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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중담 Mar 03. 2024

마흔아홉 친구가 결혼했다!

친구의 결혼식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하던 시기, 이 친구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남자는 군대에 다녀오면 보통 정신을 차리고 공부를 한다는데, 나는 그 반대였다.

군대 가기 전에는 고등학교 때 하던 것처럼 뭣도 모르고 열심히 공부했지만, 군대에 다녀온 뒤로는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방황하기 시작했다.


입학하자마자 학내 사태가 터지더니 한 학기가 무효화되었다.

교수 부정 임용 문제로 시작된 학내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더니, 가을학기가 시작되자 총학을 중심으로 수업거부를 결행한 것이다.

학교 측에서는 학생들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수업거부에 참여하지 않고 학교가 지정해 주는 곳에서 수업을 들으면 학점은 보장해 주겠다고.


별로 공부에 뜻이 없던 친구들은 이 기회에 잘됐다 생각하고 놀아 재꼈지만, 학업에 열심인 친구들은 한 학기가 무효화되는 것이 두려워 사방에 흩어진 강의실을 찾아 수업을 들었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가 계속되자, 나는 회의를 느끼고 도피하다시피 입대했다.

그리고 복학했지만 여전히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친구는 입학할 때부터 자신의 인생 목표나 학교에 대한 별다른 애정이 없었던 것 같다.

학내 사태가 터지자, 헬스장에 등록하고 열심히 운동하고 놀러 다녔다고 한다.


바로 '요' 게임되시겠다! / 출처 : 네이버 이미지

복학하자 같은 기숙사 방을 쓰던 후배 한 놈이 재밌는 게임이 나왔다며 피시방에 나를 데리고 간다.

그때가 바로 게임계에 일대 혁명을 불러왔던 '스타크래프트'라는 괴물 게임이 출시된 즈음이었다.

인생의 목표와 의미에 대해 고민하며 방황하기 시작하던 때, 나는 이 친구가 어울리던 무리와 친해지게 되었다.

우리는 피시방과 만화방, 당구장을 전전하며 대학생으로서의 특권(?)을 마음껏 누렸다.

나와 같은 친구들이 서로 어울리다 보니, 학교를 그만두고 취업을 하거나, 휴학을 하거나, 그저 놀며 시간을 보내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래도 이 친구는 공부에 뜻을 두고 독일 유학을 계획하고 있었다.


어학원에 다니면서 열심히 유학 준비를 하던 어느 때던가, 밤중에 모르는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친구가 인사불성이 되어 공원에 뻗어있으니 데려가라는 것이었다.

나와 친구 한 명이 가 보니, 이 친구가 술에 잔뜩 취해 제대로 몸도 가누지 못한 채, 잔디밭에 누워 중얼거리고 있었다.

가만히 들어보니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이제, 내 인생에 여자는 없어...어쩌고저쩌고...'


이 친구를 둘러업고 기숙사까지 오느라 진을 뺐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 뒤 친구는 독일로 유학을 떠났고, 10여 년의 세월을 튀빙겐에서 보냈다.

지금은 그때를 웃으며 추억할 수 있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제 결혼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마흔아홉의 나이.

결혼하지 못했으면 정말 그 말처럼 될 뻔했지만, 이 친구는 결국 마음에 맞는 사람을 찾아 결혼에 성공했다.

그간의 빈틈 많고 엉뚱한 모습을 많이 봐 왔기에, 친구가 대견스럽다.


결혼식날 친구들이 나와 사진을 찍는데, 사진사가 친구에게 '이제 허리에 손을 르고 찍겠습니다.'라고 말한다.

그 말은 들은 친구는 어떻게 했을까?

왼손을 제 허리에 올리면서 말한다.

"이렇게요?"

모두 빵 터지고 말았다.

그게 어디 제 허리에 손을 올리라는 소리인가?

신부의 허리를 손으로 감싸고 포즈를 취하라는 말이지.

이 친구는 그렇게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고, 결혼하는 날까지 커다란 웃음을 주었다.


멋있다, 친구야!

부디 행복해라~.



연재하고 있는 브런치북입니다.

⁕ 월, 목 - <문장의 힘!>

⁕ 화, 금 - <거장에게 듣는 지혜>

⁕ 수, 일 - <사소한 일상은 인생의 최종손익결산>


수요일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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