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회 ) 겉멋이 잔뜩 배인
작가가 드리는 말씀입니다.
이 작품은 단편소설로 시대 배경이 1993년 쯤이라 괴리감이 있으니
이해해 주시고 읽어주십시오.
작가 이숙한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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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수는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새해는 어김없이 산골짝에 찾아와서 해동을 하고 할 일 없는
개구리들만 논두렁에서 시끄럽게 짝을 찾느라고 울어대고.
뒷산 뻐꾸기도 밤낮없이 ‘뻐뻐꾹 뻐꾹’ 무엇이 그리 급한지
반 박자로 짝을 부르나, 2박자씩 끊어서 부르는 게 원칙인데,
장가 못 든 만년 총각 신세만 차량 맞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찬수는 씩씩대며
“어유, 저놈의 뻐꾸기까지 약을 올리나, 장가들고 싶으면
지나 들지, 사십이 넘은 늙은 총각 복장을 터트리나, 누구
죽는 걸 보고 싶은 거야!”
그는 일전에 모내기를 한 새골 논에 물고를 다독거리며
삽자루를 괜스레 논둑에 꽂았다 뺐다한다.
습관처럼 강 건너 평택평야를 바라보는데 뻐꾸기가 또 운다.
"야유 제기랄, 이놈의 봄날은 왜 이리 사람 마음을 짓쑤셔
놓나. 뻐꾸기가 우는 걸 보니 봄도 어지간히 저문 모양이구먼.
이놈의 아카시아는 왜 이다지 향기로운지, 일전 '소쩍새다방'
미스 양 머리에서 나던 냄새 같네."
뻐꾸기가 숨을 고르더니 구슬피 울어댄다.
간척지 넓은 논에는 연초록색 벼들이 팔랑거리고 있었다.
"정말 사람 죽여주는구먼. 미스 양의 풍만한 가슴은 목련꽃
몽우리 마냥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는데, 아양을 떨며
내 품에 파묻혀 와락 안겼는데…."
그는 담배 한 개비에 붙을 붙이더니 입에 문다.
담배 맛은 예나 제나 늘 그 맛인데 찬바람이 부는
계절에도 혼자, 꽃피는 봄이 와도 혼자라니 공연히 살고
싶은 의욕이 떨어졌다.
흙덩어리 하나를 발길질로 툭 차내니 남의 논에 나가떨어졌다.
그는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가더니 말끔하게 세수하고
머리도 감고 너저분한 수염도 정리하고 하얀 Y샤스를 입고
빨간 넥타이를 매고 그 위에 파란 양복 한 벌을 걸쳐 입었다.
거울을 보면서 쓴웃음을 짓는다.
대문 밖에 세단이 대기하고 있다.
6년쯤 된 중고차지만 새 차나 다름없다.
K사의 걸작인데 쓸 만하다.
그가 중고 자동차를 구입하기 전엔 인근 동리에서 알아주는
착실한 총각농부였는데, 5년 사이에 겉멋이 잔뜩 베인
어정쩡한 사내가 되었다.
서른다섯 살까지는 농사도 잘 짓더니 승용차를 구입하고
부터 작업복에 물장화 대신. 번쩍번쩍한 윤이 나는 구두를
신고 덥수룩한 단발머리뒤로 젖혀 넘겨 얼핏 보기에 화가처럼 보인다.
그는 그 무렵 유행하는 <미스 고> 노래를 휘파람으로
부르며 읍내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