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을 들어본 사람이 많은지 모르겠다. 일단 내가 안 들어봤으니 어떤 느낌인지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가장 많이 학생들의 어려움으로 듣는 이야기는
"쟤가 절교하재요."
이다. 표현은 학년에 따라 다르지만 같이 안 논대요, 연락하지 말래요, 저랑 안 하고 쟤랑 한대요 등 자세히 듣다 보면 결국에는 다 같은 내용이다. 인생경험부족 교사인 나로서는
"서로 기분 안 좋은 일 있었니?"
"그래? 그럼 다른 친구와 하자."
등의 이야기를 건네보지만 학생들로부터 그 이유에 대해 특별한 대답을 그 자리에서 들은 경우는 거의 없다. 이야기를 듣고서야 관찰을 시작해 보지만 눈에 띄는 모습은 없다.대부분 절교를 선언한 학생은 표면적으로는 교실에서 다른 친구들과 잘 지내고 있고 나에게 말한 친구만 의기소침해져 자기 자리에 있다.
무서워요.
이런 기분 처음이에요.
항상 같이 놀자고
내가 좋다고 했는데
서로 사과하면 다 받아줬는데
아니래요. 안 받아준대요.
학교 가기 싫어요.
학생들로부터 들은 내용들을 모아 정리하자면 이런 내용인데 글로정리하다가 대학교 때 실연당한 친구를 위로한 기억이 떠올랐다.
친구들이 연애가 잘 되지 않거나 실연을 당하면 일단 술집에 가서 같이술을 마신다. 경험이랄 것도 없으면서 뭔가 아는 척 친구에게 되지도 않는 위로의 날을 건네며 새벽까지술 마시던 그 시절, 그때 했던 말은 다음 날만 되어도 기억나지는 않지만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들 이렇게 사는구나.'
라는 느낌을 받았다.하지만 술을 진탕 먹은 다음 날 숙취로 인해 수업 결석은 기본이고 갈수록 대학 생활은 엉망진창이 되며 심한 경우 고작 그 일(?)로 군대까지 가는 친구도 있었다. 그런 큰 일(?)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길 때까지 시간이 걸리는 건지, 시간이 흐르면 큰일이 작은 일처럼 여겨져 이겨내지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그렇게 서로 친구들의 슬픔을 달래준다고 모였던청춘의 시기가 지나고 어지간한 일에서 예상보다 힘들지 않다는 생각이 들고 나서야 '이제 좀 어른이 되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의 마음과 느낌을 글로 정리하다 보니 마치 내가 대학생 때 처음 겪었던 그런 일들을 초등학생들은 그 나이에 겪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동네에서 자라 같은 어린이집, 같은 유치원, 같은 학교의 같은 반. 항상 같이 지냈는데 갑자기 어느 날 다른 친구와 더 친하게 지내는 내 친구. 점심때 같이 앉아 급식 먹다가 갑자기 다른 친구와 먹고, 하굣길 편의점 같이 가다가 다른 친구와 가고. 이런 일이 한 초등학생에게는 마치 대학생들이 연애하다가 상대방의 일방적인 통보로 헤어졌을 때의 느낌과 비슷하지 않을까.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이유는 다양하다. 새 학년 새 학기에 새로 알게 된 친구가 좋아져서, 친구의 무심코 던진 한 마디에 기분 나빠져서, 사소한 일로 다투다가, 사과 제대로 안 해서 등등. 어른이 보기에는 별 것 아니지만 사실 이미 그전부터 쌓여왔던 것이 터진 것일 것이다. 연인들이 헤어질 때 갑작스러운 것 같지만 다 이유가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처음 초년병 시절 초등 담임교사로 이런 일을 처음 접했을 때 내가 보기에는 정말 하찮은 이유들이었다. 상담할 때 논리적으로
"네가/걔가 잘못했네. 사과하고 풀어."
감정적으로
"별 거 아냐. 시간 지나면 다 괜찮아져. 다시 친해질 거야."
이렇게 말하다
"그런 게 아니라요. 아휴... 그게 걔가 그런 건 아니고요."
학생에게 이런 말을 들으면 어이가 없고 화도 났다.
'지금 얘가 뭐라는 거야. 내 말이 맞는데.내가 지금 누구와 무슨 얘길 하는 거지? 지금 누굴 달래주려고 말하는 건데 누구 편을 들어.'
지금 다시 생각하면 친구 녀석이 여자친구와 헤어졌을 때
"걔는 잘못한 거 없어. 다 내 잘못이야."
친구의 말에 어처구니없어했던 내 감정과 반응을 학생과의 대화에서도 복붙 했었지 않았나 싶다.그리고 시간이 흘러 비슷한 상담을 계속해도 여전히 이런 상황에서 효과적인 대처 매뉴얼, 해결방법을 잘 모르겠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도 시간은 간다. 사업에 실패해도 시간은 간다. 죽을 만큼 아파도 시간은 간다. 주위를 둘러보면 나만 힘들고 나만 아픈 세상 같지만 누구에게나 아픔이 있다.
학생들도 어른만큼 아프다. 그들도 그들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아직은 모두 미성숙하기에 서로 의도치 않은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지만 내가어른이라고 섣불리 판단하고 강요하고 몰아붙이는 건오히려 일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나의 경험이다.
교사가, 부모가, 어른이 직접해결해 주는 것이 쉽고 편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고민하고 부딪쳐서 자생력을 키우며 성장하는 것이 학생들에게는큰 경험이 될 것이다. 초등학생이든, 대학생이든, 성인이든, 우리는 모두 세상을 공부하는 아직은 미성숙한 학생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