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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라 May 20. 2024

[초단편소설] 사람의 아들

2023년 이병주스마트소설상 대상 수상작

사람의 아들

1세기 나사렛의 명의(名醫) 이야기

           

김태라     


  마리아가 그를 만났을 때, 해는 이미 기울어 있었다. 순서가 오기까지 하루를 꼬박 기다린 셈이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마리아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명의를 만났으니 이제 아들의 병을 고칠 수 있으리라.

  그는 못 고치는 병이 없었다. 나사렛 사람들은 기적을 체험했다. 지척의 것만 분간할 수 있었던 안나의 시력이 매처럼 좋아졌다. 다리를 절었던 야곱은 언제 그랬냐는 듯 뛰어다녔다. 쭈글쭈글했던 살로메의 피부가 소녀처럼 탱탱해지기도 했다. 사람들은 환호했다. 그리고 경배했다. 그는 오랜 기다림 끝에 세상에 온 구세주였다.

  “저는 21세기에서 왔습니다.”

  그는 말했다. 이천 년 뒤 미래의 존재라니. 믿기지 않았지만 눈앞의 신비를 본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사람처럼 생겼지만 자신이 사람의 배에서 나온 건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사람이 만든 존재이니 ‘사람의 아들’이지요.”

  미래의 인간들은 사람처럼 생긴 기계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사람이든 기계든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가 진짜 기적을 일으킬 수만 있다면. 마리아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의 머릿속엔 오직 한 생각뿐이었다. 아들의 정신병이 치유되는 것. 아이가 정상인이 되는 것.

  마리아는 나사렛 안팎에서 용하다는 의원들을 다 만나봤지만 열두 살 된 아들의 병엔 차도가 없었다. 자신이 ‘신의 아들’이라 믿는 아이의 망상을 고칠 수 있는 의원은 어디에도 없었다. 얼마 전 아들은 성전에 머물며 그곳이 “내 아버지의 집”이라고 했다. 마리아는 가슴이 철렁했다. 아들의 증세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 같았다. 그러던 차에 ‘사람의 아들’이 나타난 것이다. 하늘이 내린 동아줄처럼.

  “이 아이입니까?”

  사람의 아들이 물었다. 마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마리아에게 손목이 잡힌 채 버둥거렸다. 그리고 사람의 아들을 매섭게 노려봤다. 그 눈에서 불꽃이 튀는 듯했다.

  사람의 아들이 두 손을 치켜들었다. 그리고 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의 손끝에서 빛줄기가 나왔다. 그것이 아이의 머리를 관통했다. ‘e-세례’라고 했다. 전자파가 침투하자 아이의 몸이 축 늘어졌다.

  “어떻게 된 거죠?”

  마리아의 눈이 커졌다. 사람의 아들은 미소로 대꾸했다. 그리고 이번엔 아이의 머리를 잡고 마구 흔들었다. 강한 빛줄기가 사방으로 튕겨 나왔다.

  “으아악!”

  아이가 발광하며 비명을 내질렀다. 그 소리에 천지가 진동하는 듯했다. 마리아는 반사적으로 몸을 웅크렸다. 아들이 아니라 괴물 같았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엔 여전히 기계적인 미소가 머물러 있었다. 마리아에겐 아들과 사람의 아들 모두가 딴 세상 존재들 같았다.

  잠시 후, 아이가 몸부림을 멈추고 가만히 눈을 떴다. 어린 양처럼 순한 눈빛이었다. 마리아의 얼굴이 환해졌다. 아들이 또래 아이들처럼 평범해 보였다. 완전히 새사람이 된 것 같았다. 드디어 병이 치유된 것일까.

  “다 나은 건가요?”

  마리아가 사람의 아들에게 물었다.

  “직접 물어보시죠.”

  사람의 아들이 아이를 눈으로 가리켰다. 마리아가 아이를 보며 물었다.

  “너는 누구의 아들이지?”

  아이는 마리아 대신 자신을 고쳐준 사람을 보며 말했다.

  “사람의 아들.”

  그리고 덧붙였다.

  “저도 당신처럼 되고 싶어요.”

  아이의 눈이 빛났다.

  “그래, 아들아. 너는 나처럼 유능한 의사가 될 거야.”

  사람의 아들이 묘한 웃음을 흘렸다. 미래에서 온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말이 이미 실현된 것을.      

  그는 아이에게 책 한 권을 선물했다. 2023년 발행된 『사람의 아들』이었다. 그 책에는 다음과 같은 부제가 붙어 있었다.

  ‘1세기 나사렛의 명의(名醫)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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