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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모 May 28. 2024

이용자는 왕이다?!

- 본인 말씀만 쏟아내거나 특정 대형 서점의 향을 원하는 이용자

  어제 오후에 어르신 한 분이 자료실로 들어섰다. 자료실 출입문에 다음 달 중순에 신청할 문화행사인 '목공방' 관련 질문을 하셨다. 문화행사 담당 주무관님께서 즉각 응대해주셨다. "여기서 목공 좀 배우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이에  "선생님, 홈페이지에서 신청해주시면 돼요."라고 말씀드리니, "나 그런 거 몰라. 그냥 신청해 줘~"라고 막무가내로 조르셨다. 하는 수 없이 주무관님께서 신청해드리고 유료 강좌라 수강료를 강사에게 입금해야한다고 말씀드리니, "얼마야? 내가 지금 드릴게."하시며 주머니를 뒤적이셨다. "선생님, 이곳은 공공도서관이라 돈을 직접 받을 수 없구요. 수강료는 직접 강사님 계좌로 입금해주시면 됩니다."라고 말씀드렸는데도 한사코 지금 그냥 받아서 강사한테 전해주면 안되겠냐며 우기셨다. 이번만큼은 주무관님도 단호하게 안된다고 말씀하셨다.

  멋쩍으셨는지 이번엔 특정 도서명을 언급하시며, 도서가 자관에 있는지 물으셨다. "저기, <장자 우화>라는 책 있어요? 조회해보니 이미 제적된 도서였다. 관내 도서관 어디에도 그 도서는 없었다. 그래서 "선생님, 말씀주신 그 도서는 이제 없습니다. 발행년도가 너무 오래되어 공간상 제약이 있다보니 저희 시 도서관 어디에도 없으세요."라고 말씀드렸다. 이번에는 그 이용자분은 "아, 없어요? 그 책이 참 재밌는데 말이지..."하며, "몇 달 후쯤 다시 와보면 책 있을수도 있죠?"라고 하셨다. 이에 "아무래도 도서관에서 구하시긴 힘들 것 같은데, 꼭 보시고 싶으시면 헌책방을 이용하셔야 할 것 같아요."라고 했더니, "그래도 몇 달 후에는 있을 것도 같은데..."라고 끝내 자리를 뜨지 않고 데스크 앞에서 나와 시선을 마주하며 눈에는 힘을 주고 입은 미소랄 것도 없는 묘한 웃음을 흘리고 계셨다. 결국 더이상의 논쟁은 내 힘만 빠질 것 같았고, 주변 이용자들은 아랑곳하지 않으시는 우렁찬 목소리로 말씀해주시는 그분때문에 자료실의 다른 이용자분들께 소음 피해를 드릴 순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럼 몇 달 후에 전화해서 선생님께서 찾으시는 도서 있는지 문의주세요."라고 안내해드렸다. 그제서야 "그래요, 그럼. 내가 두 달 후쯤 한번 전화드려볼게." "수고들하셔~."하시며, 자료실에서 퇴장하셨다.


  모르는 게 자랑은 아닐텐데, '모르는 게 죄야?'라는 소신을 가지신 분들이 이렇게 인공지능 시대에도 아직 많으신 것 같다. 더 나이가 드신 어르신들 중에서도 열심히 신문물을 배우시려는 분들도 많은데, 참 씁쓸한 현실이다. 죄송하지만, 이런 어르신들을 뵐 때마다 '나는 저렇게 늙진 말아야지.' 생각한다. 나도 사실 이력서 한 줄이 필요해서 취득한 독서지도사1급 자격증은 현업에선 거의 쓸 일이 없다. 나의 주요 업무는 도서관 업무매뉴얼 시스템에 따른 반복적인 클릭으로 도서 검색, 대출, 반납 실행, 도서 상태 변경 처리 등을 하고, 반납 도서들을 서가를 돌며 꽂는 일이기 때문이다. 얼핏 보기에는 허드렛일일처럼 여겨질 수 있겠으나, 도서관을 구성하는 인적 요소 중 하나로서 개인적으로는 즐겁게 일하고 있다. 이런 걸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우영우가 마침내 찾아낸 그 단어, '뿌듯함'이라고 하는 거겠지?


  이번엔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을 선보인 이용자분을 소개하려 한다. 그분은 유아실을 들락거리시며 서가에서 책을 찾아 읽기도 하고 하다가 갑자기 데스크로 오셔서 말씀하셨다고 한다. 주무관님의 말씀에 따르면"ㄱㅂ문고(대형서점)처럼 책에서도 좋은 향 나게 디퓨저 좀 놔주시면 안돼요?"라고. 물론 비염인 우리 아이도 좋아하는 그 향이 도서관에서도 나면 좋긴 하겠다. 하지만 이용자마다 개인 취향이 다를 텐데, 함부로 공공기관에서 이용자들의 호불호 취향을 모두 맞출 순 없다. 이런 요구사항이 들어오면 그저 이용자의 말씀에 "아~네...알겠습니다."라고 공감해드리는 걸로 충분하다. 물론 정말 필요하다면 내부 회의를 거쳐 강하지 않고 은은한 향의 방향제를 자료실 내 비치할 수도 있을 것이다.


  느티나무도서관의 관장이기시도 했던 박영숙님은 자신의 책, <이용자를 왕처럼 모시진 않겠습니다>에서 '도서관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당부한다. "어쩌면 도서관은 암묵적인 인정의 혜택을 누려왔는지 모른다. 도서관의 환경이 열악하다고 늘 말해왔지만, 다른 한편으로 '공공'이라는 속성이 부여하는 권한은 큰 문제나 변화가 생기지 않는 한 '현상유지'를 할 수 있는 방패가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도서관은 그렇게 누구도 부정하기 힘든 정당성을 부여받고 있다. 하지만 그런 어드밴티지가 언제까지 유효할지 장담할 수는 없다. 사회 변화에 걸맞은 도서관의 역할과 기능을 좀더 구체적이고 창의적으로 모색해나가야 한다. 기존의 틀에 매인 상태로는 도서관의 존립 이유 자체에 대한 질문에 맞닥뜨릴지 모른다. 세상 모든 역사의 상상력을 담고 있는 도서관답게 냉철히 현실을 진단하고, 정말 대안이 될 수 있는 미래를 함께 그려갈 수 있기를 바란다."(본문 p.394)라고.

  이제는 도서관에서 회원인 이용자들에게는 잡지나 오디오북을 보고 들을 수 있는 전자구독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우리 지역의 도서관 시스템만 봐도 굳이 원하는 책을 해당 도서관에 오지 않고도 집근처 도서관에서 받아볼 수 있는 상호대차서비스를 주 2회에서 주 5회로 늘렸다. 스마트도서관이라고 해서 자판기처럼 기계가 설치된 곳에서도 도서를 빌려볼 수 있는 서비스도 시행중이다. 전자책 구독서비스도 있고, 오디오북이나 잡지를 마음껏 볼 수 있는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이렇듯 도서관도 변화된 시대에 맞게 기능하고 있다. 이런 시대에 인터넷 홈페이지 사용법을 모른다며 거부하거나, 자신의 취향을 모두에게 강요하는 듯한 행동은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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