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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 반, 설렘 반의 시작

태안 마애삼존불, 신두리 사구

by 소중담

< 여행 첫째 날 >


오늘은 7월 18일 목요일.


지난 반년, 역사 공부에만 매달리면서 어렴풋이 머릿속으로만 생각했다.

"책만 보는 게 아니라, 실제로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껴봐야 진짜 아는 것이 아닐까?"

생각만으론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이제 생각을 실천에 옮길 때다.


친구와의 여름 여행이 자꾸 미뤄지는 바람에 일정이 늦어졌다. 덕분에 한여름에 개고생 하게 생겼다. 장마와 찜통더위, 거기에 태풍까지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긴 여행이란 낯선 것과의 조우가 아니던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면, 여행 또한 그런 것이다. 그래서 여행은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한다.



떠나기 일주일 전부터 여행 동선을 짠 지도와 준비물들을 꼼꼼하게 챙겼다. 그리고 고대 목조건축물의 구조와 명칭, 석탑과 승탑 같은 고대 구조물에 대한 공부도 병행하였다.


여행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것은 소위 ‘몸빼’로 불리는 왜 바지와 샌들이다. 원래 내가 좋아하는 바지이기도 했고, 시원하고 편한 데다 빨래와 건조가 용이해서, 여름에는 이것을 능가할 만한 옷을 찾기 어렵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주머니도 헐렁하여 소지품들이 빠지기 쉽다는 것인데, 조심하면 이것보다 좋은 옷이 없다. 샌들은 양말이 필요 없고, 비가 와도 문제없고, 언제든 슬리퍼를 대신할 수 있다.


선배가 머물고 있는 안면도에 찾아간다는 약속도 있었고 해서, 여행의 시작은 태안으로 잡았다. 백제문화가 출발점이다. 태안의 마애불을 시작으로 신두리 해안사구, 천리포 수목원을 거쳐 안면도에 도착하는 것이 첫날의 동선이다.


태안 마애삼존불을 보니, 서산 마애삼존불과 비슷한 방식으로 조각한 것이 보였다. 위쪽은 튀어나고, 아래로 갈수록 안쪽으로 들어가는 비스듬한 벽면에 조각되어 있어, 그만큼 머리와 몸통 쪽은 많이 파내고, 다리 쪽은 적게 파내어 불상을 새긴다. 서산 마애삼존불은 유난히 위쪽 바위가 튀어나와 있어, 비가 와도 불상이 비에 맞지 않는다고 한다. 불상을 새긴 사람의 마음가짐이 여기에 드러난 듯하다. 성스럽고 존귀한 대상이 비에 젖어서야 되겠는가.


그런데 이런 얘기를 들으면 짖꿎게도 꼭 딴죽을 걸고 싶어진다.

"그런데 정말 비에 안 맞을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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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8_125707.jpg 태안 마애삼존불. 마애불을 보면 비스듬한 바위벽에 불상을 새기고, 얼굴과 몸통 쪽을 많이 파낸 것이 확연히 보인다.


20190719_125928.jpg 서산 마애불 역시 비스듬한 벽면에 조각되어 머리와 몸통을 많이 파내고 다리 쪽은 적게 파낸 것이 보인다.


20190719_125912.jpg 불상의 머리 광배에 원형으로 연꽃과 불꽃 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이것이 백제 특유의 양식이라고 한다. '백제의 미소'라는 명성에 걸맞은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20190719_130328.jpg 불상을 새긴 바위를 보면 위쪽이 튀어나와 있고, 그 위에는 커다란 바위 하나가 불상을 덮어주듯 감싸고 있다.




첫날부터 신두리 해안사구에서 많이 걸었다. 홍보관부터 시작해서 람사르 습지, 소나무숲, 모래 언덕, 해안까지 다 돌아보느라 몇 시간을 걸어야 했다. 덕분에 많이 보고 배우기는 했지만, 샌들을 신고 걷다 보니 발에 더 무리가 간 것 같다.


하지만 자연환경이 수십, 수만 년에 걸쳐 만들어지는 소중한 선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수만 년에 걸쳐 이루어지는 자연의 노력을 한 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는 파괴적인 힘도, 자연의 작품을 보전하고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창조적인 힘도 함께 갖추고 있다. 상대를 올바로 이해할 수 있을 때 상생의 길은 열리게 마련이다.


신두리 사구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바람에 천리포 수목원은 갈 수 없었다. 만리포 해수욕장에 잠시 들른 뒤 안면도로 길을 잡았다. 예정보다 일찍 도착하는 바람에 선배가 난감해했다. 언제나 후배를 살뜰히 챙겨주는 선배인지라, 잘 준비하여 대접하고 싶었는데, 내가 너무 일찍 도착했던 것이다. 부랴부랴 돼지 목살과 쌈채, 특제 소스를 준비해서 푸짐하게 먹고 쉬었다. 내일부터는 이렇게 먹고 쉴 수 없을 텐데. 오늘을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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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8_153148.jpg 신두리 사구의 모래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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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8_160605.jpg 태안 신두리 해안 사구는 대략 길이 3km, 폭 1km의 큰 규모를 자랑하는 모래 언덕으로, 지형의 다양성과 자연 생태가 잘 보전되어 있다. 천연기념물 제431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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