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간의 문화유산 탐방기
얼마 전 토끼 한 마리가 죽었다.
처음에는 세 마리였는데, 하나 둘 죽더니 이제는 한 마리만 남았다. 5년 전이었던가, 6년 전이었던가. 운동을 나갔다가 우연히 토끼 한 마리를 보았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는데도 도망가지를 않는다.
"한번 잡아 볼까?"
가만히 손을 뻗어 두 귀를 잡고 들어 올렸다. 참나, 토끼를 이렇게 쉽게 잡다니.
그런데 풀숲에서 또 한 놈이 깡충거리며 내게로 다가오는 거였다. 웬 횡재. 얼른 그놈도 잡았다. 무작정 잡긴 했는데, 어떻게 하지?
잠시 생각하다가 동생한테 차를 좀 가져오라고 했다. 그렇게 앉아 기다리는데, 무언가 내 엉덩이를 툭툭 건드리는 것이었다. 돌아보니 토끼 하나가 내 주위에서 뛰어다니고 있었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웃음이 나왔다. 더 황당한 건 그놈 뒤로 7마리가 도로에 나와 줄지어 뛰어다니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동생이 도착했고, 우리는 즐겁게 토끼들을 잡아 집으로 돌아왔다. 참 이색적이면서 재밌는 경험이었다. 그렇게 잡은 10마리 중에 7마리는 분양하고, 3마리만 남겨놓았다. 그리고 이제는 하나만 남게 되었다.
얼마 전까지 남아있던 두 마리 중에, 암컷이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하도 울타리 밖으로 도망을 나와 ‘탈순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는데, 수컷만 밖에 나와 있는 날이 며칠이나 계속됐다. 그리고 수컷은 파놓은 굴로 도대체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어렴풋이 짐작했다. ‘죽었구나.’
나는 원래 동물을 무척이나 좋아해서 죽는 것을 볼 때면 많이 슬퍼한다. 그런데 이번의 경우에는 좀 달랐다. 죽은 모습을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풍산개 몇 마리를 데리고 산에 사는 사람이, 유튜브에 올린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죽을 때가 다 된 풍산개 한 마리가 집을 나가더니 돌아오지를 않더라는 이야기였다. 자기가 죽는 것을 보면서 슬퍼할 누군가를 염려해서일까. 동물 중에는 죽을 때가 되면 혼자서 죽을 자리를 찾아가는 일이 있다. 왜 그런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제 죽을 때를 알고 혼자서 죽을 자리를 찾아간다는 것에 왠지 모를 경외심이 느껴진다. 우리 ‘탈순이’도 그런 것일까? 그래서 한편으론 고맙고, 한편으론 그립다.
이 여행 에세이는 2019년 여름, 문화유산을 찾아다닌 31일간의 기록으로, 매일 기록한 일기를 수정하고 다듬은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우리 문화유산을 찾아가는 여행이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리고 어떻게 죽어야 할지를 찾는 목마름이었다. 나는 진실에 관심이 많고, 도리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너무 올바름만 찾다 보면 경직되고 고립되기 쉬우니, 어우러지고 조화롭게 사는 지혜로움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문화유산을 찾아가는 여행은 나에게 올바른 역사의식을 정립하는 과정이었다. 역사가 해석인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적어도 힘 있는 자들이 자신의 폭력과 탐욕을 정당화하기 위해 고안한 것을 진실이라고 믿는 어리석음을, 역사의식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수 천년을 살아온 조상들의 삶과 유산을 보면서, 수많은 사건과 문제들을 만났을 때 어떻게 대처하고 처신했는지, 그 지혜를 배우고 싶었다. 그들은 지혜롭게 문제를 해결하기도 했지만, 커다란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때로는 아름답기도 했지만, 때로는 추하기도 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냉정하게 평가하고 비판하고 싶기도 했지만,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 모습 그대로 안아주고 싶기도 했다.
동물도 살 때와 죽을 때를 알고 제 몫을 살아내는데, 마땅히 사람도 부족함 없이 제 몫을 살아내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마실을 나서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