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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랑 Sep 13. 2023

지금은 적응 중(1)_첫째주 초반

좌충우돌 정신과 입원기(3)

입원 2일차

밤새 뒤척이다 결국 6시에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간호사 선생님이 채혈을 하러 오셨다.


오락실에서 심리검사지를 붙들고 씨름하고 있는데 담당의 선생님이 오셔서 면담을 했다. 어제 어떻게 지냈냐는 물음에 잠을 좀 못 잤다고 대답했더니 아마 환경이 바뀐 탓일 거라고 말씀하셨다. 실제로 약은 리튬만 좀 줄었고 인데놀이 추가된 거 외에는 달라진 게 없었으니까. 심리검사 하고 있는 거 보시곤 너무 무리해서 하진 말라고 하셨다. 여러 이야기를 했던 거 같은데 긴장한 탓인지 면담이 끝나고 대부분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했고 그래서 기록 또한 하지 못했다.


심리검사지는 정말 끝도 없었다. 글을 읽는 게 어려워서 같은 문장을 여러 번 반복하며 읽다 보니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 뭔가 이 질문이 저 질문 같고 저 질문이 이 질문 같은 미궁 속에 빠질 무렵 저녁 늦게 심리 검사를 끝마칠 수 있었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 보니 빨리 끝낸 축에 속한 거 같다.


심리검사 외에 하루 종일 한 거라고는 복도를 끊임없이 배회하고 누워서 설교 찾아 듣다가 글 좀 끄적인 게 다였다. 그러고 있다 보니 교수님이 회진을 돌러 오셨고 내가 글을 쓰고 있는 걸 보시곤 무슨 내용을 쓰냐고 물어보셨다. 말로 설명하기가 애매해서 쓰던 걸 보여드렸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내가 무슨 내용을 썼는지 기억이 안 났기에. 쭉 읽어보시곤 갑자기 글 쓰기 틀을 제시해 주겠다 하시면서 일기장에 몇 가질 적어 주셨다.

상황
생각(판단)
느낌(감정)
욕구: ~싶다, ~싶지 않다
행동: 했다/안 했다
결과:단기적/장기적 결과

이렇게 적어주셨는데 이걸 줄여서 ‘상생느욕행결’이라고 부른다. 우리 교수님이 면담하면서 무슨 일이 있었다고 하면 꼭 시키시는 게 이거였다. 번거롭지만 하나씩 적다 보면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고 거기에 따른 나의 생각과 감정 그리고 이어지는 행동을 제어할 수 있어 꽤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문제는 상당히 귀찮다는 거였지만.


입원하기 전에 좋은생각이라는 잡지 그러나 수기 코너에 응모를 했었다. 근데 이름이랑 응모번호 찍고 확인해 보니까 미채택으로 결과가 떴다. 나름 기대하고 있는데 그와 다른 결과가 나와선지 이해가 안 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그랬다.


입원 3일차

아침 댓바람부터 죽고 싶었다. 그냥 일어나서 멍-하게 있는 상황이었는데 문득 여기 있는 사람들과 정들면 안 된단 생각이 들었다. 정들면 또 못 보니까. 특히 전공의 선생님은 더욱더. 기분이 별로였다. 여기까지 와서도 걱정을 하고 내 맘대로 하지 못 한다는 게 짜증이 났다.


전공의 선생님과 면담하고 고통 감내 자료를 받았다. Wise Mind ACCEPTS, TIPP 뭐 이런 위기 생존 스킬 같은 것이 정리되어 있는 자료였는데 별 스킬이 다 있단 생각이 들었다. 이게 될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임상심리사분과 심리검사를 했다. 일명 풀배터리 검사라 부르는 거. 두 번째 한 거라 검사들이 익숙했지만 그럼에도 첫 번째 할 때 보다 더 지친 것 같았다. 첫 번째 할 때와 다른 점은 면담만 1시간을 했단 거였다. 처음 했을 땐 정말 휘리릭 물어보고 끝났는데 이번엔 좀 더 세세하게 많은 걸 물어보셨다. 몇 회차 상담치를 한 번에 다 돌린듯한 기분이 들었다. SCT(문장완성검사)에서 내가 잊고 싶은 두려움은 죽음 앞에 서 있는 것.이라고 쓴 게 있었는데 그걸 본 임상심리사분이 그러면 이건 살고 싶은 거냐고 물으셨다. 그땐 그냥 그렇다고 대답을 해 버렸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난 저 답을 적을 때 죽음 앞에 서 있는 두려움을 잊고 싶은 건 그것 때문에 또 죽지 못하니까 그렇게 적은 거였다.


오전에 3시간 동안 심리검사를 하고 괜시리 기분이 별로였다. 그래서 찬양 들으며 나가서 걸었다. 그러다 친구도 나와서 같이 한 시간 반을 걸었다. 입원하고 걷는 시간이 대폭 늘었다. 아무래도 기분을 환기하기 위해선 걷는 방법이 최고였기에. 좀 기분이 괜찮아졌다가 다시 무기력해졌다. 글 쓰기조차 힘들었다. 내가 왜 힘든지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내가 힘든 이유가 충분하지 않은 것 같았다. 모든 게 그저 내 탓 같았다. 이런 상태가 너무 익숙해져서 나아진다는 건 뭔지 감이 잘 안 왔다. 어디 주저앉아 울고 싶은데 눈물도 안 나오고 사람들은 많고… 우는 것도 너무 복잡한 일이란 생각까지 했다.


연기를 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괜찮은 척… 웃고. 웃는 게 습관이다. 진짜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정말 인지하지도 못하면서 열심히 웃는다. 자해 충동도 되게 심했는데 웃으면서 충동이 심해요~ 그러면 아무도 안 믿어줄 거 같아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친구랑 결국 2만 보까지 걸었다. 친구네 부모님을 같이 만나 뵀는데 진짜 유쾌하고 좋은 분들이셨다. 특히 어머님이 날 너무 좋아해 주셨다. 아버님은 보자마자 힘들었겠다며 위로해 주셨고.


인생에서 고통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감내해야 한다면.. ‘감내’하는 것과 ‘버티는 것’은 뭐가 다른 걸까.


입원 4일차

어쩌면 힘들다고 말할 줄을 몰라서 자해를 하게 되는 걸지도 모른다. 삼키는 게 익숙하고 억누르는 게 익숙해서. 근데 마음은 답답하고 괴로우니까 자해로 대신 푸는 거다. 뭐가 그렇게 힘드냐는 말에 이유를 말할 순 없는데 말하지 못해 더 답답하고 말할 수 없는 모든 상황이 숨 막히게 힘들다.


전공의 선생님과 한 시간 좀 안되게 면담했다.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역시나 기억나는 건 제로. 고통 감내 자료 보고 이야기 나눴다. 그러면서 신앙 이야기도 하고 ㅇㅇ이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러니까 좀 안 믿으시는 눈치였다. 암만 그래도 그럴것이 이제 4일 됐으니. 내가 어디 나가지도 못 한다 그러니까 거기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물어보셨고 그럼 정말 집에서 자해 밖에 탈출구가 없었겠다고 공감해주셨다. 자살 어쩌고 설문지를 했고 거기에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정했다. 라는 문항이 있었는데 내가 거기에 매우 그렇다 체크해서 그걸 보시곤 집요하게 물어보셨다. 그래서 다 말씀 드렸다. 그랬더니 마지막에 그러면 8월 8일까지 입원하면 되죠~~ 이러셨다.. 괜히 말했나.


너무 아플 것 같다고 그러셨다. 그러면서 맡았던 환자 중 돌아가신 분들 보면 되게 고통스러울 거 같았다고 그러셨다. 그래서 환자가 죽으면 어떤 기분이냐고 여쭤봤다. 모든 환자를 다 살릴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게 필요하고 그치만 자책도 많이 했었다고 그러셨다.


그리고 내 주변 환경과 사람을 바꾸긴 어렵지만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그건 바꿀 수 있을거라고 하셨다.


쌤.. 좋으셔.. 그래서 더 정들기 싫어.


친구랑 걷고 퍼즐을 맞췄다. 첨엔 1000피스 하다가 조각이 다 없어서 500피스로 갈아탔다.


학교 친구들이랑 전화두 하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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