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남편을 만났을 때 '이 사람이면 되겠다.'싶었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엄마 아빠였다. 우리 언니들은 당시 매우 힘들게 살고 있었고 능력 있는 사위가 없다는 이유로 부모님의 한탄섞인 소리를 나는 많이 들어왔었다. 이 사람의 외모는? 내 이상형인가? 아니다. 그에게 풍겨오는 품위가 있는가? 좀? 애매했다. 그냥 내가 본 것은 서류가 전부다. 결혼정보회사에서 매칭이 되기 전에 남자 쪽이 온라인으로 자기 소개서 비슷한 이력서를 보낸다. 자기소개는 거의 한 줄이다. 아래는 김경일교수가 소개한 에코이스트의 특징이다. 5가지 이상이 해당되면 에코이스트라고 전한다. 방청석에 앉아있는 사람들 중 20~30%가 그에 해당한다고 손을 들었다. 나는 거의 다 해당되는 것 같다. 5개 정도 해당될 줄 알았는데, 예전에 그 정도는 더욱심했고 나르남편을 만난 후 생명의 위협을 느껴 의식적으론 다른 형태의 자아가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나는 나르 친구들을 제작년까지 연락하고 지냈었다. 2-3년 전까지 남편이 나르인지 몰랐다. 논문을 쓰려고 하면서 논증을 펼치기 위해서는 한 문장 하나씩을 제대로 해석하는 문해력을 갖춰야 했다. 나는 철학과를 나왔음에도 쌓여있는 지식이 없었다. 예전에 시험 보기용으로 공부했던 기억의 단편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는 눈칫밥을 먹으며 내가 장학금을 타지 않으면 부모님이 나를 열외 시킬 것 같아 목숨이 위태롭다고 느낄 정도의 두려움으로 공부했다. 결과는 8학기 중 2-3번 정도를 장학금을 빼고는 내내 받았다. 그렇게 돈은 얻었지만 지성을 두텁게 쌓질 못했다. 그래도 성적이 워낙 좋아서 회사는 특채로 들어갔다. 행운이었다. 하지만 쉽게 들어간 것으로 보여서일까? 내가 해낸 일이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질 않으셨다. 나의 직책은 비서였다. 아빠가 생각하기에 비서는 좋은 개념이 아니었던 것 같다. 난 그때는 몰랐다. 이런저런 인생의 변곡점을 거쳐 결혼정보회사에 이력서를 쓸 때 내가 비서경력을 수록해 두면 메니져는 그 이력을 감추곤 했다. 너무도 이상해서 2-3번을 물었다. 저희는 최대한 좋은 이미지를 우선으로 소개해드립니다라는 에두르는 말을 했다. 에두르는 말이 지성을 표현하는 것일까? 지성을 표현하는 것이 뭔지 대학원을 가서야 교수님을 통해서 조금씩 알아갔다. 인간에게 풍겨 나는 고귀한 무엇? 뭐라고 표현하기가 어렵다. 품위는 어떻게 쌓이는 걸까.
야속한 세월
엄마는 아이 다섯이 있다. 아들을 가지고 싶어 네 번째 출산에 성공하였고 또 갖고 싶어 다섯째를 낳아 성공하였다. 나는 셋째 딸이다. 한 살, 두 살, 나, 세 살, 한 살 나 앞뒤로 두 살, 세 살 터울이 있다. 하지만 내 바로 위에 다른 형제가 있었다고 했다. 엄마는 짐작으로 딸일 것 같아 낙태했다고 했다. 그리고 나도 의심이 가서 고민하다 나를 임신한 지 6개월째 낙태하기 위해 병원을 찾았으나 위험하다고 하시는 의사 선생님의 조언으로 그냥 아이를 낳았다고 한다. 나를 임신할 때 엄마는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기에 아빠가 교통사고가 났다고 한다. 그 불안이 내 안에 내재돼 있는 것일까. 어려서 쭉 짜증과 불안이 계속되었다. 난 하염없이 울었고, 가끔 혼자 보내지는 시골에 다른 사람 손에 이끌려 떠날 때, 그리고 나를 두고 떠날 때 두려움과 야속함.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날 까 아이는 몰랐다. 어려서 내 안에 일어나는 마음자리는 부모라면 훤히 안다고 착갔했던 긴 시간을 보냈다. 굉장히 오랫동안 그랬다. 20대가 넘어서까지 인식하지 못했다. 그런데 아이의 마음이란 왜 그런 것일까? 그리고 트라우마라는 것을 겪게 되면 그 막을 스스로 깨치기가 너무도 힘들다. 성인이 돼서도 내 마음을 타인이 다 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너무도 이상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마도 가족 내에서 사용하는 언어 습관 때문이 아닌가 쉽다. 명령조, 명령은 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들린다. 그런 착각을 일으킨다. 그리고 새로운 사고는 갇힌 조건에서는 발휘되질 않는다. 그렇게 오랜 기간 눈뜬장님이었다.
남편의 투정이 말도 못 하게 당황스럽고 어이가 없어서 어떻게 해야지 행복한 결혼생활이 될까? 어떻게 해야 대화할 수 있을까? 어떤 여성이 되어야 매력적일까? 어떤 여성이어야지 남편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들로 꽉 차있었다. 그래서 이 사람, 저 사람 하염없이 물었다. 좋은 사람이란 뭘까? 사랑받는 사람이란 뭘까? 책에서는 존재 그 자체로 사랑하는 것이 찐이라고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이 아닌가? 너무도 궁금했다. 내게는 펼쳐지지 않은 세계. 그래서 책을 덮고 사람에게 묻기로 했다. 내가 어려서 학대를 받은 후 침묵한 12년이 시간이 잘못된 게 아닐까 역산했다. 그런데 내가 대학원을 가서 알게 됐다. 이렇기 때문에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그러한 것이란 것을. 내가 사랑받는 것보다는 상대인 그 사람의 됨됨이가 그러하다였다. 아! 놀라웠다. 나는 우리 아빠가 나르인지 몰랐다. 대학원 가기 전 몇 년 전 얘기를 엄마는 하소연하듯이 했다. 신호등을 함께 건너다가 미끄러져서 넘어졌는데, 네 아빠가 모른 척하고 그냥 가버렸아야라고. 그런 일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이가 들어서야 아빠가 엄마에게 하는 비인간적인 모습의 실체를 알아갔다. 그렇게 나르는 자신의 모습을 평생 숨기고 가장 존중해야 할 배우자에게 온갖 허물을 보이나 보다. 결혼과 동시에 돌아가신 엄마의 역할을 찾는 것인가. 그들은 퇴행된 것이다.
난 코로나 시기에 아빠의 끔찍한 모습을 목격했다. 아빠는 2017년도에 위암을 발견하고 위절제 수술을 하셨다. 그래도 하루 세끼 꼬박 드시고 식사속도도 매우 빨랐다. 위가 없어도 평소 먹는 본능은 사라지지 않아 신기했다. 그리고 2년정도가 흘렀던 때다.
"아이고, 힘들어 죽겠네. 하루 종일 누워있지 말고 목이 다 타네. 가서 좀 우유라도 사와. 아이고 목 타고 죽겠어."
"어차피 안 죽을지 안게 절대 안 가."
라며 소파에 길게 누워서 부엌에서 일하시는 엄마에게 투정 부리는 초등학생처럼 자긴 절대 안 갈 거라고 고래고래 소리치고 계셨다. 놀라웠고 충격적이었다.
대학원에서 지성을 쌓으며 이성을 훈련시키면 더 이상 당하지 않고 주체적 인간으로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었다. 그런데 남편이 문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우리 아빠가 저런 사람이었다니. 내가 교수님께 면담 중 남편이 이랬어요 저랬어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니체를 읽어서는 더 이상 답이 안 나와요. 니체는 닫힌 문을 여는 거기까지 밖에 없어 지금 당장 제게 필요한 것은 다른 학자를 찾아야 할 것 같아요 등 주절 거릴 때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그러니까. 부모님이 존중을 안 해?"
"아? 네."
온갖 것에 방어하느라 주절거리는 것이 습관이 되었고 그것을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많이 부족했다. 왜 그런 단어가 내 안에 없는 걸까? 그래서 논문도 쉽게 써지질 않은 것이라 생각했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더라고 체험하지 못해 인식되지 않은 것들은 모두 채에서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인생이란 참 이상하다.
난 반성해 본다.
나를 스스로 방치한 죄
타인을 쉽게 믿은 죄
성장하지 못 한 죄
침묵한 죄
가장 큰 죄, 나를 믿지 못한 죄
에코이스트의 특징_5개 이상해당하면 에코이스트이다. 나르시시스트가 먹잇감으로 오늘 한 건 했다는 대상이 될 수 있는 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