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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레니 Jul 04. 2023

‘호~약’의 성분

마음의 약

  잠을 자려고 이불을 펼치는데 거실에서 쿵 소리와 함께 막내 울음소리가 들렸다. 남편이 달래어 방으로 데려오는데 보니 울먹거리며 한 손에는 책이 들려있다.

  “책 꺼내려다 발에 떨어졌구나.”

  “응.”

  여전히 눈물이 맺혀있는 눈으로 울먹거리는 아이의 발등을 보니 모서리에 찍혔는지 푸르스름한 멍이 올라온다. 멍이 더 올라오기 전에 약을 발라주려고 하는데 아이는 크게 아픈 약이라도 되는 듯이 엉엉 울며 싫다고 발버둥을 쳤다. 그래도 더 심해지지 않도록 발을 꼭 붙잡고 약을 발랐다. 그러자 잠잠해진 아이. 그런 아이에게 엄마는 말했다.

  “거봐. 약 바르는 거 안 아프지? 엄마가 안 아픈 거라고 했잖아.”

  “아니야! 아팠어!”

  엄마의 말투가 거슬린 건지 어깃장을 놓는다. 엄마는 콧방귀를 뀌며 다시 대꾸했다.

  “아프긴 뭐가 아파. 하나도 안 아프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이는 엉엉 울며 아프다고 난리다. 그 고집에 엄마는 속으로는 한숨이 나오지만 꾹 누르고 말했다.

  “알았어. 아팠구나~ 엄마가 호~해줄게. 호오~”

  그러자 아이는 금세 울음을 그치고 엄마가 입김을 몇 번 불어주는 동안 옆에 있는 제 오빠와 조잘거린다.




  약을 바르는 것이 정말 치료하는 것인데 그것보다는 내 입김이 아픔을 나아지게 한 듯 아이의 표정이 밝다.


  우리도 누군가 나의 상처에 입김을 불어준 기억이 있을 것이다.

  ‘내가 호 해줄게. 호~ 호오~’

  그게 뭐라고 나도 어렸을 적엔  입김  번에 아팠던 곳이  아픈  같았고, 울음을 멈추고 가만히 바라보게 되었다.


  아픈 발에 입김을 불어주는 동안 아이는 아픈 것이 덜해지는 느낌을 받은 것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아픈 것은 벌써부터 덜해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이의 기분은 내가 약을 발라줄 때도 나아지지 않았다가 ‘호~약’을 쓰니 나아진다.


  ‘호~약’에는 관심과 염려가 들어있다. 공감이 들어있다. 

  ‘어디가 아픈지 보여줘’, ‘아팠구나. 많이 아프겠다’, ‘어떻게 하면 나아질까?’, ‘너를 덜 아프게 하면 좋을 텐데’, ‘아픈 너를 보니 나도 속상하다’ 이런 마음들이 이 약 하나에 응집되어 있다.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호~약’ 하나면 다쳐서 놀라고 속상했던 마음이 나아진다.


  이별로 상처받은 친구에게, 직장에서 상사에게 꾸중을 들은 동기에게, 자꾸 아픈 데가 생긴다며 속상해하는 부모님에게, 하루를 고단하게 보낸 배우자에게 우리는 이 약을 입김 대신 눈빛으로 보낸다. 그들의 마음에 임시처방으로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여준다. 심각한 상처는 전문가에게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우리는 옆에서 공감이라는 구급상자를 꺼내어 우선 응급처치를 해줄 수 있다.




  공감이라는 약은 사용법도 어렵지도 않으며, 끝없이 꺼내어 쓸 수 있는 마법 같은 약이다.


  아프다며 앙앙거리는 아이에게 약을 발라야 낫는 거라는 이성적인 설명만 했다면 아이는 더 악을 지르며 울었을 것이다. 이성적인 설명으로는 마음이 나아지지 않는다. 그리고 더해서는 아이도 다른 사람이 아플 때 약을 발라야 한다는 말밖에 할 수 없는 사람이 될 것이다.


  ‘호~약’을 받아보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아플 때 호~하고 입김을 불어주는 사람이 되지 못할 수 있다. 공감은 다른 사람에게 받아봐야 쓸 줄도 알게 되는 약이다.


  아이들은 그렇게 공감이라는 것을 배워간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그렇게 공감을 주고받으며 삶으로부터, 사람으로부터 받는 마음의 상처와 고됨을 치료하고 회복한다. 공감이라는 약이 이 세상에 없었다면 얼마나 외롭고 힘이 들까.


  걷다가 발등을 부딪혀 주저앉은 나에게 아이들이 다가온다. 걱정 어린 눈빛. “엄마, 호~ 해줘.”하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세 아이는 입술을 발에 닿을 듯이 들이밀고 호호~ 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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