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하고 행복한 기억
작년까지는 둘째와 막내의 등하원이 함께 이루어졌다. 아파트 단지 내의 유치원에 둘째가 등원하고, 막내의 어린이집은 가정어린이집인데 유치원 정문 바로 앞에 있는 동이어서 도착하여 둘을 등원시키는 데는 5분 내외면 충분했다.
항상 둘째는 동생을 먼저 데려다주고 가겠다고 하여 두 아이 손을 잡고 어린이집으로 먼저 향했는데 어느 날부터 입구 쪽 화단 구석에 이름 모를 보라색 꽃이 피었다. 신기한 것은 아침에는 꽃망울이 벌어지기 시작하는데, 하원할 시간인 4시쯤에 가면 활짝 피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나팔꽃도 아니고 분꽃도 아닌데 꽃이 졌다 폈다 하는 것이 신기해서 등원할 때 둘째에게 아침에 그 꽃을 보여주고, 하원할 때도 보여주었다. 아이도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그 꽃을 보며 신기해했다. 꽃을 볼 때마다 "엄마, 아직 아침이라 꽃이 안 피었네.", "엄마! 이제 꽃 피었다."라고 말하며 등하원 길에 반가운 친구들 만나듯이 그 꽃을 보고 아는 체를 했다.
올 해는 둘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막내 등하원을 하며 그 꽃이 있는 자리를 혼자서 보곤 했다. 꽃을 보며 엄마에게 조잘거리던 아이의 얼굴과 목소리가 생각나서 볼 때마다 왠지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초여름쯤이 되자 기다란 이파리만 있던 것이 어느새 긴 꽃대 위에 꽃망울까지 생기기 시작했다. 둘째와의 추억을 생각하며 막내 아이에게 그 꽃망울을 보여주었다. 며칠이 지나고 한두 개의 꽃망울이 터지려고 할 때 막내와 그 꽃 앞에 앉아 말했다.
"아가꽃이 이제 언니꽃이 되려고 하나 봐."
"아가꽃? 여기도 아가꽃이 있다!"
"그러네~!"
꽃망울을 가리키며 아가꽃이라고 부르는 막내의 얼굴에도 예쁜 미소가 떠올랐다. 그 꽃이 어서 피고 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만의 대화와 장면들이 또 쌓일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기뻤다. 그리고 이틀 정도 아파트의 화단을 정리하느라 작동되는 예초기를 피하며 등하원 시간에 얼른 그곳을 지나다니다가 화단 정리가 끝난 후 그 꽃을 찾았다.
그런데 이런... 그 꽃이 잡초였던 것인지 밑동이 잘려나가 있었다. 그때쯤이면 한참 꽃을 피운 모습이 예뻤을 텐데 그저 잡초였던 듯이 풀과 줄기의 아랫부분만 삐죽삐죽 남아있는 모습을 보자 안타까웠다. 내가 키운 꽃도 아닌데 아이의 등하원 길에 그곳을 지나며 잘려나간 밑동을 볼 때마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안 좋았다. 어쩐지 쓸쓸한 마음마저 들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며 점점 그곳에 눈길을 주는 횟수가 적어지고 나에게도 그 꽃이 잊히고 있었다.
그러다 얼마 전 둘째 아이가 동시집에서 아침에 오므라들었다가 저녁에 피는 꽃에 대한 시를 읽었나 보다. 옆에 있던 나에게 갑자기 다가와서 아이가 말했다. "엄마! 우리 예전에 어린이집 갈 때 저녁에 피었던 꽃 있잖아. 그거 분꽃이래! 여기 나왔어!"
나는 그 꽃이 분꽃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어! 그래?"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이가 자신의 기억 속에 있던 꽃을 발견한 것에 놀라움을 느꼈다. 그 꽃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나만 기억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구나. 꽃의 모양까지 기억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 꽃을 보았던 것을, 그리고 그 꽃이 아침, 저녁으로 피고 졌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꽃이 사라졌을 때 쓸쓸한 마음이 들었던 것은 그 꽃을 기억하는 사람은 나 혼자로 남겠구나 싶어서였다. 그런데 나 혼자가 아니라 아이도 기억하는 추억이 되었다 생각하니 이제 그 자리에서 그 꽃을 볼 수 없어 안타까웠던 마음에 위로가 되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잘못한 것에만 집중하게 된다. 즐거웠던 기억들은 그냥 그렇게 흘러가지만 내가 아이에게 상처를 주었던 일은 잊히지 않았다. 그때 했던 말이나 아이의 표정은 내 머릿속에 각인이 되어 평생 사라지지 않을 듯이 오래도록 생각난다. 그리고 나에게 각인되었듯이 아이에게도 나의 표정과 몸짓이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때는 스스로 느낄 수 없었던 나의 목소리와 눈빛의 온도가 어땠을지 생각하며 혼자 자책한다. 아이의 마음에 속상했던 일들만 켜켜이 쌓이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어제 아이가 그 꽃에 대해 말하는 것을 보고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아이는 좋은 기억도 이렇게 잘 가지고 있었다. 너무나 사소해서 나에게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 아이에게도 기억의 방 한편에 남아있었다. 무엇인가 그것을 건드리니 작고 예쁜 꽃처럼 피어났다. 그동안 잠시 오므라져 있었을 뿐인 것이다. 아이에게는 분꽃이라 기억되고 언젠가는 꽃 이름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될지도 모르지만 엄마와 함께 손을 잡고 동생을 데리러 가며 예쁘게 피어있는 그 꽃을 보았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부모도 사람이다. 물론 어른으로서, 부모로서 아이 앞에서는 감정을 절제하며 문제 상황을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가 있다. 아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가끔은 너무 힘에 부쳐서 숨기고 있던 그 지친 모습이 여실히 아이에게 드러날 때가 있다. 그런 날이면 부모는 자는 아이의 손을 잡고 미안하다 속삭이며 스스로를 자책한다.
그러나 그 밤이 지나고 다시 밝은 아침이 오면 우리는 힘을 내서 새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 부모로서 부족함을 보인 일에만 집중하여 너무 걱정하고 마음 아파하기만 하지 말자. 대신 아이와 손을 잡고 작은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기억도 많이 만들자. 나와 겪었던 모든 일을 기억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때의 감정을 아이는 기억할 것이다. 안 좋았던 감정보다 좋았던 감정의 기억들을 훨씬 더 많이 만들어주자.
그 꽃에 대해 말하며 즐거워하는 아이의 목소리를 나는 들었다. 그 꽃을 보며 오가던 길을 떠올리고 아이가 지어낸 입가의 미소를 나는 보았다. 아이는 꽃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이가 동시집에서 읽은 시>
분꽃은
어쩌다가 해 지는 저녁 무렵에
꽃을 피웁니다.
처음, 분꽃은 왜
아침을 두고 저녁에 필까,
바보처럼 그 생각을 했지만 아니었습니다.
지친 모습으로
아빠가 일터에서 돌아오는
그 시각,
그 시각에 맞추었던 것입니다.
터벅터벅 돌아오는 아빠에게
새로 피는 분꽃을
꼭 보여 드리고 싶었던 거지요.
'나만 몰랐네(권영상 동시집, 이광익 그림)' 중에서
사진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이미지-한국화재식물도감(하순혜 외 1인)
(글을 쓰며 문득 그 꽃의 이름이 궁금하여 보라색 꽃을 검색해서 사진들을 찾아보니 자주달개비꽃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침에 폈다가 저녁에 지는 꽃이며 들꽃처럼 어떤 곳에서도 잘 자란다고 합니다. 길을 걷다 보면 다시 그 꽃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