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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랑 Aug 23. 2023

정신과 입원, 그 전 이야기

좌충우돌 정신과 입원기(1)

입원 안 하면 500줄게

정신과에 입원하기 전 아빠가 나에게 한 말이다. 황당했다. 그러니까 머리에 우동 들었단 소리나 듣지라는 말로 맞받아쳤다. 그는 입원 이야기가 오갈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서도 한다는 말이 500만원을 줄 테니 입원을 하지 말라는 소리였다. 가해자 본인에게 듣는 '입원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정말이지 무책임하게 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내 부모에게 나의 고통은 딱 그 정도로 이해되는 것이었다. 500. 나는 금융 치료가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난 집중적인 치료를 받고자 입원을 하려는 것이었고 돈이 그걸 대신해 줄 순 당연히 없었다. 설득을 해야 한다는 의지조차 생기지 않았다.


무시하곤 짐을 싸기 시작했다. 정신과 병동은 금지되는 물품이 많았기에 신중하게 짐을 싸야 했다. 그리고 넘쳐나는 시간들을 보내기 위한 컬러링 북, 읽을 책 등까지 가방에 쑤셔 넣곤 빠진 물건이 없나 다시 한번 체크하며 생각했다.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됐을까'


사실 정신과에 입원한다는 것에 거부감이 들진 않았다. 블로그를 운영하며 정신과 입원 사례를 수없이 보았기에 막연한 두려움 같은 건 없는 상태였다.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입장이었고 그저 이 상황이 지칠 따름이었다. 정든 주치의가 바뀌는 게 싫었고 입원을 한다고 크게 달라지는 게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입원을 하겠다고 결정을 내린 건, 마지막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생각으로 결정한 입원이었다. 학교를 자퇴하고도 나아지지 않는 나의 우울감, 그리고 끝 간 데 없는 무기력, 불안과 홀로 싸우는 것은 너무 버거웠기에.  


오래 기다려야 할 줄 알았던 입원 대기는 생각보다 빨리 줄어들었다. 첫 대학병원 외래를 보고 3일 만에 입원 수속을 밟으라는 연락이 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입원 생활이 그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다. 그리고 이 입원이 나에게 큰 터닝포인트가 되리란 것도 예상하지 못했다. 나에게 있어 입원은 연명치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무거운 생각에 비해 입원 생활은 나쁘지 않게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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