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 매일 오가는 대단하신 분들이 많다. 그중 단연 눈에 띄는 여자 어르신이 있다. 여름이라 그런지 한껏 가벼운 옷차림으로 도서관 자료실에 당당하게 입성하는 그녀의 목에는 늘 수건이 둘러져 있다. 개인 취향이니 손수건 대신 타올 수건을 두르는 건 특별한 일이 아닐 수 있다. 도서관 자료실이 내 집 안방인 양 너무 편하게 이용하시는 게 문제다.
매일 자료실 개방이 시작되는 오전 9시에 들어오셔서 늘 그렇듯 종합자료실 내 컴퓨터실에 들어가 본인의 지정석-늘 같은 자리에 앉으신다-에 앉아 동영상을 시청하신다. 그러다가 마치 집안에서 혼자 계신 양 본인의 흥에 겨워 큰소리로 웃으신다.
"하하하하하..."
나는 화들짝 놀라 현재 계신 곳이 공공장소임을 주지시키기 위해 어르신께 달려가다가 문득 발걸음을 멈추곤 한다. 단발성 웃음에 일일이 주의를 드렸다가는 자칫 민원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잠시 후, 이번에는 음악소리가 들린다. 잠깐 기다렸다가 결국 그 어르신께 정중하게 말씀드렸다.
"저...선생님, 음악소리가 너무 커서 헤드폰 밖으로 소리가 다 들려요. 볼륨 조금만 줄여주세요."
도끼눈을 하고 나를 바라보시지만, 이내 수긍하시고 조금 줄이셨다. 그러다 또 데스크에서 업무를 보고 있자면 어느새 또 웃는 소리가 들렸다 멈춘다. 점심시간쯤 되면 식사를 하러 가시는지 한참동안 자리를 뜨셨다가 오후에 다시 입장하신다.
그러던 중 얼마 전 그 어르신의 행태는 내 두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바로 구석진 자리에 놓인 2인용 소파 위에 늘 두르고 다니시던 수건을 이불삼아 누워 계셨다. 일반인이면 눕지도 못할 공간인데 왜소한 어르신이 몸을 최대한 웅크려 누워 계신 모습은 기괴하기까지 했다.
"선생님, 앉아서 주무시는 건 뭐 그렇다지만 이렇게 눕기까지 하시면 안 됩니다."라고 말씀드렸다.
또 다른 어르신은 자주 컴퓨터실에서 음식물을 드신다. 물론 뭐 도시락 정도의 음식은 아니지만 소음에 민감한 도서관 자료실의 특성상 도서관 자료실이나 열람실 내에서의 음식물 취식은 엄격히 제한된다. 이에 컴퓨터실에서의 음료수를 제외하고는 음식물을 먹으면 안된다는 규칙을 일러드렸음에도 데스크에서 정면으로 바라다보이는 위치의 두 좌석을 차지하고는 옆으로 다리를 뻗고 앉으셨다. 책을 읽으시다 갑자기 부스럭부스럭 비닐봉지 뜯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를 드시려고 했다. 얼른 달려가 "어르신, 여기서 음식물 드시면 안 되셔요."라고 말씀드렸더니, "아니야, (일회용 안약 비닐팩을 보여주시며) 나 이거 안약 넣으려고 그런거야. 안약 넣을라구."라고 하셨다. 심증은 있지만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음식물이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것도 아니고 어쩔 수 없이 "아...네." 하고 돌아섰다. 잠시 후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역시 그 어르신이다. 다행히 통화로 이어지지는 않았고, 번호만 확인하시고 끊으셨다.
그 외에 자료실 곳곳에 자율 독서를 위한 소파좌석에 마치 본인 댁 거실 소파에 몸을 누이듯, 입을 벌리고 코까지 골며 주무시는 이용자분들도 많다. 잠깐씩 조는거야 어쩔 수 없다지만 소파에 눕는 행위를 하는 어르신을 보면서 처음엔 무례하다 생각되었다. 게다가 속옷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잠옷스타일의 원피스를 입으시고 대략난감한 동작으로 앉는다거나 치맛자락을 자꾸 걷어올리는 행동을 하시는 걸 볼 때마다 몹시 거북스러웠다. 그때마다 사춘기 아이들이나 주고받는 저렴한 언어인 '관종(關種, '관심종자'를 줄여 이르는 말)'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했다.
관심을 받고 싶은 심리, 즉 인정 욕구다. 인정 욕구(認定欲求)란, 타인에게서 자신의 존재 가치 따위를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를 말한다. 매슬로우(Maslow)의 욕구 5단계 이론 중, 세 번째 단계인 '애정과 소속의 욕구'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애정과 소속의 욕구(need for love and belonging)가 나타난다. 애정과 소속의 욕구는 사회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전반적으로 원활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욕구를 말한다. 주로 어린 아이에게서 강하게 나타난다는 이 욕구는, 결핍되었을 때 외로움이나 사회적 고통을 느끼며스트레스나 임상적인 우울증 등에 취약해진다.
나도 종종 우울에 빠져드는데 이 인정 욕구가 결핍된 것은 아닐까. 그 어르신을 관찰하며 느낀 불쾌하면서도 안타깝던 감정으로 다시 떠올린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 이론. 꼭 이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늘 혼자 도서관을 드나드는 사람들 중 뚜렷한 목적없이 매일 와서 시선을 끄는 언행을 하는 사람의 경우 기본적으로 외로워보인다. 문득 그 어르신도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외로움이란 생리적 배고픔의 욕구만큼 심리적 결핍으로 허기를 느끼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