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연재] < 불편한 진실 > 유정 이숙한
찬혁은 백 프로 솔로다.
그와 차를 마시거나 식사해도 부담이 없다.
맘에 들지 않은 일은 먼지가 풀풀 날리는 것이다.
찬혁은 마음속에 하연을 품고 기다린다.
놓으면 깨질세라, 조심스럽게 그녀에 대한
사랑을 되도록 오래오래 숙성 중이다.
마음 깊은 곳에서 그녀가 현우에게 돌아갈 거
같아 전전긍긍 조바심이 나고 불안하다.
목공예로 여인의 몸을 깎을 때 하연의 뽀얀 몸을
만지는 것처럼 흥분된다.
겨울잠에 빠져 있던 아랫도리가 봄이라며 꿈틀거린다.
하연은 조용하고 얼굴 표정이 밝으며 명랑하다.
그녀는 찬혁처럼 시에 빠져있다.
하연의 찬혁의 오랜 로망인 이상형이었다.
찬혁은 하연을 마음에 품고 내색하지 못하니
상사병에 걸린 걸까, 고열이 오르고 매찜질을
당한 것처럼 온몸이 쑤시고 아프다.
그가 아프다고 톡을 보내왔다.
하연이 담백하고 진한 삼계탕을 끓여다 주었다.
밑반찬도 몇 가지 갖다 주었다.
깔깔해진 찬혁의 입맛에 잘 맞는다.
찬혁은 혼자 밥을 먹자니 세상살이가 시들하다.
하연이 자주 와서 옆에 있어 주길 바라고 있다.
금방 보고 헤어졌는데 또 보고 싶은 그녀다.
그리움과 보고픈 마음을 주체할 길 없었다.
썰렁한 침대에 누우니 외롭고 인생이 고달프다.
밖에는 추적추적 봄비가 내린다.
그의 가슴이 보랏빛 사랑으로 물들어 간다.
사랑을 노래하던 비가 그의 가슴을 적신다.
찬혁은 하연을 향한 사랑을 시로 적어 보냈다.
오랜 낯익음이 낯선 기억으로 다가오는
두려움처럼 추적추적 비가 내립니다.
애증에 젖은 바람이 창문을 흔들고 갑니다.
밤새 뒤척이다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홀로 깨어나 앉은 시간처럼.
우울로 가라앉는 많은 기억들이
울음을 그친 아이의 흐느낌 같습니다.
그리움이 짙으면 짙을수록 그리워 말아야 한다.
아픔이 크면 클수록 침묵을 배워야 한다는
기막힌 역설에 멱살을 잡고 싶은 시간..
연습 없는 삶은 언제나 쓴맛 같아서
사랑한다 사랑한다는 말이 빈곤한 가슴에
실핏줄로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신이 내게 기억시켜 놓은 당신!
끊임없는 모순과 허물. 부끄러움 속에서도
운명처럼 따라오는 거부치 못할 흐름의 자유
병든 사슴만이 사향을 익힌다는 말이
먹물처럼 가슴에 번집니다.
비가 더 세차게 내릴 모양입니다.
먼 천둥소리가 가까이 들립니다.
비가 내립니다~~
하연은 찬혁이 보낸 시를 여러 번 읽고 또 읽는다.
시가 가진 속뜻을 음미하며 그의 마음속으로
깊은 수렁으로 미끄러지듯 딸려 들어간다.
그녀의 가슴에는 현우란 남자로 채워져 있다.
현우를 만나기 전에 찬혁을 만났더라면 그땐
그녀의 가슴속 넓은 공간이 비워져 있었을 터인데
기막힌 타이밍에 그녀의 마음을 송두리째 빼낸 현우였다.
찬혁은 어쩌다 상사병에 걸렸을까?
하연은 미모의 얼굴이거나 쭉 빠진 몸매도 아닌데
그녀에게는 그윽한 사람 냄새가 난다.
할머니의 품처럼 온화하고 따뜻한 향기가 묻어난다.
찬혁이 어릴 적 낳아준 엄마에게 버림을 당했어도
찬혁을 길러준 할머니의 품처럼 편안하고 따뜻하다.
하연이 현우를 깨끗이 지워주기를 바라는 찬혁이다.
하연에게 퇴근 후 작업실로 오라고 했다.
하연이 오지 않는다고 한다.
같이 점심을 먹으려고 상을 차렸는데 기운이 빠진다.
하연이 오지 않으면 점심을 굶겠다고 말하는 찬혁
하연이 마지못해 작업실에 왔다.
하연의 얼굴이 겨울바람처럼 냉랭해졌다.
아무래도 하연이 현우에게 돌아갈 거 같은 찬혁은
마음에 돌을 눌러놓은 거 같다.
하연의 눈치를 보며 말을 아끼는 찬혁이다.
하연과 함께 의자가 달려있는 나무 식탁에서 식사한다.
찬혁은 고추장과 된장, 간장을 직접 담가먹는다.
하연이 좋아하는 상추와 된장을 가져다 놓았다.
하연은 상추에 된장을 넣고 쌈을 싸 먹고 있다.
시선을 먼 곳을 서성인다.
찬혁은 하연을 보며 입을 열지 않고 밥만 먹는다.
식사를 마친 하연이 주방에서 설거지한다.
그녀의 입에는 침묵의 강이 흐른다.
찬혁은 뒤에서 하연을 껴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