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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라 Jun 28. 2024

[초단편소설] 불멸

<문학나무> 2024년 봄호 수록작

불멸


김태라


  “저는 결심했습니다. 죽기로요.”

  청년이 말했다. S는 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다. 보얗고 탱탱한 피부에서 광채가 났다. 죽음을 말하는 사람치고는 너무 빛났다. 정말 이상한 세상이로군. S는 모든 게 혼란스러웠다. 동면에 들어간 일이 후회됐다. 물론 그 순간에 의식은 없었다. 그러나 의식 불명 상태로 생사의 기로에 놓였을 때 인공 동면에 들기로 계약을 해놨던 것이다. S는 일흔 번째 생일 전날 쓰러졌고, 미래의 의학 기술로 살아나기 위해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세상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2130년이라 했다. 센터 직원은 그가 최적의 시기에 깨어났음을 강조했다.

  “……리셋의 부작용이 완전히 사라지고 올해부터 무료로…….”

  직원이 무슨 설명을 하고 있었지만 그의 귀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100년이 지났다고?”

  어처구니없는 사태에 S는 화조차 나지 않았다. 모든 게 비현실 같았다. 꿈이라면 깨야 한다. 머릿속엔 이 생각뿐이었다. 그는 ‘리셋’ 운운하는 센터 직원을 뿌리치고 거리로 나왔다.

  “동문 방향입니다.”

  그가 동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귀에 붙은 AI가 길 안내를 했다. 허공에서 ‘죽음은 불법입니다’라는 홀로그램 문구가 깜빡거렸다. 이상한 말이었지만 S는 시선을 거두고 내처 걸었다. 그런데 사람들의 시선이 S에게 쏠렸다. 그는 걸음을 멈췄다.

  “왜 리셋 안 하셨어요?”

  젊은 여자가 S에게 물었다.

  “리셋이라니?”

  센터에서 얼핏 들은 말이었지만 기억에 남아 있는 건 없었다. 곧바로 귓속 AI의 설명이 흘러나왔다.

  “2080년 과학기술은 ‘바디 리셋’을 통해 인체를 젊은 시절로 되돌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간단한 수술만으로 누구나 20대의 몸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뇌 속에 칩을 심어 영원한 젊음을…….”

  “그럼 다들 늙지 않는다는 건가?”

  S가 벙벙한 얼굴로 사람들을 둘러봤다. 전부 청년들뿐이었다.

  “네, 저는 예순다섯 살이에요.”

  대학생처럼 보이는 남자가 말했다. S는 기가 막혔다.

  ‘세상이 미쳐도 한참 미쳤군. 아니, 내가 잠이 덜 깬 건가.’

  S는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100년 뒤 세상? 늙지 않는 인간? 모두 꿈같은 얘기였다. 그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다른 쪽으로 걸어갔다. 걸음을 옮기자 귓가에서 ‘남문 방향’이란 안내가 흘러나왔다.

  남쪽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젊은이들뿐이었다. 다만, 동쪽의 풍경과 다른 것은 S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점이었다. 빌딩이 모여 있는 곳이라 그런지 모두가 앞만 보며 빠르게 걷고 있었다. 잠깐씩 그를 흘낏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이들도 전부 리셋을 한 건가?”

  S의 혼잣말에 귓속 친구가 대답했다.

  “2130년 4월 현재, 바디 리셋을 하지 않은 인구는 5% 미만입니다. 전 국민의 95.3%가 리셋에 성공했습니다. 올해부터 국가에서 리셋 비용을 전액 부담해 무료로 젊고 건강한 몸을…….”

  “잠깐.”

  S는 AI의 말을 끊은 뒤 다시 물었다.

  “젊다고 해서 무조건 건강한 건 아니잖아?”

  “아닙니다. 바디 리셋이란 단지 젊은 상태로 돌아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리셋을 통해 영원히 늙지도, 병들지도 않는 몸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영원히 병들지 않는다고?”

  S는 어안이 막혔다. 천국에 들어선 건지, 지옥에 떨어진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이 세상이 꿈인지, 현실인지도 판단할 수 없었다. 심지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나는 이게 꿈이길 바라는가, 현실이길 바라는가?그는 자문했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S는 착잡한 생각에 빠져 서쪽으로 걸어갔다. 서문 의 풍경도 다르지 않았다. ‘죽음은 불법’이란 문구는 어디에나 구름처럼 떠 있었고, 그 구름 밑에는 젊은이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분위기가 비슷했다. 그 비슷한 얼굴들 속에 제각각의 노인이 숨어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때 S의 머릿속이 번뜩했다.

  ‘늙지도, 병들지도 않는다면 모두가 영원히 존재한다는 건가? 그럼 인구가 한없이 늘어날 텐데 국가에서 그걸 장려하고 있다고?’

  헛웃음이 났다. 이 모든 게 환상일 가능성이 컸다. 자신은 꿈을 꾸고 있거나 가상 세계에 빠져 있는 것이다. 어쩌면 리얼 드라마를 찍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S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귓속 AI에게 다시 물어봤다. 그러자 뜻밖의 대답이 흘러나왔다.

  “21세기 후반, 출산율이 제로에 가까워지면서 국가는 인구 유지를 위해 전 국민을 죽지 않는 몸으로 바꾸는 프로젝트를…….”

  S는 몸서리가 났다. 이 괴상한 꿈은 AI의 말과 함께 현실처럼 굳어지고 있었다. 인간이 죽지 않는다니. 말도 안 되는 얘기였지만 귓속을 파고드는 설명엔 허점이 없었다. 그는 머리가 폭발할 것 같았다.

  ‘내가 미쳤거나 세상이 미쳤거나, 둘 중 하나다.’

  그는 뛰듯이 북쪽으로 향했다. 기계가 아니라 사람의 말을 듣고 싶었다. 그런데 북문 방향으로 갈수록 인적이 드물어졌다. 얼마쯤 걷자 사람이 아예 보이지 않았다. 거리는 텅 비어 있었다. 그는 으스스한 기분이 들었지만 길이 끝날 때까지 가보자고 생각했다. 세상의 끝을 본다면 꿈도 끝나리라.

  얼마쯤 걸었을까. 북문 앞 공터에 이르렀을 때였다. 거기에 한 청년이 있었다. 가까이 다가간 S의 입에서 고함이 터졌다. 동시에, 청년이 손에서 칼을 떨어뜨렸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S가 재빨리 칼을 주우며 말했다.

  “당신이야말로 뭐 하는 거죠? 그거 주세요.”

  청년의 눈이 칼처럼 빛났다. S는 대답 대신 그 눈을 바라봤다. 왠지 그에게선 답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S는 자기 이야기를 청년에게 털어놨다. 청년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얘기를 듣더니 북문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S도 곁에 앉았다.

  “저는 결심했습니다. 죽기로요.”

  청년이 말했다. S는 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다. 보얗고 탱탱한 피부에서 광채가 났다. 탐이 날 만큼 아름답고 매력적이었다. 청년이 말을 이었다.

  “저는 아흔 살 때, 죽기 직전 리셋되어 오십 년 동안 이 몸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럼 지금 백사십 살?”

  S는 놀랐지만 생각해보니 자신은 그보다 더 나이가 많았다. 동면 시간까지 합하면 백칠십 살이었다. 죽음 앞에서 새 삶을 얻었다는 점에서도 둘은 비슷했다. 청년은 노인처럼 긴 한숨을 쉬더니 다시 말했다.

  “머리에 칩을 꽂고 꽃다운 시절로 돌아간 사람들은 끝없이 같은 일을 반복하며 살아갑니다. 매일이 리셋되니까요. 이 영원불멸의 삶에서 벗어날 길은 없습니다. 죽지 않고서는…….”

  “불멸의 삶이라…….”

  “인간에겐 선택의 자유가 있습니다. 저는 불멸을 원하지 않아요.”

  청년이 말하며 칼을 바라봤다. ‘죽음은 불법’이란 글자가 또다시 허공에 떠올랐다. S는 그 말뜻을 이제야 이해했다.

  죽음이 금지된 세상, 이게 꿈이라면. S는 생각했다. 지금 여기가 꿈속이라면, 죽음으로 청년은 꿈에서 깨어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게 현실이라면, 청년은 죽게 될 것이다. 청년 안에 살아 있는 노인에게.

  S는 칼을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같이 가시죠.”

  S는 앞장서 센터를 향해 걸어갔다.


    

* 『수행본기경』 중 「유관품(遊觀品)」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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