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속의 치열함
부장님과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바쁜 생활 속에서 휴직 중인 후배 또는 동료에게 안부 전화를 주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고마운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애교 섞인 말투로 “부장님~”하고 전화를 받았다.
반갑게 인사를 하며 잘 지내냐는 말에 나는 투정 어린 말투로 “저희 막내 입원했었어요~”라는 말을 시작으로 묻지도 않은 것을 구구절절 이야기했다. 지인 가족과 함께 에버랜드에 가기로 해서 숙소까지 잡아뒀는데 막내가 장염에 걸렸고 출발하는 날 심한 탈수 증세를 보여 결국 아침 일찍 입원하게 된 것이다. 나와 막내는 주말을 내내 병원에서 보내고 남편과 두 아들은 에버랜드에 다녀왔다. 결론적으로 나는 더위를 피해 잘 쉬었지만 남편과 아이들은 못내 아쉬워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런 이야기를 하자 부장님께서는 “멀리서 보기엔 행복하고 평화롭게 지내고 있는 것 같은데 사실은 아주 치열하게 살고 있구나”라고..
그 말을 들으니 맞다 싶다.
사람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여유 있게 지내는 듯 보인다. 브런치를 즐기며 유쾌하게 웃는 내 또래의 여자들, 점심 식사 후 커피를 들고 주변을 산책하는 직장인들, 자전거를 타고 머리칼과 함께 싱그러움을 날리며 거리를 지나는 학생들, 번쩍거리는 검은 세단에서 재킷 하나를 걸치며 내리는 중후한 중년의 신사. 내 눈에 그들은 모든 것이 평화롭게 돌아가는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그들도 나와 같다. 내 시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찾아볼 수 없는 하루하루를 바쁘게 지내고 있는 나처럼 사실은 그들도 매일을 치열하게, 다사다난하게 지내고 있을 것이다.
요즘 같이 워라밸이 중요하다, 육아는 아이템빨이다, 여유로운 노후를 준비해야 한다고 외치는 말을 듣다 보면 모두들 그런 것을 어느 정도 갖추고 ‘행복하고 평화롭게(부장님 말씀처럼)’ 지내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들의 삶도 가까이서 보면 계속해서 생겨나는 문제를 해결해 나가며 일상이 잘 돌아갈 수 있도록 모두들 ‘치열하게(역시 부장님 말씀처럼)’ 살고 있다.
친구에게 오랜만에 전화하여 잘 지내냐고 물으면 대답할 것이다. “사람 사는 것 다 똑같지 뭐”라고.. 이제 보니 그 말은 별 일 없이 지낸다는 말 같기도 하지만 동시에 별 일이 많이 있다는 말 같기도 하다.
아이 셋을 키우며, 직장생활을 하며, 집안일을 하며 ‘나는’ 정말 바쁘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나도’ 바쁘게 살고 있는 것이었다. 평화로워 보이는 사람들의 일상도 나 만큼이나 혹은 그보다 더 하루의 작은 틈까지 매워가며 빈틈없는 하루를 채워나가고 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사람들이 모두 나처럼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왠지 모를 편안함이 느껴진다. 그래도 이만하면 행복하게 살고 있구나 하고 감사하게 된다. 언제나 그렇듯 옆에서 곤히 자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며 미소 짓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