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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숙 Apr 11. 2024

몬세라트, 수도원기행

3. 꽃다운푸른과 함께 그린 스페인여행/ 몬세라트


오늘은 어딜 가니?

아니, 엄마들은 스페인 오기 전에 자료까지 만들어서 줬더니 하나도 안 보고 묻기만 하는 거야?


모녀팀에서 딸과 엄마팀으로 나뉜 날, 하필이면 몬세라트 일정이다. 가우디의 건축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신이 톱질 해놓았다는 톱니 모양의 바위산인 데다가 우리들이 태어난 1987년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는 몬세라트에 갈 거야, 라고 하면 될걸. 뾰족한 마음도 칼날인데 닿은 곳마저 톱니 모양 산이란다. 하긴 속상할 만하지. 그런데 엄마들은 패키지에 익숙해서 아침마다 브리핑을 해 줄 줄 알았던 거지.



바르셀로나에서 몬세라트행 버스는 하루에 한 대뿐으로 아침 9시 15분에 출발하여 오후 5시에 내려와야 하니  온하루 축복받는 몬세라트 일정이다.


몬세라트에 닿자마자 구름바다에 쌓인 광경을 내려다보는 천국의 계단, 그 경이로움에 압도된다. 계단 아래부터 흙, 불, 동물, 식물, 사람, 하늘, 천사, 신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는 천국의 계단 앞에서 딸들과의 불화 같은 세속적인 고민 따윈 아무것도 아니라고 저절로 눈 녹듯 사라지더라.



몬세라트성당, 길고 긴 줄 끝에서 만난 검은 마리아의 손을 잡고 내가 빌었던 건 peace~



햇빛 아래는 여름이고 그늘은 겨울이니 뜨거웠다가 추웠다가 그야말로 온탕과 냉탕을 오가며 오른 몬세라트 여정이다. 몬세라트 전망대를 오르는 푸니쿨라에까지 따라온 경건은, 한 시간가량 조용한 전망대 산책길을 신심으로 견디게 한다.  



은둔의 수도사들이 머물렀을 전망대에서 잠든 고양이를 만났다. 목숨이 아홉 개나 있어 영물이라 불리기도 하며 태양신이 고양이로 자주 변신했다 하니 혹시 톱질하다 지쳐 잠든 신이 아닐까, 조심스레 나누는 얘기소리에 살짝 눈을 떴다가 이내 감아버리는 도도한 몸짓에 맞아! 틀림없어!


양치기들은 빛을 따라가다 검은 성모상을 만났고, 우리 꽈뜨로 여자들은 종소리를 따라가다 고양이 신을 만났으니 검은 성모님께 축복의 치유를 받게 될 거라고, 속닥거린다.


소소한 순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공간의 힘, 몬세라트에서 우린 신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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