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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둥이 Oct 21. 2023

적은 왜 늘 가까이에 있나

2. 공동의 적을 위하여

아빠의 생신날에 맞춰 고향집을 찾았다. 아버지는 멀리 나가서 살고 있는 나를 염려했기 때문에 내가 어떤 사정으로든 언니가 살고 있는 거제도로 간다고 했을 때 무조건 찬성하셨다. 그렇다고 남자친구와 함께 내려오는 것과 카페 창업을 마음에 들어 하시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30대가 된 딸을 마냥 말린 순 없는 일이었다.

온 가족이 맛있는 음식이 올라간 생신상 앞에 둘러앉았고, 나는 직접 만든 케이크를 아빠 앞에 올려두었다.


기쁜 건지 싫은 건지 미묘한 표정이었지만, 날이 날인만큼 큰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계시다는 것은 느껴졌다. 내가 만든 케이크는 흔한 메뉴가 아니었다. 쑥인절미 케이크라고 유기농 쑥가루를 넣은 제누와즈 사이사이에 인절미가루를 첨가한 인절미가루맛생크림을 바른 향긋하고 고소한 케이크였다.

그 위에는 로즈메리 허브와 고소한 인절미가루 뭉치들로 장식했는데 판매상품 중에서도 꽤나 인기가 좋은 편이었다.

나와 남자친구를 탐탁지 않아 했던 아빠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그날 우리는 아주 심혈을 기울인 작품을 만들어서 갔다.

초를 불고 아빠의 훈화 말씀 차례가 되었고, 아빠는 그저 둘러둘러 좋은 말만 하셨다. 별 탈 없이 생신을 클리어했다는 것만으로도 기뻐야 하는데 나는 조금. 아니 많이 슬펐다. 남자친구네 가족들처럼 믿어주고 응원해 주면 좋겠는데 왜 우리 가족은 항상 저렇게 본인의 주관대로 판단한 후 마음에 안 들면 굳이 굳이 나에게 티를 내는 걸까.


아빠는 가끔 내게 전화해서 지금이라도 그만두고 아빠 집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장사가 쉬운 줄 아냐, 남자친구가 좋은 사람이지만 그래도 안된다, 정신 차려라.. 나를 못 미더워하는 말들을 방어하기 위해 열심히 둘러대다 통화를 끊으면 나는 몰래 가족과 멀어지는 상상을 하며 해방감에 목말라했다.


또 하나의 적은 언니였다. 언니는 내 선택을 응원해 주는 든든한 지원자였지만, 자꾸만 언니노릇을 하려 했다. 언니 없는 사람은 그거 좋은 거 아니냐고 생각하겠지. 우리 언니에게 내가 붙여준 별명이 있다. 성악설. 불화산. 본인이 생각한 것이 다 맞고 내가 왜 사과해야 하는데? 배 째라. 식의 대화를 하다 보면 그녀와 아주 멀리 살고 싶어 진다. 초보 사장님이 된 동생이 몸도 마음도 점점 지쳐가는 것을 보며 안타까웠던 언니는 자꾸만 선을 넘는 충고를 해왔고, 네가 잘못했으니까 이런 말은 들어도 돼라는 가스라이팅 화법을 듣다 보면 내 안에 인내심이 점점 바닥나고 있었다.


밖에서 한참 싸우다 돌아와서 위로를 얻는 곳이 집이어야 하지만, 말처럼 그렇게 아름다울 수만은 없다.

때론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바른 소리로 찔리기도 하고, 나 또한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안일함으로 할퀴기도 한다. 우리 가족의 대화는 대부분 논쟁스러웠고, 나는 언제나 소량의 억울함을 쥐고 씩씩대며 살고 있었다.


그래도 남자친구만은 나와 성격이 잘 맞는다고 생각했지만, 아주 완벽하게 틀린 계산이었다.

카페를 준비하는 동안부터 느꼈지만 일을 하는 모든 순간 그와 나의 생각이 달랐다. 나는 완벽주의 기질이 있어서 모든 부분에서 신경 써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는 버릴 건 버리자 주의라서 우리의 첫 싸움은 복숭아로 인해 발발되었다.

아무리 바빠도 복숭아를 좀 더 일정하게 잘라라. vs 시간이 없다. 복숭아는 어차피 속에 들어가니까 괜찮다.

복숭아 대첩의 여파는 꽤 컸고, 나는 당시 카페를 뛰쳐나가서 집에 가버렸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반나절은 혼자 생각할 시간이 주어졌다. 이렇게까지 화가 나고 감정적으로 변하다니.. 정말 다 그만두고 혼자 멀리 떠나고 싶어서 캐리어를 꺼내 마구잡이로 옷을 넣었다. 어차피 아무거나 넣었기 때문에 순식간에 짐은 다 쌌는데 차마 집을 나설 수 없었다.

내가 갈 곳이 있긴 한 걸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내가 없어지면 다 해결되는 거야.

맑은 물이라는 세상에 나라는 불순물이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웃긴 건 그 불순물도 사람이라 한참을 울다 지치니까 이불속으로 들어가서 편안한 자세를 요리조리 찾아서 잠이 들었다. 인생이 괴로워도 허리 아프게 자긴 싫으니까.


혼자 끝까지 카페를 마감하고 돌아온 그는 그래도 나와 화해하고 싶었는지 슬며시 나를 흔들어 깨웠고 고집이 발동한 표정이긴 했지만 화가 나 보이진 않았다.

그를 보자마자 내가 얼마나 힘든 상황인지 마이크 없이도 크라잉랩을 시작했다. 우리 가족들의 화살도 다 내가 막고, 카페 메뉴도 다 내가 짜고, 가계부도 내가 쓰고, 그놈의 복숭아도 일정하게 자르는 게 맞는 거잖아!

한참을 랩핑하고 나니 속이 좀 개운해졌는지 다시 착한 여자친구가 되고 싶어서 슬며시 목소리 톤을 바꾸었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참 못된 사람이다 싶었지만 포장지를 꺼내서 주워 담을 수 없는 말들을 마구 포장하기를 시도했다.

"나를 믿어줘야 해. 불쑥 자존심이 올라왔을 때 한 번만 나를 믿고 인정해 준다면, 나는 그 배로 너에게 미안해하고 돌려줄 사람인 거 알잖아. 나는 미안하단 말, 고맙단 말 너에게 잘하잖아. 내가 밑지는 입장처럼 계속해서 말해도 너라면 당연시 여기지 않을 거란 믿음이 있어서야. 그러니 너도 날 믿어줘."


신나게 두들겨 패다가 마지막에 사탕 주면서 한 번 달래준 격인데, 그는 아! 맞아! 깨달은 얼굴로 내게 미안하다며 미안하다는 말을 잘 못하는 스스로를 바로 인정해 버렸다. 이렇게 순진하다고? 머쓱했지만 나도 원하던 것을 취했으니 함께 사과하며 그날 일은 잘 마무리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나름 생각이 있었다고 한다. 신경 써서 일정하게 자른 것이 그 정도였고, 제누와즈나 생크림 상태, 높이를 계산해 보니 케이크가 무너지지 않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고 했다. 그래도 나는 크기가 좀 더 일정해야 하는 이유를 한참을 더 설명했지만.



내 마음과 몸이 더 이상 사람들을 만날 수 없어지기 시작했을 때부터 카페에 출근하는 날이 점점 적어졌고, 극후반에는 그가 혼자서 카페를 유지했었다. 그래도 같이 해야 한다며 카페에 같이 가면, 그는 나를 의자에 앉혀두고 구경이나 하라며 장난스레 엉덩이를 흔들었다. 베이킹은 절대적으로 소요되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카페를 마감하고 나서도 새벽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작업해야만 다음날에 판매할 디저트를 완성할 수 있었다.

나는 별로 하는 것도 없는데 지쳐 있고, 그는 실제로 굉장한 피로가 쌓여있었다.


머리로 아는 것과 가슴으로 아는 것은 정말 다르다. 그가 많이 피곤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얼마나 마음이 힘든지는 몰랐었나 보다. 하루는 그가 혼자서 열심히 작업하는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툭 말했다.

"우리 그냥 쉴까. 그만할까."

갑자기 커다란 등치가 들썩거렸다. 얼른 쫓아가 안아주었는데, 내 가슴팍이 다 젖도록 꺽꺽대며 우는 그의 등을 두드리며 정작 눈물이 잘 나지 않는 스스로를 깨달았다.

내가 매일 울상이니까 그가 울지 못했구나.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인데, 내가 가장 그를 아프게 하고 있었구나. 머리를 세게 맞은 것 같았다.


오른쪽 발에 염증이 더욱 심해져서 한의원을 쫓아다니며 치료를 하다가 결국엔 장기적으로 쉬어야 나을 수 있는 상태임을 받이들이게 되었다. 동네 유명한 한의사 할아버지는 이건 단순히 발의 문제가 아니라 심신이 매우 약한 상태라 스트레스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우리는 결국 카페를 접기로 했다. 지 때문에 열었고, 지 때문에 닫는 건데 나는 시작할 때도 망설였고 끝낼 때도 망설였다.

남자친구의 부모님께서는 소식을 듣자마자 작게 한마디만 하시고는 바로 괜찮다고 하셨다. 아직 젊으니까 뭐든 해보는 거라며 분명 너희라면 잘했을 거고, 앞으로도 잘할 거라며 내 마음을 쓰다듬어 주셨다.

남자친구가 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업계에 남자친구 동생이 먼저 일을 하고 있었고, 같은 사장님이 하시는 다른 지점에 자리가 났다고 하여 거제도를 내려올 때처럼 또 부랴부랴 다시 상행선을 타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나는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었기도 하고 당장 5분 10분도 걷기 힘든 상황이라 일단 치료부터 해야 했다.


거제도를 떠나면서 나는 다시 한번 우리 가족들과 마찰이 있었고, 내가 봐도 내 처지가 한심한 모양새라 가족들의 말에 반박을 하지 못했다. 앵무새처럼 그냥 내가 원해서 선택한 거라고만 반복해서 말했다.

나랑 똑같이 살고 있는 남자친구는 가족들에게 인정받고 있는데, 왜 나만 서글퍼야 하지. 억울해서 그를 붙잡고 하소연을 했다.


"충고할 거면 돈으로 달라고 해. 당장 해결해 줄 수 없다면, 참견하지 말라고 하는 거야 그럴 땐."


말이 끝나자마자 깜짝 놀라서 에? 하며 깔깔 웃어버렸다. 이렇게 속이 시원할 수가!

그 말 한마디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음에도 개운함이 온몸으로 퍼질 때까지 큰 소리로 웃었다.

맞는 말이었다. 가족들은 내 문제를 결코 해결해 줄 수 없었다. 그만큼의 돈을 건네줄 수 없는 것도 맞았고, 돈으로 막을 수 있는 문제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해결을 하든, 실패해서 짐을 지고 살아야 하든 내가 해야 할 몫이라서 누구의 탓도 도움도 생각할 필요가 없는 일인 걸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진정한 뜻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수많은 시간 동안 나는 내 인생에 방해물 중 하나가 가족이라고 생각했다. 자꾸만 옆에서 쉰 소리 하면 당연히 힘이 빠지지 않는가? 너무 긴 시간 동안 걱정으로 시작된 통제를 받으면서 나 스스로도 더 나아가지 않고 '그들 때문에 이렇게 된 거야.' 부들대고 있었다.


마음 가장 깊은 속에 내가 존재한다면, 그다음 겹은 가족이고 점차적으로 사회 전반적인 요소들이 주변을 이루는 형태라고 생각한다. 내가 들어가 있는 방은 매우 작고 나를 감싸고 있는 다양한 요소들은 너무 커서, 스스로를 중요시 여기지 못하고 자꾸만 나를 제외한 것들에게 많은 것을 내어주었다.

그를 보면 나와는 많이 다르다. 그도 여러 가지 미숙한 점이 있지만, 그는 확실히 주관이 강한 사람이었다.

직장을 잃은 것도, 카페를 접은 것도 그에게 충분히 상처가 될 수 있었는데 그는 개의치 않아 보였다.

오로지 본인이 원해서 선택했고, 열심히 해온 것들이 무너졌을 때도 비관하기보단 그냥 해결하면 되는 문제라고 말했다.

"내가 책임지고 해결하면 되는 거잖아. 해결 안 되는 건 없어. 꼭 완벽하게 해결할 필요도 없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매일 행복을 느낄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 한다는 거야. 나는 솔직히 많이 슬프진 않아. 카페라는 힘든 거를 해결했으니까 더 좋아지는 거잖아. 그리고 내가 해보고 싶었던 일을 할 생각에 설레는 걸?"


그는 마지막까지 과일의 크기를 일정하게 자르지 못했다. 매사 덤벙댔고, 많은 실수를 했다. 어느 순간부터 그에게 잔소리를 줄이게 된 것은 당장의 디테일보다 결국 계속해서 해내는 것이 더 중요할 때도 있다는 것을 진심으로 알게 된 후였다.

그리고 그의 타고난 성향을 내가 모조리 뜯어고치고 해결해 줄 수 없다면 굳이 적이 되어 그의 마음을 공격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가족들에게 원하던 그 배려를 그에게 해주는 것이다.

가족, 연인을 포함한 많은 주변 사람들에게도 함부로 자의판단하여 충고하는 일은 안 하는 것만 못하다는 것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 설사 상대가 조언을 원하더라도, 내가 돈을 주면 해결할 수 있는 일인데 그만한 돈이 없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러쿵저러쿵 할 필요가 없다. 그저 응원하고 함께 방법을 모색하는 성의가 더 의미 있으니까.


새로 살게 된 지역은 우리가 만났던 지역과 가까운 곳이라서 그래도 좀 나았지만, 여전히 낯선 곳이었다.

그래도 그와 연인이 되어 사계절은 함께 보낸 후였기 때문에 조금씩 우리의 마음이 굳건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곳에서 나는 사는 동안 절대 눈으로 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비밀의 숲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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