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살아있으니까
나와 똑같은 사람이 한 명만 있었으면 좋겠다.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고 나를 이해해 줄 분신 같은 존재가 있었으면 좋겠다.
늘 하던 생각이었다. 외롭고 이해받지 못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마다 나는 이상 속의 존재를 꿈꾸었다. 작은 부분까지 나를 꼭 닮아 서로의 마음을 거울처럼 비추어 서운하게 할 일도 이해하지 못할 일도 없을 관계를 말이다.
나는 사람이 필요했던 걸까, 나를 마주하고 싶었던 걸까, 타인과의 갈등이 버거웠던 걸까.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고, 아무에게도 내 고민을 말할 수 없던 어느 저녁에도 나는 습관처럼 나의 분신을 찾았다. 서로를 꼭 알아주어 힘든 현실 속에서 나를 구원해 줄 존재를 말이다. 나 역시 그 사람에게 힘이 돼 주고 싶었다. 그렇게 서로의 구원자이면서 가장 친한, 유일무이한 이가 필요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종종 완벽한 친구, 연인, 가족의 등장을 바라왔다. 이 넓은 지구상에 적어도 한 명은 존재하지 않을까 소망하며, 그자와의 우연 같으면서 필연적인 만남을 말이다. 우리 주위의 수많은 미디어에서도 이 바람을 찾을 수 있다. 서로의 취향과 성격, 하다못해 기억 속 추억의 장소까지 겹치는 인물과 마주하게 되는 전개는 꽤 자주 나타났다.
스스로와 같은 타인에게 의지하려는 마음은 자꾸만 이번에야말로 운명의 상대가 아닐까 기대하게 만들고, 어긋난 소망에 실망하게 만들고, 그 좌절은 나를 더 외롭고 우울하게 만들었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지만, 혼자 살아갈 수 있어야 했다. 매 슬픔, 매 기쁨, 그러한 매 순간들 모두에 타인과 함께일 수는 없었다. 어떤 고통은 스스로 견뎌내야 했고, 어떤 고뇌는 스스로 풀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습관처럼 누군가를 꿈꿨다. 쉬운 방법이었기 때문일까. 그저 가만히 앉아 힘들어하고 있는 내게 다가오는 햇살 같은 타인이 말이다.
타인으로 나를 마주한다는 건 꽤 생소한 기분이다. 그는 나이므로, 나는 그의 단점까지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어쩐지 그렇기에 더욱 친숙하고 애틋하게 느껴진다. 안쓰럽고, 보듬어주고 싶다. 그리고 나 또한 같은 기대를 하게 된다. 그에게는 숨김없이, 눈치 볼 일 없이, 편하게 나를 드러낼 수 있을 것 같아진다.
어쩌면 내가 안쓰러웠는지도 모르겠다. 스스로가 불쌍했던 나머지 나라도 내 마음을 위로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슬프게 울고 있는 대상을 보았을 때 다가가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에 그런 모습이 상상될 때처럼 말이다. 나만큼은 나의 속내를 가장 잘 알고 있었으니, 그때 내게 필요한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을 테 였다. 이제와 돌아보면 그 생각만으로 나름의 위안을 얻었다. 나를 닮은 가상의 존재는 실제의 사람처럼 느껴졌고, 적어도 그 자에게는 온전히 이해받는 마음이 들었다. 가상이면 어떠랴, 그 상상 속에서 나는 나 스스로에게 다시 끌어올려졌던 게 아니었을까.
하지만 종종 나와 다른 시선을 가진 타인에게 위로를 받았다. 나와 다른 사고에도 불구하고 나를 이해하고자 노력하며 다가오는 마음에는 늘 크게 흔들렸다. 어쩌면 정말로 타인과 같이 산다는 건 이런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두려운 갈등을 마주하고, 결국 그 속에서 서로의 마음을 마주 보는 것 말이다. 나도, 타인도, 스스로와 같은 존재만을 기대해서는 이루어지기 어려운 일이라는 건 알겠다.
조금 더 견뎌 내보고자 한다. 다름에도,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상대여도, 이상 속 분신 같은 존재는 타인을 마주하는 게 두려운 내가 아니었을까.
나는 지금 이 순간도 나의 분신이 좋다. 운명 같은 만남을 꿈꾸며, 자주 스스로에게 위로받는다. 어느 날 겪은 서운한 일에 그래, 그랬구나, 섭섭했겠다, 나라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하며 내 모습을 하고 있는 누군가를 달랜다. 돌아보면 타인에게 의존한다고 여긴 이 생각 자체가 스스로 살아가기 위한 방법이었을 수도 있겠다. 그러니 그 바람을 고치려 하거나,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기대를 내려놓으려 한다.
같은 마음에서 오는 위로가 있듯, 다름에서 울려오는 마음이 있었다. 그 울림은 꽤 오래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