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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중담 Feb 06. 2024

똥 싸러 가기 전과 후는 왜 다를까?

미자하의 이야기

한비(자)의 「세난」편에 '미자하'라는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전에 미자하라는 사람이 위나라 군주에게 총애를 받았다. 위나라 법에 군주의 수레를 훔쳐 타는 자는 월형(발뒤꿈치를 자르는 형벌)에 처하도록 되어 있었다. 얼마 뒤에 미자하의 어머니가 병이 나자, (이 소식을) 들은 어떤 사람이 밤에 가서 이 사실을 알렸다. 미자하는 (군주의 명령이라고) 속여 군주의 수레를 타고 대궐 문을 빠져나갔다. 군주는 이 일을 듣고 미자하를 어질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효자로구나! 어머니를 위해서 발뒤꿈치가 잘리는 형벌까지 감수하다니!”
또 미자하가 군주와 과수원에 갔다가 복숭아를 먹어 보니 맛이 달았다. 미자하가 먹던 복숭아를 군주에게 바치자 군주는 또 이렇게 말했다.
“나를 아끼는구나. 제 입맛을 참고 이토록 나를 생각하다니.”
그 뒤 미자하는 고운 얼굴빛이 사라져 군주의 총애를 잃고 군주에게 죄를 짓게 되었다. 그러자 군주는 이렇게 말했다.
“이자는 일찍이 나를 속이고 내 수레를 탔고, 또 나에게 먹다 남은 복숭아를 먹게 했다.”
미자하의 행위는 처음이나 나중이나 다를 바가 없었지만 처음에는 현명하다고 칭찬을 받고 나중에는 죄를 입게 되었다. (그것은) 군주가 그를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완전히 바꾸었기 때문이다...따라서 군주에게 간언하고 유세하는 자는 군주가 자기를 사랑하는가 미워하는가를 살펴본 다음에야 유세해야 한다.
용이라는 벌레는 잘 길들여 가지고 놀 수도 있고 그 등에 탈 수도 있으나, 그 목덜미 아래에 거꾸로 난 한 자 길이의 비늘이 있어 이것을 건드린 사람은 (용이) 죽인다고 한다. 군주에게도 거꾸로 난 비늘이 있으니, 유세하는 사람이 군주의 거꾸로 난 비늘을 건드리지 않아야 (성공한 유세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주 1).


영화로도 잘 알려진 '역린(逆鱗)'이라는 말이 등장하기도 하는 이 이야기는, 춘추전국시대의 격동기에 유세가로 활동하던 사람들의 처세술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종횡가'라고도 불렸던 유세가들은 제후에게 등용되어 자신의 능력을 펼칠 기회를 찾아다녔는데, 마침내 중용되면 한 나라와 주변국들까지 쥐락펴락할 수 있는 힘을 얻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오로지 군주의 마음을 어떻게 얻느냐에 달려있었습니다. 군주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미자하처럼 아무리 총애를 받았을지라도 하루아침에 버림받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일찍이 몽테뉴는 인간의 줏대 없음과 변덕에 대하여 논한 바 있습니다. 인간의 모든 행동을 자세히 한번 들여다보면, 통일된 하나의 모습으로 맞춰지지 않고 이상하게도 서로 모순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평소에는 난잡하게 행동하던 여인이 자신을 범하려고 대드는 병사를 피하려고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고, 그래도 죽지 않자 칼로 자기 몸을 찌르는 행동이 그러하였고, 용감하고 기백이 대단한 병사 하나가 만성 속병을 앓고 있었는데, 기특하게 여겨 치료해 주었더니 병이 나은 뒤로는 직무에 태만한 병사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약탈당한 뒤에 보복하려고 용감하게 공격을 감행하더니, 그것을 되찾은 후로는 위험한 작전에 나가기를 꺼려하고, "적에게 약탈당한 어느 가련한 병사에게 시키시오(주 2)."라고 말했다는 이야기 또한 그렇습니다.


평소에는 용기 있는 척 두둑한 배짱을 자랑하더니, 막상 놀이기구라도 타자고 하면 쫄보가 되어버립니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하게 행동한다고 말하면서, 속으로는 남의 인정을 받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뭐든지 해낼 자신감이 있는 것처럼 떠벌리지만, 정작 작은 불편함과 어려움에조차 굴복합니다. 남에게 약속을 안 지킨다고 비난하면서, 정작 자신이 늦을 때는 온갖 변명과 핑계를 가져다 대면서 정당화하려고 합니다. 이처럼 사람의 줏대 없음과 변덕은 수없이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흔하게 하는 말로, "똥 싸러 가기 전 마음 다르고, 나올 때 마음 다르다."고 하는 것이 바로 그 말입니다. 우리의 태도는 이렇듯 잡다하고 모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몽테뉴는,

'만일 우리가 가끔 자신을 고찰하기 위해 시간을 보내며, 다른 사람들의 일을 살펴보고 우리 주변의 사물들을 알아보는 데 쓰는 시간을 우리 자신을 살펴보는 데 사용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구조가 얼마나 약하고 실패하기 쉬운 부분들로 이뤄져 있는가를 쉽게 느낄 것이다. 우리 마음이 아무것에도 만족해 안정되지 못하고, 욕망과 공상 때문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택할 힘도 갖지 못한다는 것은, 우리가 불완전하게 생겼다는 특이한 증거가 아니고 무엇일까(주 3)?'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남을 판단하면서 비난하곤 합니다. 그런데 먼저 자신을 들여다보면 나 또한 모순과 변덕으로 점철된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비난한다는 것은 자신은 옳고 다른 사람은 그르다는 가치 판단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타인을 비난하기도 합니다. 몽테뉴의 말처럼 자신을 고찰하기 위해 시간을 보내고, 다른 사람들의 일과 주변 사물들을 판단하는 데 쓰는 많은 시간을 자신을 살펴보는 데 사용한다면, 남을 비난하기보다는 자신의 부족함과 결함을 발견하고 부끄러워하며 겸손해지지 않을까요?


'항상 동일한 인간으로서 행세하기는 대단히 어려움을 명심하라(주 4).' - 세네카




주 1)  사마천, <사기 열전>, 2021, 민음사

주 2, 3, 4) 몽테뉴, <몽테뉴 나는 무엇을 아는가>, 2005, 동서문화사


연재하고 있는 브런치북입니다.

⁕ 월, 목 - <문장의 힘!>

⁕ 화, 금 - <거장에게 듣는 지혜>

⁕ 수, 일 - <사소한 일상은 인생의 최종손익결산>


화요일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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