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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을 닮은 욕심

그럼에도 살아있으니까

by 장원희

많은 잘못을 했다.


때로는 무지한 말실수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으며, 때로는 내 감정만을 우선시하여 상대의 마음을 뭉개기도 했다. 머지않아 내 잘못을 깨달을 때도 있었지만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아챌 때도 있었다. 깨달았더라도 용기가 없다거나 시기가 맞지 않았다는 등 변명 같은 이유로 사과를 못 한 적이 많았다.

이 일들은 절대 잊히지 않았다. 20년 전, 10년 전, 5년 전, 그 모든 일들은 불현듯 한 번씩 떠올라 나를 질책했다. 너무나 부끄러웠고 상대에게 미안했으며 그때의 과오를 되짚어 지금의 나는 달라졌다고 알리고 싶었다.


그러니까, 나는 가끔 과거의 인연들에게 사과하고 싶은 감정에 휩싸인다. 이미 스쳐간 인연들, 미안한 감정으로만 남은 사람들, 연락처라도 안다면 기나긴 문자라도 하나 남겨놓고 싶다.


중학교 시절 서로 간의 오해로 사이가 좋지 않던 친구가 있었다. 그렇게 1년을 불편하게 지내다가, 다음 학년이 되어 헤어졌다.

몇 년 전, 동네에서 그 친구를 마주쳤다. 한눈에 그 아이인걸 알아봤지만 친구는 나를 못 알아보는 듯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반가움도 아닌 붙잡고 사과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사과란 본디 미안한 마음을 전하는 게 아닌가. 그렇지만 당시 나는 우리의 관계에 대해 먼저 숙이고 들어가며, 이제는 그때와 다른 성인임을, 친구도 내 사과를 받고 앙금을 풀어 나를 보다 괜찮은 사람으로 기억해 주기를 바랐던 것 같다.


문득 그렇다면 내가 하고 싶은 게 정말 사과인가 싶어졌다. 그보다는, 내 마음이 편하고자 기억도 못 할 친구에게 어떤 반응을 기대하면서, 당황스럽게 만들 말인 듯했다. 결국 고민 끝에 하지 않았다. 그저 인사를 건넸을 뿐이다. 혹시 그날의 만남으로 계속 연락할 기회가 생긴다면, 그다음에, 옛날 일을 회상하듯 말을 꺼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친구는 날 기억하지 못했다. 어쩌면 이기적이었을 그 말을 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사과에 대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나는 가끔씩 누군가에게 사과하는 꿈을 꾼다. 내가 잘못했었다고, 미안하다고, 그러면 나는 편해졌다. 꿈임에도 묵혀둔 마음의 짐을 내려둔 기분이 들었다. 상대는 어김없이 괜찮다며 웃었다. 이제 그의 기억 속 나는 조금 더 좋은 사람으로 남겠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이건 정말 상대를 위한 사과였을까? 돌이켜 보면, 나를 위한 사과였다.


나를 무척 힘들게 했던 아이가 있다. 이제는 연락하지 않는다.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어느 날 그 아이가 연락하여 자신의 과오에 대해 반성하고 사과한다면 어떨까. 솔직히 말하면, 그다지 반갑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보다는 갑작스러운 상황과 평온한 일상 속에서 예고 없이 꺼내진 상처에 당황스러울 듯했다. 아이에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도 문제였다. 나는 사과를 했다고 받아 주어야 하는 걸까? 그렇다고 있는 그대로 내 마음을 표현하자니 친하지도 않은, 몇 년 만에 연락 온 사람에게 그러기는 불편했다. 하지만 그게 어떻든 그 아이는 내게 사과함으로 마음의 짐을 조금은 덜었을 것이다. 그럼 이건 누구를 위한 사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경우도 있다. 우연한 기회에 우리가 다시 연락하게 되어, 적당한 시간을 보낸 후 그 아이가 진심으로 나와의 앙금을 털고 좋은 관계가 되고 싶어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다. 같은 사과지만 많이 달랐다. 나는 사과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걸 알았다. 지금껏 내가 하고 싶었던 사과는 하나도 빠짐없이 상대를 위한 게 맞았던 걸까.


어쩌면 내 과오들은, 지금처럼 그 기억에 부끄러워하고 상대에게 미안함을 느끼며 안고 살아가야 대상일지 몰랐다. 마음에 두고 반성하고 성찰하여 나를 돌아볼 수 있어야 했다. 늘 이 불편함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힘겹고 스스로를 견디기 어렵겠지만 이건 온전히 내가 감당해야 할 책임이었다.


미안함을 갖고 있는 끊긴 인연들과 언젠가 다시 연락이 닿는다면 이제는 무턱대고 나의 반성과 성찰부터 늘어놓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 조심히 안부를 묻고, 긴 시간 동안 상대의 마음을 느낀 후에 천천히 이야기를 꺼내려한다.

그러니 이제는 사과가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마다, 그것이 정말 상대를 위한 것인지, 혹시 내 마음을 덜고 싶은 욕심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답을 다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적어도, 그 앞에서 나는 이전보다 조심스러워졌다.


어젯밤에도 또다시 꿈을 꿨다. 미안하다고 말하고, 괜찮다고 웃는 상대를 보며 마음이 편해졌다. 깨어보니 남은 건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사과는 말보다 마음으로 오래 남아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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