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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쿠로스의 조건적 자족과 스토아의 무조건적 자족

<행복의 철학> 7주차. 2025. 10. 17.

by 김태라

“빵과 물만 있으면 신도 부럽지 않다.” 에피쿠로스가 남긴 유명한 말이다. 이는 그의 자족적 행복관을 잘 보여준다. 그는 “빵과 물”로 요약되는 필수적 욕망만 충족되면 정신적 평온을 누릴 수 있다고 보았다. 그 외의 사치적 욕망들은 쾌락을 주는 듯 보이지만 결국 고통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구분하고,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 속에서 마음의 평정(Ataraxia)을 얻는 것, 이것이 에피쿠로스의 정적 쾌락주의이자 행복의 철학이다.


인간의 삶은 결핍에서 출발한다. 태어남은 곧 의존의 시작이며 살아 있다는 것은 뭔가에 기대어 존재한다는 뜻이다. 인간은 빵, 물, 타인을 필요로 하지만 이러한 필요는 생존을 가능케 하는 동시에 존재의 자유를 제한한다. 그래서 예로부터 부처를 비롯한 현자와 철학자들은 이 의존의 고리를 끊는 방법을 모색해왔다. 에피쿠로스는 가장 절제된 방식으로 이 문제에 접근한 사상가였다. 그에게 행복은 욕망의 충족이 아니라 욕망의 ‘절제’에 있었다.


이는 조건적 자족에 해당한다. 에피쿠로스의 자족은 외적 조건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외부의 공급이 최소화되어도 평온이 유지될 수 있는 내적 안정 상태를 추구한다. 에피쿠로스의 자족은 이렇게 말한다. “이것이 있으면 충분하다.” 그는 결핍을 없앨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결핍의 총량을 줄이는 쪽으로 자유를 설계했다. 욕망을 덜어내면 결핍이 줄어들고 결핍이 줄어들면 평온이 찾아온다. 이는 ‘결핍의 패러다임’ 내부에서 가능한 최적의 평정 상태이다. 그러나 그것은 여전히 ‘조건’을 전제로 한다. ‘먹을 것과 소수의 친구’가 있어야 성립하는 행복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있으면 충분하다”에서 “인간은 자체로 충분하다”로 나아가는 것이 스토아 사상이다. 스토아의 자족은 ‘절제성’이 아니라 본래적 ‘완전성’에서 나온다. 인간은 로고스(Logos: 이성, 신성, 법칙)의 일부이며 우주는 로고스적 질서로 구성된 전체이다. 따라서 인간이 그 법칙을 자각하고 본성에 따라 살면 그는 완전하다. 이 완전성은 본래적 상태이기에 외부의 조건이나 사건에 의해 훼손되지 않는다. “영혼을 가진 존재이기만 하면 행복할 수 있다”는 스토아의 행복관은 이러한 사상적 토대에서 나온다.


스토아의 자족적 행복관은 외적 조건과 그에 대한 욕망을 조정하는 기술이 아니다. 자족은 존재의 근본 성질이며 그러한 덕이 곧 행복(Eudaimonia)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덕은 타인이나 환경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스스로의 자각과 이성적 행위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스토아적 자족은 말한다. “무엇이 없어도 나는 충분하다.” 이것이 무조건적 자족이다. 에피쿠로스가 ‘결핍을 최소화하는 법’을 말한다면, 스토아는 ‘결핍의 의미 자체를 없애는 법’을 말한다.


결핍이란 분리된 자아(ego)에서 비롯된 환영이며, 만유가 하나의 로고스라는 자각 속에서는 결핍이 원천적으로 사라진다. 무조건적 자족은 따라서 존재론적 선언이다. “나는 자체로 완전하다”는 말은 단순한 긍정의 주문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 방식 자체를 전환시키는 사상이다. 그는 더 이상 ‘결핍을 보충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 모든 외부 요인을 내면화하고 그 에너지를 자체적으로 변환한다. 그의 호흡은 타자와의 교환이 아니라 우주적 에너지 순환이며, 그의 사유는 밖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존재로부터 솟아난다.


자연과 인간은 본래 상생하며 살게 되어 있기에 자연(우주)은 인간의 생존을 보장한다. 인간이 ‘소유’가 아닌 ‘존재’ 중심의 삶을 살 때, “빵과 물”에 해당하는 필수적인 필요는 삶에서 저절로 채워지게 되어 있다. 필수적인 욕망만 충족되면 결핍이 존재하지 않고, 필수적인 필요는 ‘존재하는 자’가 그 필요를 인식하기도 전에 충족되므로, 존재의 세계에 애당초 결핍은 없는 것이다. 이것이 무조건적, 절대적 자족의 의식이다. 이를 깨달은 자는 “신도 부럽지 않게” 되는데 그 자신이 신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무조건적 자족이 가능해질 때, 존재는 더 이상 외부 에너지를 ‘먹는’ 구조 속에 있지 않다. 그는 스스로 에너지를 생성하는 자기생성적 존재, 즉 자생(自生)의 존재로 전환된다. 조건적 자족은 결핍 속에서의 균형을 추구하지만, 무조건적 자족은 결핍을 초월하여 스스로가 공급원이 된다. 조건적 자족이 ‘생존(生存)’의 철학이라면 무조건적 자족은 ‘생성(生成)’의 철학이다.


현재 인류는 존재가 스스로를 생성하는 ‘자기생성(Self-Generation)’ 문명의 문턱에 서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I)’ 같은 과학기술은 물질적 자급의 길을 열었고, 깨어나는 인간 의식은 영적 자급의 가능성을 열고 있다. 이 두 흐름이 만날 때 인간은 스스로 충족되며 세상과 순환하는 자기생성적 존재가 될 수 있다. 이러한 비전은 스토아의 무조건적 자족 사상이 보여주는 존재론적 통찰과 맞닿아 있다.


무조건적 자족은 스스로 충족될 때 우주가 나를 부양한다는 깨달음이다. 우주가 곧 나(Self)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각이 체화되면 결핍은 사라지고 생활은 생성으로 전환된다. 진정한 자족의 인간은 바깥에서 생존 조건을 찾지 않는다. 그는 이미 충족되어 있기에 스스로 라이프(生)를 생성할 뿐이다. 그 라이프가 곧 행복이다.



<오늘의 논제>

김희원: 동적인 쾌락, 즉 결핍에서 비롯한 욕망을 절제하고 에피쿠로스처럼 정적인 쾌락만을 추구한다면 과연 사회와 개인이 발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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