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지옥여행

[단편소설 연재] < 불편한 진실 > 유정 이숙한

by 유정 이숙한

절벽 끝에 서 있는 현우에게 하연이 말했다.

- 그렇게 힘들어요? 그럼 내 손을 잡아요. 내

영혼까지 갖고 싶으세요?

- 좋은 사람 나타났으니 이 몸은 그대에게서

물러나야지, 몸도 마음도 탐내지 않을 거야.


하연은 현우의 말에 가슴이 아프다.

눈물을 참으려고 하면 할수록 강이 되어 흘러내린다.

그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면 죽을 거 같다.

그를 잡을 수 없는 현실이 그녀를 괴롭힌다.


펑펑 울어야 시원할 거 같은데 응어리진 눈물의

숙주가 가슴속에 끈적하게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흐르는 눈물은 눈물의 숙주가 게워낸 분비물이다.

도덕적인 자로 사랑을 재야 하니 힘들었다.

이것이 운명일까?


현우가 말했다.

-마음을 어지럽혀서 정말로 미안해요. 서로 저지른

일이나 내 잘못이 더 커요. 세상에 나서 난생처음

진정한 사랑을 알게 되었고 좋아했는데 너무 허무해요.

나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새로운 사람과 시작하세요.

나를 당신 가슴 저편에 잠시 묻어두세요. 내가 당신

마음에 짐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 당신은 내게 힘을 주었지요. 사랑했어요. 영원히 잊지 못할 거예요.


- 그렇지만 언젠가 돌아올 자리는 비워 둘게요,

나는 돌아올 거라 믿고 있어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사람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해야 하나요? 잔인하네요?

어제는 퇴근하고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정신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앉아 있다 한 정거장 전에 내렸어요.

그런 사실도 모르고 걸어가다, 이상해서 확인해 보고

지하철을 다시 타는 멍청한 짓을 했어요.


-그랬군요. 정신 나간 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마음을 되돌려야겠군요.


- 이제야 배가 고프기 시작하네요. 토요일 뵈러 가도 될까요?


- 오세요. 저도 엄청 힘들었습니다. 많이 보고 싶어요. 꼭 오세요.


- 좋습니다. 며칠 동안 지옥을 맛보고 온 기분입니다.

얼굴이 반쪽이 되었습니다. 두 번 다시 그런 아픔을

만들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도 지옥 여행 다녀왔습니다. 내 안에 당신이

그토록 깊이 박혀있을 줄이야.


-내 생이 끝나는 날까지 당신 곁에서 지켜 주고

싶은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시 태어나도 당신과

함께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몇 날 밤을 잠을 통 이루지 못했어요.


하연과 현우는 끊으래야 끊은 수 없는 악연일까?

아님 필연인 걸까, 사랑이 죄인가, 두 사람은 서로

헤어져 살 수 없단 말인가,



현우는 멍 때리던 시간들이 서서히 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삼시 세끼 먹는 것도 잊었다.

하연의 말을 듣고 나니 시장기를 느꼈다.

그는 주방에 있는 냉장고를 열었다.


냉장고에는 아들이 좋아하는 삼겹살과 김치,

캔맥주가 있다. 그가 좋아하는 반찬은 없지만

부부라고 하지만 먼 이웃처럼 지내는 사이니

남편을 위해 좋아하는 반찬을 만들어 놓을 아내가 아니었다.


냉장고 안에는 아내가 좋아하는 산나물이

몇 가지 있었다. 열무김치와 산나물들, 고추장을

꺼내 참기름을 넣고 비볐다.

노른자를 익히지 않은 달걀프라이도 두 개 부쳐서 얹었다.


사나흘 만에 먹는 밥이다.

아래로 푹 꺼져 있던 배가 위로 불룩 올라왔다.

신경을 쓰면 설사하는 예민한 체질인 현우인데

맵게 먹어도 위가 요동하지 않았다.

그의 감정과 연결된 위가 친구로 연결된 모양이다.


하연은 갈팡질팡하던 마음을 한 곳으로 정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갈 때까지 가보자!'라는 심정이었다.

그곳에 천국이든 지옥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오직 현우만 그녀 곁에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하연이 찬혁에게 다가가려고 부단하게 노력했지만

제자리로 돌아오는 마음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녀는 물이 흐르는 대로 그 흐름을 쫓아가기로 했다.


'사랑에도 유통기간이 있으니 그가 싫어지는 날이

분명히 올 것이다. 같이 가게를 운영하면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가던 길로 끝까지 가보자고 다짐하는 하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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