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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모 Aug 12. 2024

도서관은 내 집 안방이 아닙니다

- 도서관 자료실 소파를 침대삼아 드러눕기까지 하는 이용자를 보며

  도서관에 매일 오가는 대단하신 분들이 많다. 그중 단연 눈에 띄는 여자 어르신이 있다. 여름이라 그런지 한껏 가벼운 옷차림으로 도서관 자료실에 당당하게 입성하는 그녀의 목에는 늘 수건이 둘러져 있다. 개인 취향이니 손수건 대신 타올 수건을 두르는 건 특별한 일이 아닐 수 있다. 도서관 자료실이 내 집 안방인 양 너무 편하게 이용하시는 게 문제다.

매일 자료실 개방이 시작되는 오전 9시에 들어오셔서  그렇듯 종합자료실 내 컴퓨터실에 들어가 본인의 지정석-늘 같은 자리에 앉으신다-에 앉아 동영상을 시청하신다. 그러다가 마치 집안에서 혼자 계신 양 본인의 흥에 겨워 큰소리로 웃으신다.

"하하하하하..."

  나는 화들짝 놀라 현재 계신 곳이 공공장소임을 주지시키기 위해 어르신께 달려가다가 문득 발걸음을 멈추곤 한다. 단발성 웃음에 일일이 주의를 드렸다가는 자칫 민원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잠시 후, 이번에는 음악소리가 들린다. 잠깐 기다렸다가 결국 그 어르신께 정중하게 말씀드렸다.

"저...선생님, 음악소리가 너무 커서 헤드폰 밖으로 소리가 다 들려요. 볼륨 조금만 줄여주세요."

도끼눈을 하고 나를 바라보시지만, 이내 수긍하시고 조금 줄이셨다. 그러다 또 데스크에서 업무를 보고 있자면 어느새 또 웃는 소리가 들렸다 멈춘다. 점심시간쯤 되면 식사를 하러 가시는지 한참동안 자리를 뜨셨다가 오후에 다시 입장하신다.

  그러던 중 얼마 전 그 어르신의 행태는 내 두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바로 구석진 자리에 놓인 2인용 소파 위에 늘 두르고 다니시던 수건을 이불삼아 누워 계셨다. 일반인이면 눕지도 못할 공간인데 왜소한 어르신이 몸을 최대한 웅크려 누워 계신 모습은 기괴하기까지 했다.

"선생님, 앉아서 주무시는 건 뭐 그렇다지만 이렇게 눕기까지 하시면 안 됩니다."라고 말씀드렸다.

"네네, 알았어요 알았어." 하시는 어르신. 도대체 공공시설인 도서관에서 어떻게 누울 생각까지 하셨을까?


  또 다른 어르신은 자주 컴퓨터실에서 음식물을 드신다. 물론 뭐 도시락 정도의 음식은 아니지만 소음에 민감한 도서관 자료실의 특성상 도서관 자료실이나 열람실 내에서의 음식물 취식은 엄격히 제한된다. 이에 컴퓨터실에서의 음료수를 제외하고는 음식물을 먹으면 안된다는 규칙을 일러드렸음에도 데스크에서 정면으로 바라다보이는 위치의 두 좌석을 차지하고는 옆으로 다리를 뻗고 앉으셨다. 책을 읽으시다 갑자기 부스럭부스럭 비닐봉지 뜯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를 드시려고 했다. 얼른 달려가 "어르신, 여기서 음식물 드시면 안 되셔요."라고 말씀드렸더니, "아니야, (일회용 안약 비닐팩을 보여주시며) 나 이거 안약 넣으려고 그런거야. 안약 넣을라구."라고 하셨다. 심증은 있지만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음식물이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것도 아니고 어쩔 수 없이 "아...네." 하고 돌아섰다. 잠시 후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역시 그 어르신이다. 다행히 통화로 이어지지는 않았고, 번호만 확인하시고 끊으셨다.


  그 외에 자료실 곳곳에 자율 독서를 위한 소파좌석에 마치 본인 댁 거실 소파에 몸을 누이듯, 입을 벌리고 코까지 골며 주무시는 이용자분들도 많다. 잠깐씩 조는거야 어쩔 수 없다지만 소파에 눕는 행위를 하는 어르신을 보면서 처음엔 무례하다 생각되었다. 게다가 속옷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잠옷스타일의 원피스를 입으시고 대략난감한 동작으로 앉는다거나 치맛자락을 자꾸 걷어올리는 행동을 하시는 걸 볼 때마다 몹시 거북스러웠다. 그때마다 사춘기 아이들이나 주고받는 저렴한 언어인 '관종(關種, '관심종자'를 줄여 이르는 말)'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했다.


  관심을 받고 싶은 심리, 즉 인정 욕구다. 인정 욕구(認定欲求)란, 타인에게서 자신의 존재 가치 따위를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를 말한다. 매슬로우(Maslow) 욕구 5단계 이론 중, 세 번째 단계인 '애정과 소속의 욕구'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애정과 소속의 욕구(need for love and belonging)가 나타난다. 애정과 소속의 욕구는 사회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전반적으로 원활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욕구를 말한다. 주로 어린 아이에게서 강하게 나타난다는 이 욕구는, 결핍되었을 때 외로움이나 사회적 고통을 느끼며 스트레스나 임상적인 우울증 등에 취약해진다.

  나도 종종 우울에 빠져드는데 이 인정 욕구가 결핍된 것은 아닐까. 그 어르신을 관찰하며 느낀 불쾌하면서도 안타깝던 감정으로 다시 떠올린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 이론. 꼭 이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늘 혼자 도서관을 드나드는 사람들 중 뚜렷한 목적없이 매일 와서 시선을 끄는 언행을 하는 사람의 경우 기본적으로 외로워보인다. 문득 그 어르신도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외로움이란 생리적 배고픔의 욕구만큼 심리적 결핍으로 허기를 느끼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평소에 너무 허기지지 않도록 관계를 충족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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