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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이프라인 Jul 17. 2023

선생님, 휴대폰 바꿔 주세요.

3. 초등학생은 왜 무너지는가? -3


 "선생님 저 이번에 다 '잘함' 주시면 안 돼요?"


 쉬는 시간에 한 학생이 책상으로 다가 물었다. 요새는 평가 결과를 3단계 혹은 4단계로 나누어 (매우 잘함) 잘함, 보통, 노력요함으로 통지표에 기록한다.


 "그거야 너한테 달렸지."


 마주 보고 대화하면 불쌍한 표정을 지을 게 뻔하기에 바쁜 척 교사용 컴퓨터 모니터를 향해 몸을 돌리며 대답했다.


 "엄마가 다 '잘함' 이면 휴대폰 사주신대요."


 "너 휴대폰 있잖아?"


 "키즈폰 말고 스마트폰이요."


 아직 어린 나이라 부모님께서 비상시 연락을 위해 키즈폰을 사주셨는데 이제 마음에 안 드는가 보다. 3월 초만 해도 반에 휴대폰을 갖고 있는 학생이 많지 않아서 키즈폰만 있어친구들이 부러워했. 하지만 이제는 반의 친구들이나 다른 학생들 너나 할 것 없이 스마트폰을 사다 보니 도 사달라고 부모님께 투정을 부린 모양이다.


 기능이 별로 없는 자신의 즈폰에 비해 하교하고 난 후에도 계속 앱으로 연락하고 다양한 기능을 이용 수 있는 친구들의 스마트폰 보다 보니 셈이 났을 것이다. 그런 학생의 계속된 성화에 못 이겨 학부모님은 고심 끝에 성적을 조건으로 내세운 게 아닐까 추측이 되다.


 "그렇구나."


 나는 찮고 무관심하다는 듯 말을 던졌다. 나의 무뚝뚝한 말투에 그 학생은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자리로 힘없이 돌아갔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몇몇의 학생들이 교사의 자리로 다가와 자신의 성적을 미리 물어본다. 익숙한 일이다.


 작년에도 그랬다


 "선생님 저 잘함 몇 개예요?"


 "너 한만큼이지."


 "엄마가 성적 잘 받으면 휴대폰 바꿔준다 그랬는데..."


 졸지에 휴대폰을 사주기도 하고 바꿔주기도 할 수 있는 엄청난 능력을 가진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제 성적 입력란에 잘함, 보통, 노력요함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하는데 학생들의 질문이 자꾸 귀에 맴돈다.




 "야, 조용히 해! 조용히 하라고!"


 아까 그 여학생이 수업 시간잡담하는 학생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평소에 수업 중 같이 딴짓하고 수업 주제와 다른 이야기를 잘 꺼내는 친구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자 '얘가 왜 이러지?'라는 황당한 표정으로 다들 그 학생을 쳐다보았다.


 '그렇게 말하는 게 더 시끄러운데... 네가 더 시끄럽게 하는데...'


 말이 나오려는 걸 꾹 참았다.


 '휴대폰을 못 바꿀 것 같아서 짜증이 났나?'


 하지만 그 학생은 하루종일 모범적인 태도로 수업에 임했고 발표도 곧잘 하며 나를 대신해 수업에 방해되는(?) 학생들을 야단치곤 했다. 의아한 생각이 들었지만 어쨌든 적군이 하나 줄어들고 아군이 하나 더 생다.


 "선생님 OO이가 자꾸 저한테 뭐라고 해요. 왜 저래요?"


 수업시간, 쉬는 시간 가리지 않고 땍땍거리며 지적하는 여학생에게 질린 남학생이 와서 물었다.


 "글쎄."

 



 다들 하교한 후 생각해 보니 그 학생이 오해받을 만한 말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거야 너한테 달렸지."


 고학년인 학생들은 이 말의 뜻을 본인이 평소에 한 수행평가 결과물에 달렸다는 말인 줄 알아챘을 텐데 아직 어린 학생이다 보니 수업 중에 바른 태도를 하면 잘 준다고 착각한 모양이다. 내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성적은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더 난감해졌다.


 OO아, 선생님은 성적을 입력하지만 평가 결과는 너에게 달려있단다. 그러니 제발... 말잇못이 아니라 글잇못.



처음 글 : https://brunch.co.kr/@ar808115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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