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중담 Mar 06. 2024

하루라도 빨리

오랜친구와의 만남

'석문 중학교 33회'.

오랜만에 중학교 졸업 앨범을 꺼내 보았습니다.

'내가 33회 졸업생이었던가?'

저는 지금도 초등(국민) 학교는 몇 회 졸업생인지, 또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몇 회인지, 꼭 앨범을 들여다봐야만 압니다.


얼마 전, 반가운 이름으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시골에 내려왔는데 저녁에 차나 한잔 마시자고 합니다.

가까운 곳에 항구가 있어 바닷바람도 좀 쐴 겸, 해변에 자리 잡은 까페에서 만나자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손님이 없어 일찍 문을 닫는지, 친구와 대화를 나눌 시간이 한 시간 정도밖에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사는 이야기를 두루 나누면서 추억에 잠기기도, 상념에 빠지기도, 웃기도 하다 보니, 금세 시간이 지나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친하게 지냈는데,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조금 소원해진 친구였습니다.

그러다가 같은 고등학교에 가게 되면서 다시 가까워졌는데, 이 친구가 상당히 잘 생겼습니다.

중학생 때도 그랬지만 고등학생 때는 더 물이 올라, 남자답게 시원시원한 얼굴에 풍채도 좋아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습니다.

고등학생 때는 같은 교회에 나가게 되었는데, 하도 이 친구가 인기가 많다 보니 적이 걱정이 되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여학생이 이 친구를 좋아하면 어떻게 하지?'

조급한 마음이 들어 친구에게 엄포를 놓았습니다.

"내 여자한테는 손대지 마라."

사귀지도 않는 주제에 '내 여자'라니, 그리고 손대지 말라니.

뭐, 하여튼 그때는 무척이나 심각했었나 봅니다.


28살의 나이에 중학교 동창과 결혼했는데, 이름은 기억나도 얼굴이 떠오르지 않길래, 집에 와서 얼른 졸업 앨범을 꺼내어 본 것입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친구의 아버지가 건강이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종합병원'이라 불릴 만큼 각종 질병을 앓고 계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혼자 병원에 모시고 가기가 버거워 세 명이 번갈아 모시는데, 그 때문에 한 달에 한 번은 집에 내려와야 한다고 합니다.

부모님도 고생이지만 친구의 짐도 가볍지 않아 보였습니다.


문득 제 부모님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오래전 위암으로 부분 절제를 하셨고, 어머니도 대장암으로 항암치료를 받으셨습니다.

어머니가 항암치료의 후유증을 앓고 계시긴 하지만, 두 분 다 병원을 자주 찾아야 할 만큼 건강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누군가 제게 가장 큰 복이 무엇이냐고, 가장 큰 재산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건강하고 사랑 많으신 부모님이라고 말합니다.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힘이 닿는 데까지 일하시고, 자녀의 미래까지도 준비해 오신 부모님.

저는 그분들에게 너무나 많은 은혜를 입었습니다.

살아계실 때 조금이라도 은혜에 보답해야 할 텐데.


까페를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친구의 뒷모습을 보니, 더 조급한 마음이 듭니다.

하루라도 빨리...



연재하고 있는 브런치북입니다.

⁕ 월, 목 - <문장의 힘!>

⁕ 화, 금 - <거장에게 듣는 지혜>

⁕ 수, 일 - <사소한 일상은 인생의 최종손익결산>


일요일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이전 28화 마흔아홉 친구가 결혼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