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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랑 Sep 06. 2023

정신과 입원, D-DAY

좌충우돌 정신과 입원기(2)

8시 반에 일어났다. 내 평소 기상 시각이 11시임에 비하면 엄청 일찍 일어난 거였다. 10시까지는 가야 했기 때문에 일찍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가슴엑스레이랑 심전도 검사하고 입원 수속 밟았다. 정신과 병동은 별관에 위치해 있었기에 또 짐을 들고 열심히 걸어갔다. 가서 바로 병실 배정받고 가져온 짐 검사하고(후드집업 뺏겼다. 시계도 뺏기고 샤워타월은 반땡 됐다.) 대충 정리하니까 간호사 선생님이 오셔서 면담을 하자고 하셨다. 간략하게 내 인생에 대해서 물어보셨고 흡연 여부나 자해 여부 이런 걸 물어보셨다. 그리고 이상하게 자해한 것을 보여줄 수 있냐고 물으셨다. 조금 당황했지만 싫다고 하기도 그래서 조용히 팔을 내밀었다. 당시 약에 인데놀이 다 빠져있던 상태여서 굉장히 덜덜 떨면서 이야기를 했다. 면담실이 춥기도 했고. 그렇게 20분 정도의 면담을 마치고 물 받으러 나갔는데 친구가 생겨버렸다. 같은 열아홉, 같은 자퇴생에 같은 기독교 친구. 서로 말 놓자마자 급격하게 친해졌다. 한참을 복도를 돌아다니며 대화를 나눴다. 나보다 3일 정도 빨리 들어온 친구였고 그 이후로 나의 입원 생활에 큰 영향을 준 고마운 아이다.


1시간을 내리 수다를 떨고 밥이 나와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뭘 먹었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 병원밥에 대한 첫인상은 그저 그렇다 이 정도였다. 반공기 먹고 식판을 반납했다.


그리고 또다시 면담. 이번엔 전공의 선생님이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유 교수님 밑에서 일하고 있는 전공의고요 앞으로 ㅇㅇ님 입원해 계시는 동안 담당 의사로 맡게 되었습니다. 잠깐 면담 가능할까요?”

전공의 선생님과의 첫 만남. 또 면담실에 들어가서 한참을 이야기했다. 유치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쭉 거슬러 가며 물어보셨고 나는 기억나지 않는 것들을 기억해 내느라 애를 썼다. 내가 뭐라고 답했는지도 전혀 기억이 안 난다. 그냥 그때는 나에 대해서 또 반복된 사실들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에 좀 지친 상태였다. 하지만 성실하게 면담에 임했다. 나중에 전공의 선생님께 내 첫인상을 여쭤본 적이 있는데 계속 웃는 모습에서 많이 애쓰고 있단 걸 느꼈다고 하셨다. 그만큼 나는 어두운 이야기를 하면서도 겸연쩍은 듯 계속 웃었고 그게 습관이었다. 나중에야 인지하게 된 사실이지만.


면담이 끝난 뒤,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는 전공의 선생님과 면담했다는 것과 좋은 분인 거 같다는 거 그리고 뭐 잘 먹고 잘 지내라는 그런 말을 했다. 그리곤 잔뜩 울먹이며 한마디 뱉어놓았다.

“엄마가 미안해.”

엄마는 내가 입원을 해야 할 정도의 상태라는 것을 쉬이 받아들이지 못했고 모든 게 당신의 탓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나는 울지 말라며 건조하게 엄마를 달랜 뒤 전화를 끊었다.


‘지친다’

자리에 누우며 한 생각이다. 모든 게 지쳤다. 그리고 아무 생각도 안 들었다. 입원을 했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았다.


오후 7시쯤에 교수님이 전공의 무리를 이끌고 회진을 돌러 오셨다. 교수님은 기분이 어떤지 물어보시더니 내 자리에 잔뜩 꽂혀있는 책을 보곤 말씀하셨다.

“공부한다고 말릴 생각은 없지만 여기 공부하러 온 건 아니니까~~. 편하게 생각하면 좋겠다.”

생각해 보면 왜 그렇게 많은 책을 가져갔나 싶다. 읽을 책, 검정고시 공부할 책, 프랑스어 책… 불안해서 그랬지 않을까 싶다. 뭔가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고 나가야 한다는 그런 생각 때문에.

그리고 또 하고 싶은 말 없냐는 교수님의 질문에 인데놀을 추가해 달라고 했다. 교수님은 그러겠다고 하셨고 대신 다른 약들은 좀 줄일 생각이라고 대답하셨다. 그때 나는 개인 병원을 8개월 정도 다닌 상태였고 그동안 유명한 항우울제는 거의 다 먹어봤다고 할 수 있었다. 거기에 기분 조절제까지 먹었으니 말 다했지 뭐. 약이 안 듣는 케이스였다. 오래 고착된 우울은 약으로는 쉬이 해결되지 않았다. 교수님은 이미 그걸 알고 계신 듯했고 대신 이야길 많이 하자고 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적절한 처방이지 않았나 싶다. 그때가 겨우 두 번째 보는 거였는데.


조금 죽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습관처럼 하는 생각이었지만 어쩐지 더 외롭게 느껴졌다. 이야길 많이 하자는 교수님의 말에 긴장도 됐고 기대도 됐다. 이왕 입원한 거 도움 받고 나가고 싶었기 때문에 내 이야기 많이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거라고 속으로 다짐했다.


저녁에 SCT(문장완성검사)랑 MMPI-A(다면적 인성검사), 병원에서 따로 만든 심리검사지를 받아 열심히 작성했다. 하지만 문제가 너무 많아 당연히 끝내진 못 했다. 심리검사를 하고 있으니 약 먹을 시간이 되었다. 약을 먹고 조용히 자리에 누우며 기도했다.


‘내일은… 더 나은 하루가 되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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