전 교회 예배 후 함께 모여 점심 식사를 하다가 옆에 있는 젊디 젊은 청년에게 물었다.
“태수야. 니가 몇 살이지?”
“올해 24살이고 새해에 25살이 돼요.”
“아 그래? 우리 남편은 반 백살인데.
아~~ 정말 좋을 때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어느새 남편이 내 옆에 와서 선다.
“야~~ 너 반오십이야? 난 그냥 오십이야.”
참 해맑게도 웃으며 이야기한다.
나이가 들어보니 나이가 드는 게 썩 나쁘지만은 않다. 그런데 체력이, 건강이 예전 같지 않을 때는 좀 속상하다. 소화도 예전 같지 않고 오후 1-2시만 되면 피로가 몰려온다. 50대 후반의 한 지인이 자기는 11시만 되어도 졸립다는 거 보니 노화의 자연스런 현상인 것 같다.
아무튼 오늘은 아침부터 지난번 국가검진에서 나온 후처치(?)를 하러 의료원으로 향했다. 다른 검사 결과들은 괜찮았는데 위내시경 결과 전형적인 헬리코박터균으로 인한 만성 위염 소견이 보였다. 위내시경 하던 당일 선생님께서는 외관상 그렇게 보이지만 조직검사 결과 후 우편으로 통지해줄테니 결과지를 받은 후 내원하라고 말씀하셨다. 선생님의 안목과 진찰은 정확했다.
아침 8시 반에 문 여는 병원이라 오픈 시간에 맞추어 당도했건만 간호사님 왈 의사 선생님께서는 단 한명의 환자만 진찰하시고 11시 반까지 위내시경을 하셔야 하니 그 시간에 맞추어 다시 오란다. 병원에 가는 걸 유난히 싫어하는 나여서 큰 맘 먹고 왔는데 두 번 걸음하게 생겼다. 하는 수 없이 병원을 빠져나와 근처 시골길을 걷기 시작했다. 40분 정도 걷다보니 올해 유방암 검사를 아직 받지 않은 것이 기억이 났다. 지난번 검진때 병원 리모델링으로 인해 12월부터 유방암 검사가 재개 되니 그때 다시 내원하라고 했던 기억이 났다. 여자분이 유방암 촬영을 하신다는 고급 정보를 입수해둔터라 기다리는 시간동안 유방암 검사나 하러 가자며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점심시간이 다가오는 시간이라 그런지 건강검진센터는 한산했다. 윗도리에 입은 모든 상의를 벗고 파란 가운을 입고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유방촬영실로 들어갔다.
“선생님, 저 처음 검사하는 건데 많이 아픈가요?”
“네~좀 아프실거에요.”
“시간은 얼마정도 걸리나요?”
“5분정도 걸릴거에요”
여자 선생님의 친절한 안내에 따라 몸을 이리저리 비틀고 고개는 하늘로 쳐들어가며 두가지 각도로 두 번씩 총 네 번의 촬영을 마치자 드디어 검사가 끝이 났다. 네모난 판때기 같은 기계가 가슴을 위에서 아래로, 좌우로 누른 상태에서 촬영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아플만했다.
그래도 검사가 끝나니 후련하다. 코로나로 인해 2년 전에도 못한 유방암 검사를 올해도 그냥 건너뛸까 고민하다가 우리 집 정수기를 관리해주던 나보다더 젊어 보이는 코디님께서 건강검진을 갔다가 우연히 유방암을 발견하고 수술하느라 어쩔 수 없이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는 소식에 마음을 다잡았더랬다. 베트남에서 관광 가이드를 하다 코로나가 길어지면서 여행객도 없고 수입도 없어지자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 한국으로 돌아 왔다던 유쾌하고 젊은 여자 분이셨다. 새해가 되면 미용을 배우기 위해 마흔줄에 대학교를 새로 입학할거라던 당찬 분이셨다. 그리고 두 아이가 있으며 이혼해서 아이들을 아빠가 키우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스스럼 없이 건넸다.처음 만나던 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런 이야기를 아무 거리낌 없이 하던 그녀였다.
인수인계 받은 후임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녀에게 문자를 보낼까 말까 오랫동안 고민했더랬다. 나도 그 기간 동안 수술 받고 치료 받고 있던 터라 그녀의 마음을 누구보다 알것만 같았다. 그나마 가족이 있는 나와는 달리 그녀는 돌봐줄 사람이라도 있는 걸까 못내 마음이 걸렸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그저 고객과 관리사 사이일 뿐, 자신이 먼저 말하지도 않은 개인사에 대해 내가 먼저 아는 척을 하며 안부를 묻고 위로를 전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싶어 그만두었다.
여자로서의 삶은 남자에게는 없는 ‘자궁’과 ‘유방’으로 한 번 더 확인된다. 여자로서의 나 자신의 존재감과 고유함, 어머니로서의 속성 등 말이다. 저녁에 학교에서 돌아온 딸아이에게 넌지시 말했다.
“소희야, 엄마 오늘 처음으로 유방암 검사하고 왔어”
“아 그래? 나 인터넷에서 어떻게 하는 건지 봐서 알고 있어.”
이 아이도 언젠가 크면 나와 같은 아픔을 느끼면서도 2년에 한번은 스스로의 발로 병원을 찾아가 검진을 할 테지. 여자로 태어나 임신, 출산, 육아에 이어 이런 일들까지 겪어내야만 할 딸아이를 생각하면 벌써부터 마음이 짠해진다. 그래도 그런 일들에 미리부터 마음아파하지 말자며 마음을 먹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