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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스텔라 Aug 14. 2024

내일 아플 것 같으니 병가 낼게요

독일인들은 '조금 아플 것 같다' 싶으면 바로 병가를 내고 출근하지 않는다.


나는 굳건한 한국인이기에 큰 사고가 나지 않고는 열이 나도 출근을 했는데, 독일인들은 놀란 토끼눈으로 왜 아픈데 출근을 하느냐는 눈치를 준다. 나만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이 잊혀지지 않아서일까.


아, 독일은 2일까지는 이유불문 병가가 가능하며 3일 이상 병가일 경우에는 병원 진단서를 제출해야만 한다. 그렇기에 이론적으로 이틀 쉬고 하루 일하고 이틀 쉬는, 즉 1주일에 하루 일하고 4일 쉬는 것도 가능하긴 하다. 실제로 그런 인물도 있긴 했다.. 따가운 눈총은 본인의 몫이지만.. 하하


나는 8시 15분부터 11시 30분까지 수업이 있다. 하지만 담임이라는 이유로 11시 30분부터 12시 30분까지 반에 있어야 한다. (이 시간에 아이들은 개인수업을 받거나 체육, 음악과 같은 다른 수업을 받는다.)

반을 지키고 있어야 하는 이유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는 것!


아이들은 어디로 튈지 모른다. 수업을 받으러 가는 중에 갑자기 감정이 상하여 수업을 거부하는 경우가 가장 잦은데, 나는 어르고 달래서 다시 보내든지, 혹은 아이의 상태가 영 아니라면 아이와 함께 반에서 시간을 보낸다.


우리 반 아이들은 아직 어려서 (8세-10세) 새로운 상황에 대해 두려움이 많다. 갑자기 다른 선생님이 반에 들어온다거나 반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 오면 극도의 긴장감을 표출하며, 나와 있을 때와는 반대로 아주 사나워 지곤 한다.

예를 들면.. 지금까지 잘 있던 아이가 갑자기 다른 선생님만 반에 오면 (학생들은 선생님들에 의해 반에서 픽업당해진다) 갑자기 울고불고 생떼를 쓴다.

한 번은 발레수업으로 A를 보냈는데, 10분 뒤 발레선생님이 고개를 절레절레하며 A를 다시 내게 데리고 왔다..  


2년 전, 큰 자전거 사고로 병원에 입원해야 했던 적이 있다. 나는 수술만 받고 얼굴에 붕대를 감은 채 출근했는데, 그때 동료들이 나를 보며 놀란 표정을 짓던 것을 잊을 수 없다.

이 이야기는 학교에서 전설 아닌 전설로 내려오고 있는데, 교장을 포함한 몇몇은 나의 '책임감 있는 행동'에 감명받았고, 몇몇은 '무모한 행동'이라고 했다. 사실 나도 지금 생각해 보면 다소 무모했다.


나는 당시 병가로 1주일을 냈고 마침 그다음 주가 1주일짜리 방학이어서 총 2주 동안 휴식을 취한 것인데, 사실 4주 정도는 쉴걸 그랬다. 출근하고 일하는 것에 얼굴이 아파서 제약이 있었으니..

어쨌든! 그때 다른 반 선생님들이 들어와서 수업을 대신해 주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엉망징창이었다고 한다.. 허허...  우리 반 아이들은 혼동의 일주일을 보낸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나만의 합의점을 찾았는데 출근은 하되 조퇴를 하는 것. (짠!)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지라, 정신력이 강한 편이다! 컨디션이 안 좋아도 막상 일을 시작하면 또 하게 된다.

8시 15분부터 11시 30분까지 수업을 할 때면 '잠시' 고통을 잊는 듯하다. 그 후로 내 수업이 끝나면 급격히 컨디션이 안 좋아지곤 하는데, 나는 그때 조퇴를 했다.


이런 경험을 통해, 나는 독일과 한국의 직장 문화 차이를 깊이 느끼게 되었다.

독일에서는 근로자의 건강과 복지가 최우선이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한국에서는 직업에 대한 책임감이 더 강조되는 경향이 있다.

이 두 가지 모두 중요한 가치임을 인정하면서도, 이제는 내가 무리하지 않고 나의 건강을 지키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내가 건강해야만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고 책임감도 다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몸이 아플 때에는 스스로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필요하다면 병가를 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기로 한다! 이는 단순히 나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 내가 맡은 아이들에게도 더 나은 교육 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길이기 때문에.


병원 진단서 (Jens Büttner / dpa-Zentralbild / D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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