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방

[ 에세이 ] < 그리움의 깊이 > 유정 이숙한

by 유정 이숙한

엄마의 방



엄마는 농사일과 집안일에 파묻혀 살았다.

타협을 모르는 올곧은 성격의 할아버지와

늘 편찮으신 할머니를 모셔야 했으니 힘들었을 게다.


방이나 마루 쓸고 닦기, 마당 쓸기, 할머니 방 아궁이에

군불을 지피는 것이 내가 할 일이었다.


열 살 무렵부터 엄마의 심부름을 다녔다.

엄마가 날 칭찬했다.


"우리 숙한이는 심부름을 보내면 아무리 추워도 가기

싫다고 한 적이 없어."


그러나 예외가 있었다.

작은할머니댁으로 심부름 가면 함흥차사였으니까.



내가 태어난 집은

전북 익산군 팔봉면 임상리 494번지다.

1975년 인천으로 이사 오기 전까지

우리 집은 등잔불을 켜고 살았다.


등잔불을 켜려면 석유를 사 와야 한다.

내 몫의 심부름이었다.

내 키 삼분의 일이 되는 큰 유리병을 들고

15분 정도 걸어가면 이웃 동네에 석유가게가 있었다.


큰 병에 석유를 가득 채워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올 쯤이면 주위가 어둑어둑해졌다.

야트막한 산의 소나무가 머리 풀어헤친 귀신처럼 보였다.


하늘의 별이 어린 날 위로해 주었고 무서움을 달래려고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왔다.

내가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것이 그때부터였다.



우리 동네는 또래 친구들이 남자아이들 뿐인데

작은할머니 동네에는 여자 친구 세 명이 살았다.

그 동네로 심부름 가면 여자 친구들과 고무줄놀이, 공기놀이,

땅따먹기 놀이를 하고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잡기놀이와

숨바꼭질을 하다 보면 긴긴 여름 해가 서산으로 숨어들었다.


모내기가 끝난 5월 하순이면 마당이 넓은 우리 집에서

돼지를 도살하여 고기를 나누고 내장과 머리를 삶아

뒤풀이로 막걸리와 잔치국수를 먹었다.

엄마가 만든 잔치국수의 구수한 맛을 잊을 수 없었다.


연한 갈색의 멀건 국물에 부추가 둥둥 떠 있고

삶은 국수가 붇지 말라고 들기름을 발랐다.



드디어 오늘 엄마의 방에 입문했다.

내가 열 살 때 먹었던 추억의 국수!

엄마가 만든 잔치국수 맛 재현에 성공했다.


엄마의 잔치국수의 비법은 알 수 없으나

기막힌 맛은 간사한 혀가 용케도 기억해 냈다.


넓적한 밴댕이(디포리)와 굵은 다시 멸치,

맛술과 양파껍질, 진간장 조금 넣고 국간장과

다시마를 넣고 육수를 우려냈는데 구수한 것이!


어릴 때 먹었던 엄마의 잔치국수 맛이었다!


우리 집은 밀농사를 많이 지었다.

밀기울을 많이 빼지 않고 뽑은 누르스름한 국수는 일품이었다.

지금은 소면이 대세지만 생각해 보니 중간 면 굵기였다.



엄마의 방은 열려 있었으나 근접되지 않는 맛이었다.

엄마 생전에 배워두었더라면 간단한 것을 후회가 된다.


엄마의 국수 맛이 재연되자 환호가 튀어나왔다.

멀게만 느껴지던 맛이었는데 할머니 돌아가시기 직전

엄마 나이가 되고서야, 그 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


언젠가 얼핏 엄마의 방을 구경한 적이 있다.

결혼해서 3년 만에 얻은 큰아이 돌잔치에 서울 우리 가게에

오신 엄마가 내 손을 잡고 건너편 가게로 데려갔다.


굵고 붉은빛이 나는 곰삭은 새우젓을 보고

홀딱 반한 모양이다.

"김치 담글 때는 이렇게 굵은 새우젓을 넣어야 김치가

맛있는 거야!"

라고 가르쳐주셨다.


31년 8개월 식품회사 운영할 때 멸치젓과 굵은 새우와 가재와

잡어가 섞인 멸치젓을 담갔다.

6개월 발효시켜 새우젓은 다져 넣었고 멸치와 잡어는

중간 불에 5시간 다려서 김치를 담갔다.

먹어본 사람들은 우리 회사 김치를 명품으로 기억한다.


엄마의 방에는 잊지 못할 고향이 있고 추억 속

구수한 잔치국수가 그리움에 찌든 날 반겨준다.


왼쪽은 친정엄마이고 오른쪽은 이모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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