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백 예순일곱 번째 글: 현금 주문은 안 받아요!
제가 다니는 곳의 공공도서관의 이름은 제법 깁니다. 국채보상운동기념도서관입니다. 예전에는 대구시립중앙도서관으로 불렸던 곳입니다. 대략 3년 전엔가 뜬금없이 리모델링한다고 해서 꽤 불편을 겪었던 기억이 났습니다. 거의 1년 이상 어떤 빌딩의 세 개 층 정도를 빌려 임시 서가를 꾸려놓았었습니다. 그때 세 번 정도 가보기는 너무 불편해서 도저히 못 가겠다며 한동안 발길을 끊었던 곳이었습니다.
다시 재개관하고 나서 와본 뒤에 놀라 자빠질 뻔했습니다.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공공도서관을 가본 것은 아니지만, 아마 최소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시설이 아니겠나 싶을 정도로 탈바꿈한 모습에 도서관을 보는 순간 눈물이 나려고 하더군요. 이게 제가 알고 있던 그 도서관이 맞나 싶었거든요. 사실 미처 가보지 못한 도서관이 훨씬 많은데도 불구하고 감히 세 손가락 운운하는 건 과거의 모습이 제게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네요.
제가 늘 자리를 잡고 노트북으로 글을 쓰는 곳은 4층입니다. 최근에는 3층에도 노트북 자리가 있다는 걸 알았기에 4층에 자리가 없으면 3층에도 가보곤 합니다. 아무튼 입구에서 들어오다 보면 오른쪽 편에 사진 속의 모습처럼 카페가 하나 있습니다. 아직 앉아서 마시고 가는 사람을 본 적은 없습니다만 테이크아웃 전용으로 알고 있습니다. 원래부터 커피를 좋아하긴 합니다만 생각지도 못했던 공공도서관 건물 내의 커피 매장은 저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대략 두 가지 측면에서 무엇보다도 반가웠습니다. 우선 저 카페에서 주문한 커피는 열람실 내로 가지고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었고, 다른 것 하나는 커피를 판매하시는 분들이 시니어 층의 분들이라는 점이었습니다. 늘 눈요기만 하다 오늘은 한 잔 주문해서 자리로 올라갈 생각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점심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탓에 아직 졸음이 가시지 않은 탓이었으니까요.
다행히 제가 가장 좋아하는 바닐라 라떼가 있었습니다. 시니어 분들이 총 여섯 분 정도 서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아무도 주문을 받으러 오지 않더군요. 조금 더 기다려 볼까 하다가 용기를 내어 물었습니다.
"저, 어떻게 주문하면 되나요?"
"네. 키오스크로 주문하시면 됩니다."
"아, 저 현금으로 주문할 겁니다만."
"죄송합니다, 고객님! 현금 주문은 안 받습니다."
얼떨결에 한 방 크게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세상이 급속도로 변해가고 있는 걸 모르는 건 아니지만, 머리가 저보다 더 하얗게 센 어르신들의 입에서 '키오스크로 주문하세요'라는 말을 듣는 순간 어쩐 일인지 제가 더 구세대 사람이 된 것 같았습니다. 아, 물론 저는 키오스크 주문에 대한 공포심이나 거부감은 없습니다. 주문을 많이 해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알고 있거든요. 다만 신용카드를 쓰고 싶지 않아서 전 요즘 무조건 현금 결제를 하고 있습니다. 돈 있으면 있는 선 안에서 쓰고, 없으면 쓰지 않는 게 제 작은 철칙이라서요.
잠도 깨울 겸 마침 바닐라 라떼도 한 잔 마셨으면 했는데, 못 마시고 돌아서니 무척 아쉬웠습니다. 누군가는 그런 말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이번에만 신용카드 쓰면 안 되냐고 말입니다. 원래 그렇게 한 번 어기기 시작하면 모처럼 한 결심도 그냥 무너지고 마는 겁니다. 저 카페의 바닐라 라떼를 제가 마셔볼 일은 아마도 없을 것 같습니다.
사진 출처: 글 작성자 본인이 직접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