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란 이름

[ 에세이] <그리움의 깊이 > 유정 이숙한

by 유정 이숙한

사월이 가고 오월의 중심에 있는데

내 마음은 아직 사월에 머물러 있다.

시니어클럽에 두 번 다녀오느라 글을 올리지 못했다.


어버이날 기념으로 딸이 예약한

초밥 전문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고기류도 골고루 맛보고 생선회도 많이 먹었다.


돌아오는 길에 딸이 손녀딸이랑 여행을 가자고 한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주변의 친구나 지인을 보면

딸과 함께 여행도 가고 같이 목욕을 가는 것이 부러웠다.

우리 딸은 아픈 마음과 외로운 마음을 함께 나누고 있다.



40대 후반 친정엄마 곁에 한 달 정도 머물렀다.

전에도 엄마를 모시고 온천 목욕을 간 적이 몇 번 있다.

그땐 엄마가 60대였다.


70대가 된 엄마를 모시고 온천에 갔다.

엄마는 막대처럼 몸이 뻣뻣하다.

걷지도 못하고 몸도 가누지 못해서 무척 안타까웠다.

그때 기억이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엄마와 딸은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다.

엄마가 피치 못할 사연으로 자리를 지키지 못하면

남보다 못한 모녀 사이가 된다.



엄마의 자리를 지키지 못한 마음은 어떤 것일까?


나도 한 때 엄마의 자리를 비운 적이 있었다.

애들 아빠와 같이 사업하느라 지쳐 있을 때였다.

내 마음을 애들아빠가 몰라준다고 첫 번째 이혼을 했다.


맨땅에 헤딩하는 마음으로 세찬 파도를 마주했다.

그때 초등학생인 작은아이 때문에 무척 힘들었다.

눈만 감으면 작은아이가 비행청소년이 되어

학교도 가지 않고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학교 뒤편을 서성이는 모습을 보았다.


새벽 두 시면 잠에서 깨어 엉엉 소리 내서 울었다.

내 생애 두번 째 울음이었다.

첫 번 째 울음은 가족들이 결혼을 반대해서였다.



집을 떠나 대전에서 텔레마케터 일을 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아들 또래의 아이가 전화를 받으면

여지없이 무너졌다.

눈물이 펑펑 솟아 일을 할 수 없었다.


친한 친구가 위로해 주고 웃게 해 주었지만

작은아이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으로 버티기 힘들었다.


그때 난 제 정신이 아니었다.

세상에 하나뿐인 내 편인 친정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보내드리고 많은 날을 방황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니 세상이 끝난 것 같았다.



내가 두 아이의 엄마란 것을 잠시 잊었다.

큰아이가 다리를 놓아 애들 아빠와 억지 화해하고

육 개월 만에 내 자리로 돌아왔는데..


2년여 세월이 버티기 너무 힘들었다.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힘든 고비를 이를 악물고 버텨냈더니 좋은 날이 왔다.

우린 사업방식과 인생관이 다른 것이 갈등의 원인이었다.


제조업은 경쟁력이 심해 고생한 만큼의 수익을

챙길 수 없는 구조적인 거래 방식이기도 했다.

수지가 맞지 않으면 그만두어야 하는데 미적거리다

작은 구멍이 큰 구멍이 되더니 사업체가 와르르 무너졌다.



세월이 지나고 보니 엄마 자리로 돌아오길 잘했다.

엄마의 자리는 함부로 비우는 것이 아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견뎌야 한다.


그때 내 자리로 돌아가라고 강권한 친구와

친정엄마의 잔소리가 밑거름이 되었다.


친정엄마가 내게 하시는 말씀이

"너 춘향이 말 듣지 못했니? 못나도 내 낭군, 잘나도 내 낭군이라는 말?"


엄마의 가르침에 따랐다.

엄마는 아버지에게 열녀셨다.

나도 엄마처럼 되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살았다.

지나간 시간은 흘러갔으니 다시는 되돌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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