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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국지호 Jul 21. 2023

INFP 내향인의 고민

나는 INFP다.
나는 주변 눈치를 본다.
나는 항상 스스로를 낮춘다.
하지만
나는 프로 복싱 선수였다.
나는 해병대 대위로 전역했다.
나는 무대 위에서 연극 경험을 해봤다.


나는 약한 모습 감추기 위하여

그동안 아닌 척하며 연기해 왔다.

상대 선수에게 기죽지 않기 위하여 인상을 썼으며,

대원들 앞에서 아무 문제 아니라는 듯 당황하지 않은 척했으며,

관객들 앞에서 떨려도 안 떨린 척 당당한 척했다.


나는 늘 외향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척을 해왔으며,

그럴 때마다 외향인들의 진심 어린 즐기는 모습을 보며

나도 그들처럼 외향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척이 늘어날수록

어느샌가 본연의 나를 잃고 있는 느낌을 받았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기분을 느꼈다.


군대 전역 후 나의 첫 도전은 극단 공연이었다.

무대에 오르기까지 정말 재미있었고

배울 점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 많이  받았으며

준비하는 순간들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공연 막이 내리면

서로의 관계가 다시 뜸해질 것을 알기에

조용히 무뎌질 준비를 했다.




공연이 종료되고 뒤풀이 자리에서

그동안 정말 재미있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동안 같은 공간에 있음에도, 다가가지 못했던 것에 대하여

아쉬웠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지금이라도 다가왔다고

한잔 받고 싶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뒤풀이날 나는 또 멍청하게 입을 꾹 닫고

사람들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나는 아쉬운 감정이 복받친 것이라고

스스로 변명하며

또 멍청하게 쳐다만 보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에 잡힌 회식날

이날은 같은 무대를 준비한 팀원들에게

그동안 재미있었다고, 정말 값진 경험이었다고

각자 자리에서 계속 노력해서 더 잘돼서 만나자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또 멍청하게 그저 자리만 지키고 있었다.

이날 집으로 돌아오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이날을 기다려온 거지?

뭘 하고 싶었던 거지?

왜 하고 싶은 대로 행동을 못한 거지?


공연을 준비하는 매 순간들이 강렬한 만큼

공연이 끝나고 느껴지는 공허함도 강렬했다.


이 감정을 뱉어 내야만 할 것 같았다.

빨리 털어내고 다시 시작해야만 했다.


같은 교육기관에서 교육을 받는

누나에게 왜 나는 단체 회식에서 아무 말 못 하는지

넋두리를 풀어본다.


이 누나는 외향적이지도, 먼저 나서서 행동하지도 않지만

항상 주변에는 사람이 많이 모여있다.

그리고 옆에 있으면 편안한 기분이 드는 사람이다.


나 : "누나 저 공연 준비하는 과정부터 결과까지 너무 재미있었거든요. 그리고 거기에서 만난 사람들 한 명 한 명 모두가 다 소중한 사람으로 기억돼요. 그런데 왜 저는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이야기를 못할까요?"

누나 : "그럼 너는 뭐 하고 있는데?"

나 : " 그 사람들을 보면서 관찰하고 있어요."

누나 : "너는 왜 말을 안 한다고 생각해? 여기서는 말 많잖아"

나 : "모르겠어요.. 음.. 왠지 재미없는 이야기 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 내 이야기가 그들이 느끼기에 흥미 없을 것 같은 생각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누나 : "네가 그 사람들이 재미있어하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 이유는 뭐야?"

나 : "음.. 그래야 대화가 통하니까?"

누나 : "넌 이야기 자체를 안 하면서 대화가 안 통할까 봐 걱정하는 거야?"

나 : "아.."

누나 : "그리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이유는 뭐야?"

나 : "음.. 다른 사람이 대화할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어떤류의 이야기나 행동을 좋아하는지 보는 거예요"

누나 : "그거 관찰해서 뭐 하게? 그 사람이 좋아하는 행동 해주려고?"

나 : "큰 문제없다면 그 사람이 좋아하는 행동 하는 게 좋은 거 아니에요?"

누나 : "그럼 너는? 너는 네가 뭐 할 때 좋은지 생각해 봤어? 그리고 생각해서 다른 사람에게 행동했을 때 너의  행동이 진실에서 나오는 행동들일까? 앤만 한 평범한 사람들은 다 느껴질걸?"

나 : "나에 대해서는 생각도 안 해봐서요.. 제 행동도 가식적일 수도 있겠네요."

누나 : "그래, 생각해서 계산적으로 나온 행동이 아닌 너의 진실에서 나온 행동을 할 때야 서로 편안한 관계가 될 수 있는 거야"

나 : "누나, 저는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정말 많은 단체들에 속해 있었고 거기에서 한 번도 평이 좋으면 좋았지 안 좋은 평을 받은 적이 없거든요? 하지만 그 단체 사람들 사이에서 개인적으로 연락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제 포지션이 마치 제가 없어도 전혀 문제는 안되지만 있으면 살짝 감칠맛 더해주는 정도인 것 같아요. 저 완전 잘못 살고 있는 걸까요? 그래서 이번 공연 준비하며 만난 극단 사람들도 스쳐가는 인연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짧다면 짧은 기간이지만 같은 목표를 두고 노력한 사람들인데 인연으로 만들지 못한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져요."

누나 : "지호야, 잠깐 이야기 들었는데 너는 사람에 대한 외로움이 있는 것 같아. 그리고 요새 계속 공연 종료되고 공허하다 했잖아. 그 공허함이 극단 사람들이 좋아서 느껴지는 공허함인지, 아니면 그냥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게 좋았는데 그게 끝나서 느껴지는 공허함인지 모르겠어. 너는 지금 필요한 건 다양한 사람들과의 경험인 것 같아. 네가 습관처럼 외향인을 갈망한다고 하는데 너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경험이 없어. 물론 군생활 하며 많은 사람을 봤겠지만 계급과 직책이 아닌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는 다른 거니까. 내가 너한테 해주고 싶은 말은 우선 다양한 사람을 만나보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어"

나 : "누나 말이 맞네요.."

누나 : "그리고 사람을 만날 때 계산하지 말고, 목적을 갖지 마. 너는 지금 보니까 다른 사람들한테 잘 보여야 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어. 그러면 너 행동이 부자연스러워지고 너라는 사람 자체가 부담스러운 사람이 될 수 있어"

나 : "부담 안 준다는 것, 목적 없이 접근한다는 게 무슨 느낌이에요?"

누나 : "그 사람에게 생각 없이 행동하는 것, 네가 하고 싶은 행동을 하는 것, 너의 행동에 이유가 없는 것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너의 진심에서 나오는 행동들을 말하는 거야. 너의 행동에 목적이 없어야만 상대가 부담을 안 느끼고 편안해질 수 있는 거야"

나 : "어렵네요.. 전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는 행동하기 싫어서 주변 눈치를 본다 생각했는데, 역설적이게도 이런 행동들이 부담을 주는 것들이었네요"

누나 : "다른 사람들을 관찰한다는 너의 그 표현부터 버려. 어느 누구도 타인에게 관찰당한다는 기분이 긍정적이지 않을 거야. 관찰하지 말고 네가 너의 진심을 담아 행동하는 것, 무슨 말인지 알겠어?"

나 : "예 느낌은 알겠어요"

누나 : "지금 네가 나한테 하는 것처럼만 하면 돼. 너의 진심에서 나와서 하는 행동들"


누나와의 대화는 내가 무엇이 문제인지 알게 하였다.

나 스스로를 잃어가고 있는 것은,
내 행동들이 진실되지 않아서이며,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나의 모습은
진실된 행동이 아닌 계산된 행동이기에
그렇다 보니 어느 곳에서도 나 스스로는 온전히 끼지 못하는 것이었다.


사람 사이의 관계는 한쪽에서 좋은 관계 유지하고 싶다고 해서 유지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상대가 나를 마음에 안 들어한다면, 관계는 발전할 수 없다.
반면에, 내가 노력하여 상대가 나를 마음에 들어 하게 만든다면, 그렇게 맺어진 관계는
나의 노력이 끝나는 순간 멈추고 만다.
내가 진실되게 상대에게 행동하였을 때 상대는 편안함을 느끼고 부담감이 없으며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눈치보기 고수 스물여덟의 나는

이제 타인을 살피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를 살펴보며 진실된 행동을 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을 한다.

나 스스로 자신에게 당당한 사람이 되고 싶다.

이전 07화 나는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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